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제언] “건설산업정책, 진단부터 정확해야”
[정책제언] “건설산업정책, 진단부터 정확해야”
  •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승인 2018.05.30 11: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발주자에게 재량권 부여해야… 하지만 획일성 벗어나야
공기중심 벗어나 ‘안전 품질 환경’ 중시하는 패러다임 전환 필요
▲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건설산업의 경쟁력 강화나 구조 개선에 관한 논의가 많다.
그런데 건설산업의 현실에 대한 진단이 업역이나 업종에 함몰돼 있는 경향이 있다. 현행 제도의 경과(經過)나 현실적 제약 요건이 간과되는 경향도 있다.
또, 선진국의 제도나 정책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거나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사례도 있다.
선진국의 제도나 정책은 현실적으로 국내와 토양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여기서는 국내 건설산업의 선진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명확한 진단이 필요한 10가지 사항을 살펴본다.

 1. 건설시장에 페이퍼컴퍼니가 존재하며, 그 이유가 칸막이식 업역 때문이라는 인식이다. 그런데 페이퍼컴퍼니가 존재하는 이유는 등록제도나 입찰제도 측면에서 스크리닝이 미흡한 것이 핵심이다.
우리나라는 건축기사나 기능사 자격만 있으면, 어느 업종의 면허든지 기술자 요건을 충족한다. 반면, 일본에서 예를 들어 건축공사업 허가를 받으려면 건축현장 관리자로서 3년 이상 경력자를 영업소별 전임자로 배치해야 한다.
독일의 경우, 노무 중심의 건설업종은 94개가 있는데, 이 가운데 41개 업종에서 반드시 해당 분야의 마이스터(Meister) 자격증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53개 업종도 필수 요건은 아니지만, 마이스터를 고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우리나라로 보면 노무중심의 전문건설업종은 기능장이 영위하는 사업이다. 입찰제도도 마찬가지이다.
페이퍼컴퍼니를 근절하는 해법은 근본적으로 경쟁력 있는 업체가 낙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사후적으로 시공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통해 우수한 성과를 낸 업체가 선순환될 수 있는 환경 조성도 중요하다. 또, 직접시공 능력을 검증하는 방법도 있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연방예산이 지불되는 공사는 원도급자가 50% 이상을 직접 시공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직접시공 능력이 없으면 아예 입찰 참여가 어렵다.

 2. 종합과 전문건설업의 칸막이만 해결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주장한다.
또 선진국에서는 종합과 전문과 같은 업종 구분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종합과 전문 업종이 명확히 구분되는 이유는 면허제도보다는 공공입찰제도의 경직성에 기인한다. 실제 건설공사를 발주하다 보면, 종합공사인지 전문공사인지 불분명한 경우가 존재할 수 있다.
이 경우 외국에서는 양자(兩者)의 입찰을 모두 허용한다. 그런데 국내의 공공입찰제도는 종합건설업체만 입찰하던가 혹은 전문건설업체만 입찰해야 심사가 가능한 구조이다.
그러다보니 부대공사나 소규모복합공사 등과 같은 예외 규정을 두고, 특정 업종만 입찰 참여를 허용하는 편법이 나오게 된다.
또 외국의 경우, 단일 공종의 공사도 발주 규모가 커지면 그에 걸맞은 신용을 갖춘 기업에게 도급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 사례를 보면, 전기공사도 입찰 규모가 커지면 건축공사업체에게 낙찰시키고, 하도급을 허용한다.
전기공사가 대부분 부대(附帶) 공사를 수반하며, 발주자 보호 측면에서 소규모 전기공사업체의 기술력이나 신용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유이다.

 

 3. 발주자에게 재량권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또, 발주 방식의 다양화를 주장한다. 그런데 정작 발주자는 발주 방식의 다양화에 미온적이다. 재량권 부여도 반가워하지 않는다. 온갖 감사 (監査)나 청탁(請託)에 시달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발주자 입장에서는 조그마하지만 실속 있는 권한이 좋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서구 사회는 대부분 다민족 국가이고,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 작동한다. 그러나 동북아 3국은 다소 다르다.
중국의 ‘꽌시’나 일본의 ‘아이다가라(間柄)’라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단일민족 중심의 사회 환경이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발주 방식이나 입찰제도 측면에서 발주자의 재량이 제약되고, 획일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환경에서 자유롭지 않다. 발주자의 재량권 강화는 아마 대학수능시험을 없애고 대학별 자율에 맡길 정도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발주자의 재량권 강화는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나, 현실적으로는 수많은 분쟁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4. 발주 방식의 다양화 측면에서는 최근 선진국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는 프로젝트통합발주(IPD : Integrated Project Delivery) 방식이나 ECI(Early Contractor Involvement), CM at Risk, 하이브리드형 디자인빌드, 브리징(Bridging), PFI(Private Finance Initiative) 방식 등이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할 과제로 판단된다.
해외 플랜트공사에서 널리 적용되는 EPC(설계·조달·시공) 방식도 훈련이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일부 주에서 시행되는 다중시공계약(Multiple Prime Contract)을 다양화 사례로서 거론한다.
이 방식은 전기나 가스 등 일부 공종을 분리하는 특성이 있으나, 구조물 공사는 단일 시공업자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즉, 전기나 정보통신공사가 강제적으로 분리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전혀 새로운 발주 방식으로 볼 수 없다. 더구나 뉴욕주에서는 2013년 이후 대상 공사를 50만 달러에서 300만 달러 이상으로 상향해 크게 축소한 바 있다.

