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칼럼] 조경 명칭 바꾸는 문제, 이제 논의할 때다
[조경칼럼] 조경 명칭 바꾸는 문제, 이제 논의할 때다
  •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4.22 12: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에 원로 조경가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졌다. 이 글은 선배 조경가가 던져 주신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찾고자 하는 시도이다.
제가 조경 공부를 하면서 매력을 느낀 지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안 맥하그의 ‘Design with Nature(1969)’를 읽으면서, 지구 환경을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해 지녀야 하는 생태적 가치를 존중하는 관점과 여러 학문 영역을 융합하는 종합화라는 속성에 이끌렸다. 다른 하나는 동서양 정원예술의 전통에서부터 오늘날 조경설계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독창적이고 풍부한 스토리를 담는 디자인에도 매료되었다.
유학시절 읽은 앤 스펀의 ‘Seeing and Making the Landscape Whole’이라는 짧은 글은 필자가 느꼈던 두 가지 다른 세계의 간극을 잘 표현하고 있다. 
“현대 조경은 생태와 예술이라는 두 축에서 발전하고 진화해 왔다. 이 둘은 과정과 형태 중 무엇을 중시하는지, 지역스케일과 정원스케일 중 어디에 주목하는가에 따라 구별된다. 이 두 축은 다른 특성을 지니며 때로는 갈등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오히려 서로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때 조경은 사회적으로 존립근거와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실천 행위로서 조경 계획의 전통이 미약하다. 국토환경의 보존과 관리라는 테제는 조경학의 정의에서부터 등장하지만, 이를 위한 실천적인 처방을 고민하는 데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광역적인 스케일의 지역계획은 대부분 맥하그식 환경분석 방법에 근거하고 있지만, 이에 관여하는 조경가의 역할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오히려 한국조경 초기 정착기에 70년대 초반 한국조경공사에서 수행했던 경주보문관광단지, 설악산국립공원 등이 광역조경계획의 대표적이며 성공적인 사례이다.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는 단지 센트럴파크만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요세미트 국립공원 계획과 나이아가라 폭포 경관계획에도 참여했다. 보스톤 환상형 공원녹지체계와 버펄로 광역녹지체계 등의 계획을 통해 도시 그린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러한 조경계획의 전통은 전후 영국에서는 이어진다. 브렌다 콜빈은 ‘Land and Landscape(1948)’에서 전후 영국의 전원 경관 등의 보존과 관리계획의 방향을 제시했는데, 이 책의 기본 생각은 향후 영국 농촌 보존의 근간이 됐다. 이후 브라이언 하켓과 실비아 크로우는 여러 저작들에서 토지의 합리적 활용을 위해 생태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조경계획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러한 주장과 계획 방법은 이안 맥하그에 의해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됐고, 곧 전 세계로 이론과 방법이 확산되게 됐다. 중국의 콩지안 유는 생태계획의 중요성을 중국의 정치지도자와 시장들에게 설득해 대도시와 성, 국가 차원에서 적용했다. 
최근 정원박람회 등 정원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국토경관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분야로서 계획분야의 영역 확장이 답보하는 현실은 안타깝다. 조경계획 분야의 아카데미아는 존재하나, 실천 영역의 활동은 빈곤한 상황이다. 현재 국토환경을 다루는 광역적 차원에서 다루는 생태계획 및 조경계획의 실무영역이 매우 취약한 상황인데, 이를 제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미래 한국 조경역량을 국토 환경을 잘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일반인들의 조경에 대한 인식은 그리 호의적이지 못하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현실이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커뮤니케이션 활동뿐만 아니라 조경의 근원적인 개념을 바꾸는 보다 대담한 변화가 필요하다. 
필자가 제안하는 대담한 변화는 ‘조경’이라는 분야의 명칭을 고치는 것이다. 현재의 ‘조경(造景)’은 ‘경관을 만든다’ 라는 함의가 지나치게 강하게 담겨 있다. 지을 조(造)가 지닌 창조라는 개념은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지만, 인위적이거나 장식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땅의 장소성과 자연의 생명 가치를 거스를 수 있는 여지도 또한 존재한다.         
영어의 경우에 landscape architecture 명명에 대한 불만도 꽤 오래되었다. 동아시아 3국의 경우도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쳐의 번역은 서로 다르다. 중국은 원림, 일본은 조원, 한국의 조경이다. 
얼마 전 한중일 조경 심포지움으로 방문한 중국 조경학자는 한국에서는 조경과 경관프로젝트를 구분하고 있다는 점에 놀랐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모든 경관프로젝트가 조경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하였다. 아마도 원림이라는 명명이 조경이라는 명칭보다는 보다 넓은 영역을 포괄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2022년에는 한국조경학회가 50주년을 맞이한다. 조경이라는 명칭의 적실성을 함께 깊이 있게 논의해 볼 시점이다. 


정리 = 한국건설신문 선태규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