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성급한 정책판단, 불필요한 고통만 가중
기자수첩-성급한 정책판단, 불필요한 고통만 가중
  • 문성일 기자
  • 승인 2001.10.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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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일 기자 취재1부
정부의 안이한 대처와 물량부족으로 야기된 전월세 대란은 급기야 "소형주택건설 의무비율 부활"이라는 극단 처방으로 이어졌다.
건설교통부가 지난주 내린 이 조치로 안정적 수급을 통한 저소득층의 거주문제가 말끔히 해결되리라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정부가 주택시장을 인위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자칫 탄력적인 시장기능을 저해하는 악재로 작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교부는 뭔가에 쫓기듯 이처럼 올바르지 못한 정책방안을 서둘러 발표해 버렸다. 국회 국정감사와 함께 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된 미국 테러사태로 인해 이 문제가 다소 소강상태를 띠었으나, 더 이상 방치할 경우 더 큰 부담을 받을 수 있다는 건교부의 성급한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월세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물량부족이다. 외환위기 초기인 지난 98년 규제완화와 수요진작을 통한 경기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분양가 자율화 및 분양권 전매와 함께 내린 조치는 소형주택공급 의무비율 폐지였다. 말 그대로 주택공급상의 통제수단을 스스로 제거해 버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건교부는 중요한 책무를 망각했다. 바로 공공임대주택의 확대다. 규제가 풀어진 상황에서 당시 미분양 속출 등으로 경영압박을 받고 있는 민간기업으로썬 수요도 없는 소형주택 공급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주택업체는 소위 "돈되는 사업"을 위해 원가부담이 큰데다 수요층이 얇아진 소형주택 공급을 포기하고 중대형 공급에 과감히 나섰다. 결국 이같은 상황이 현재의 소형주택 물량부족으로 인한 전월세 문제가 유발된 원인으로 봐도 틀리지 않는다.
당시 의식있는 몇몇 전문가들은 향후 발생될 수 있는 이러한 문제에 대처키 위해 주택공사나 지자체 도시개발공사 등 공공이 임대주택 건설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만약 정부가 이를 묵살하지 않고 최소 3조~5조원만이라도 공공임대 건설에 투입했더라면 현재의 전월세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에 와서 이러한 스스로의 귀책사유를 민간에게 떠넘긴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잘못된 정책을 스스로 인정하고 번복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키기 전에 하루속히 해결하는 것이 정부의 올바른 사명감이요 책무일 것이다. 이번 정책이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부의 올바른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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