[조경칼럼] 진정성과 시대지능
[조경칼럼] 진정성과 시대지능
  • 유승종 라이브스케이프 대표
  • 승인 2019.08.23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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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종 라이브스케이프 대표
유승종 라이브스케이프 대표

근대건축의 거장 프랭크로이드 라이트를 모델로 했다는 소설 마천루에는 주인공이 다음과 같은 대사를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철근콘크리트공법이란 것이 나왔습니다. 새롭고 혁신적인 '유리'라는 소재가 나왔습니다. 이제 이것들을 사용하면, 대규모의 건물을, 빠른 시간 내에, 그것도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지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아직도 기둥과 기둥사이가 폭이 좁아야만 하는, 석조건물의 모델을, 다시 말해 파르테논신전의 모사품을 만들고 있어야 합니까?”

당대의 기준으로 보면 주인공은 신식의 문물(?)을 주장하는 열정 가득한 야심가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이 근대건축운동의 거대한 광풍조차도 시간이 흘러 이제는 하나의 양식이나 스타일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근대 '양식'을 옹호하는 건축가는 노출콘크리트의 재료적인 미학을 이야기하며 시간과 철학을 읇조린다. 여기에 변혁은 없다. 오히려 변혁을 외치는 쪽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근대'양식'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진정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가 시대라는 맥락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이다. 시대는 변한다. 진정성이란 단어 조차도 이제 그것이 처한 위치나 발화자의 입장에 따라서도 말의 뜻과 범위가 이렇게 달라지고 있다. ‘조경을 넘어’라는 전혀 앞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은 오래된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라는 맥락을 읽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어느 외국저명 조경가의 새로운 디자인이론, 신문물, 신사조만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것이 변화의 동력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변화라기보단 수동적 답습에 가까울 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알아야 하고, 그것은 현재 우리가 처한 시대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서로 대립하는 생각을 동시에 아우르며 목표에 이르는 길을 찾는 능력을 사전에서는 '지능'이라 한다. 여기에 '시대'라는 단어를 조합한다. '시대지능', 다시 말해 우리가 유의미한 변화를 이루어나가기 위해서는 현시점의 시대를 보고 거기에 반응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자. 그것을 이야기하고, 그것의 문제점에 대해 논하면서 오직 ‘진정성’ 있는 개발만을 이야기 한다면, 소위 말해 다시 그 모든 사회현상의 대항점을 '진정성'에만 두고 만다면, 시대의 오독이며 자가당착이며 학습하지 않는 자의 게으름에 불과하다. 당장 스스로 답을 만들기 어렵다면 그것에 반응하는 타분야의 공간개발사업에서는 과연 이런 문제가 어떤 양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가, 사회문제가 어떤 해법으로 다시 사회에 투사 적용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오랫동안 수집한 기품있는 사물들로 뮤지엄과 점포사이의 중간영역소비자들을 정확히 타겟팅한 성수동 '오르에르'나 잠원동 '파운드로컬', 자연을 벗삼으려면 자연이 주최가 아니라 자연이 제공하지 못하는 따스한 환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남양주의 '비루개' 등 요즘의 공간추세는 '덜하고', '엣지있게' '디자인이 아닌 간지'라는 추세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심은 주인이 나가라고 할 때 금방 핵심집기만을 들고 나갈 수 있도록 가능하게 공간을 기획하는 바에 있다. 비단 젠트리피케이션을 주제로 놓고 보아도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학습할 재료들은 동시대의 세상에 넘쳐나고 이런 학습이 쌓여서 세상을 이겨내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놓고 보면, 앞으로 중요한 것은 디자인이 아니다. 비용이 발생하는 디자인보다는 가치를 재편하는 디자인 이전단계 기획의 영역이 훨씬 중요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조경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서비스디자인, 경험디자인이라는, '디자인'앞에 붙는 새로운 신조어의 조합영역들이 출현하는 이유 역시도 이제는 더 이상 공간디자인만으로는 그 어떠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없음에 기인한다.

페이팔의 창립자 피터틸이 설립한 '틸장학금'이란 것이 있다. 단일 장학금으로 무시 못할 액수를 자랑하는 이 장학금은 수여자의 선정도 까다롭지만, 정작 수여를 하기 위해 내세우는 조건이 파격적이다. 장학금으로 학업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학업을 중단하고 창업을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당신 같은 인재는 학교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으니 이 자금으로 창업을 하라'는 이야기이다. 전통적 교육 방법으로는 혁신과 변화를 따라가기가 어려움을 모두들 알기 때문에 이런 조건이 환영받고 있는 시대이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정리 = 한국건설신문 선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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