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광화문 광장 설계공모 ‘기본계획 과다’ 논란
새로운 광화문 광장 설계공모 ‘기본계획 과다’ 논란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8.10.29 2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장설명회 참가자들, 공모 목표와 범위 모호해 혼란
[수정 2018.10.31 22:18]

▲ 새로운 광화문 광장 설계공모 ‘기본계획’(부분)_서울시 제공.

한국건설신문 이오주은 기자 =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광화문광장추진단(단장 김재용)은 29일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 현장설명회를 개최했다. 10월 12일부터 서울시 공모전 홈페이지에 접수한 참가자는 200명(2018. 10. 29 기준)을 넘었으며, 이날 현장설명회는 100여명이 넘게 참석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설명회는 설계공모 운영위원장을 맡은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가 사업의 추진 방향과 공모 개요, 심사의 주안점과 부문별 세부사항 등 공모 지침을 설명하고, 김재용 서울시 광화문광장추진단장 및 김영준 서울시 총괄건축가와 공동으로 질의응답을 받은 후 야외로 자리를 이동해 현장 답사로 마무리했다.

서울시는 지난 3년간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포럼 등을 운영하면서 기본계획 수립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2016년 9월 광화문 포럼 구성을 시작으로 착수를 알리고, 2017년초 시민참여단을 모집해 5월 31일 시민대토론회를 개최했다. 2017년 8월 24일 기본계획 수립을 시작, 2018년 4월 10일 ‘새로운 광화문 광장 조성 기본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으며 7월부터는 시민참여단을 추가 모집해 운영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하는 공론화 절차를 통해 국가 중심공간이라는 광화문 광장의 위상에 걸맞은 과정상의 민주주의를 담보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설명회에 참석한 예비 경쟁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3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과 사회적자본이 투입된 숙의의 결과 답지 않게 합의 또는 협상에 이르지 못한 갈등 요소가 그대로 공모 지침에 반영된 점, 이는 당연히 설계자의 혼란을 야기한다. 반면, 기본계획은 과도하게 제시되어 있어서 위와 같은 불확실함을 감수할 만한 창작의 자유조차 여의치 않은 딜레마.

예정대로 2019년 1월 21일 당선작이 선정되고 2020년 1월 착공해 2021년 5월 준공이 된다면 약 1년 6개월 후 물리적으로 가시화 될 문제들이, 이날 현장설명회에서는 주최 측과 참가자 사이의 신중한 문답 중에 행간만을 드러냈다. 

그러나 복수의 참가자로부터 반복적으로 제기된 의문들은 불과 10년 만에 재추진(하단 관련기사 참조)되는 광화문 광장 재조성 사업의 정당성으로부터 비롯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가치 갈등을 예고하는 데 숨김이 없었다. 본지는 이날 현설과 관계자들로부터 쟁점이 된 내용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 공모범위 - 공사 시행을 위해 실제로 설계하는 구간인 ‘사업범위’와, 인접 구역이지만 사업시행이 확정되지 않은 ‘계획범위’가 모두 이번 설계공모의 대상이다.


먼저, 새로운 광화문 광장의 3대 목표(▷보행중심공간 ▷역사의 회복 ▷시민과의 소통)가 과연 이 공모로 모두 성취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공모 주최측이 아닌 참가자 측에서 제기됐다.

제공된 공모지침 중 ‘10가지 이슈와 과제’(본지 제 753호 참조)를 살펴보면, 대치되거나 복합적인 둘 이상의 목표와 가치가 각 항에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참가자들은 디자인에 적용할 명료한 가이드라인을 제시받은 것이 아니라, 각 디자인 단계에서 스스로 기본방향을 선택하고 스스로 사업의 가치를 설정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받은 셈이다.

내비게이션으로 작동할 수 없는 지침 상의 모호함은 기본철학만이 아니다. 세부지침 역시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는 상황’이 그대로 과업화 되어 있다.

지난 7월 추진단 관계자를 통해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당초 세종대로 지하화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천문학적인 예산이나 교통 등의 이유로 지하 부분은 백지화되고 현재는 지상부만 사업 범위에 포함된다”고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현장설명회에서는 지하공간이 사업에 포함될 지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일단 참가자들은 세부 공모지침대로 지하공간을 설계에 포함시키라고 전달 받았다.

의정부 터도 문제가 됐다. 서울시는 3년여 전부터 의정부 터 복원에 착수했지만 아직까지 복원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이 불확실성을 안고 디자인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함인선 공모운영위원장은 “터만 보존할 것인지 건물까지 복원할 것인지 심지어 보존/복원이 아닌 잔디마당으로 제안하는 것까지도 열려 있으니 다양한 제안을 달라”고 했다.

특히 전체 공모 범위 조차 확정된 사업계획이 아니다. 즉 ‘확정적으로 제시된-사업범위’와 ‘미확정이지만 제시된-계획범위’가 함께 설계대상에 포함되어 있어서 참가자들의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반면, 해석의 가능성이 많아 명료함을 담보하지 못하는 ‘공모지침’과는 상반되게, ‘기본계획’은 구체적으로 확정되어 변경 가능성이 없다는 점도 지적이 됐다. 참가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한할 수밖에 없는 과도한 기본계획이라는 불만이다.

예를 들면 이종으로 분절된 두 개의 광장, 도로 및 교통체계 등 큰 골격은 이미 다 짜인 상태.
문화재청이 관할하는 광화문 월대를 주축으로 하는 ‘역사광장’(4만4천700㎡)과, 서울시 관할이며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좌편향 이동된 ‘시민광장’(2만4천600㎡)에서 설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결할 것인가 정도이다. 게다가 관할 기관이 달라 행정 절차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도 예상 가능하다.

또한 역사광장 아래로 끼고 도는 사직-율곡로 우회도로와, 중심을 편항시켜 축소된 세종대로는 기존의 T자형 프로토타입을 완전 해체하는 안인데, 이 역시 참가자들은 손을 댈 수 없는 절대적 기본계획이다.

따라서 광장의 주요 구성과 형태는 기본계획에 의해 이미 결정이 되어 있고, 주변부는 사업범위로 확정되지 않은 불확실성이 지배적인 상황이며, 여기에 '10가지 과제와 이슈'는 광화문 광장 재조성 사업이 함의하는 국가적 사회적 공간적 문화적 가치를 둘러싼 공동체의 갈등이 정제되지 않은 채로 지침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심사위원 구성을 보면 설계공모의 주안점과 무게중심으로 읽을 수 있다. ‘새로운 광화문 광장 조성 설계공모’의 심사위원은 국내 5인, 국외 2인, 예비 1인 등 8인의 전문가로 구성됐다. 국외 심사위원 아드리안 구즈(Adriaan Geuze, West8 대표, 네덜란드)는 2012년 용산공원 국제설계공모에서 이로재와 컨소시엄으로 당선돼 현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승효상(이로재 대표, 초대 서울시 총괄건축가) 심사위원과 공동 설계를 진행한 바 있다.
또 다른 국외 심사위원인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는 한국 건축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프랑스 건축가다. 특히 국내 최대 규모의 지하 캠퍼스인 <이화여대 ECC>(2008)는 지상을 전면 공원화하고 건축공간은 모두 지하화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도미니크 페로를 지하도시 전문가로 등극시켰다.
뿐만 아니라 페로는 2017년 6월 서울시에서 발주한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국제설계공모에서 정림건축과 컨소시엄으로 당선해, 현재 삼성역부터 봉은사역까지 영동대로 상부를 녹지광장으로 조성하고, 도로 등 교통 시스템은 지하화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이번 공모 심사에서 그가 ‘지하공간’ 심사에 특화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만한 이력이다.
그밖에 국내 심사위원은 ▷역사/문화재 분야_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도로/교통 분야_손기민 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과 교수 ▷조경_정욱주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 ▷건축_유나경 PMA엔지니어링 소장(국가건축정책위원회 민간위원)으로 구성됐으며, 김영준 서울시 2대 총괄건축가(공공건축가)가 예비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이 설계공모의 심사를 맡아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한  관계자는 “건축기본법(제14조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의 기능)에도, 동법 시행령(제10조 분과위원회)에도 ‘심의’는 있으나 ‘심사’라는 기능은 없다”며, “심의ㆍ조정과 ‘심사’는 엄연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 자문기관의 장이 경쟁공모의  심사를 맡는 것은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며, “다만, 국건위 위원장이 상근 직은 아니므로 기존의 직위나 자격으로 심사에 참여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 설명회에 참석한 예비 참가자들의 소감도 들어보았다.

A참가자는 “기본계획에서 설계가 다 되어 있다. 설계공모가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며, “제목만 새로운 광화문 광장이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모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설계 공모를 통해 당선자를 선정하는 것은 최종 책임자를 정하는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B참가자는 “이 상황을 의상 디자인에 비교해 보자. 마치  디자인이 다 된 옷에 단추의 모양이나 지퍼의 색상 정도를 결정할 수 있을 뿐”이라면서 “총괄 건축가가 이미 설계를 다 해 놓은 이와 같은 설계공모에 본인은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함인선 공모운영위원장은 “3년간 광화문 포럼을 운영하는 동안 다양한 갈등이 드러났다. ‘10가지 이슈와 과제’(본지 753호)는 바로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며, “새로운 광화문 광장 조성 공모는 단순히 바닥 포장이나 조경 식재 같은 광장 꾸미기 식의 제안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다. 광장이란 빈 바닥이 아니라 주변 건축물이 규정하는 위요된 공간이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새로운 광화문 광장에 얽힌 다양한 가치와 상황을 고려해 건축적인 아이디어를 모으자는 취지다”라고 말했다.

▲ ‘새로운 광화문 광장 조성’ 설계공모 현장설명회에서 함인선 공모운영위원장이 공모 지침을 설명하고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