 5. 영업범위나 시공자격 관련 각종 분쟁이 발생하는 원인으로서, 건설업 등록제도가 불비(不備)하다는 점도 간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설물유지관리업이나 조경시설물설치공사업, 실내건축공사업, 상하수도공사업 등과 같이 업역 분쟁을 유발할 수 있는 업종 구분이 존재한다. 이러한 업종 구분은 외국에서는 흔치않다.
또, 업종별 시공자격이나 업무 범위도 명확치 않다. 이 때문에 타 부처에서 산림토목이나 환경전문공사업 등 유사 건설업종을 신설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외국에서 건설업종으로 구분하고 있는 전기공사나 소방시설공사업 등을「건설산업기본법」의 건설업종에서 제외하고 있는 문제점도 지적된다.

 

 6. 선진국의 사례를 고려할 때, 건설업 면허가 필요없다는 주장도 대두된다.
그런데 영국의 컨스트럭션라인(constr-uctionline)이나 프랑스의 공공건설협회(FNTP) 등과 같이 민간의 정보기구가 존재하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즉, 등록제도보다 더 상세하고 공신력 있는 건설업체 정보를 제공하고, 발주기관에서는 이러한 정보를 입찰에 활용한다. 미국은 31개 주에서 건설업 면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나 플로리다주 등 건설활동이 활발한 14개 주에서는 건설업면허 시험까지 실시하고 있다. 5시간 가량 시험을 보기 때문에 실무능력이 없는 자는 아예 건설업을 영위하기 어렵다. 일본에서는 건설업 등록제가 아닌 ‘허가제’를 운영하고 있다. 즉, 선진국에서도 건설업면허를 운영하는 사례가 많으며, 설령 건설업 면허제도가 없더라도 사회적인 스크리닝이 허술하지 않다.

 7. 종합건설업은 공사관리를 담당하고, 전문건설업은 하도급 직접시공을 담당한다는 경직된 시각이 존재한다. 그런데 통계를 보면, 전문건설업종도 40%가량이 원도급 시공이다. 또, 최근 종합과 전문 업종 간 분쟁이 심해지는 이유는 양 업종이 모두 공사관리자로서 기능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을 가보면 직접 시공을 담당하는 시공참여자, 현장용어로는 작업반장이나 오야지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30여년 전 이러한 시공참여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인 것이 단종건설업, 즉, 전문건설업종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보니 시공참여자는 다시 생기고, 노무 중심의 전문건설업종은 중간관리자로 변모하여 왔다. 따라서 정상적인 해법은 전문건설업종을 본래의 시공자의 위치로 되돌리는 것이다.

 8.「건설산업기본법」에서는 종합건설업을 ‘종합적인 계획・관리 및 조정을 하면서 시설물을 시공하는 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시공업자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외국 사례를 보면, 종합건설업은 단순한 시공뿐만 아니라 사업계획에서부터 설계, 엔지니어링, 기자재 조달, 시설물의 운영관리(operation & maintenance)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종으로 인식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설계와 시공이 단절되고, 기자재 조달마저 관급(官給)이 일반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종합건설사의 해외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시공성(constr-uctability)이 높은 설계를 하려면, 설계인력과 시공인력의 호환이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설계와 시공 업무의 단절은 수십년간 이어져왔다. 턴키 발주를 보면, 대부분 설계업체를 끌어들여 임시 합동사무소를 차린다. 본질적으로는 시공사가 사내(inhouse)에서 직접 설계를 해야 한다.
일본에서 ‘제네콘’으로 불리는 종합건설업체들은 기본적으로 설계와 엔지니어링 기능을 내장하고 있다. 독일의 건설업체도 실시설계 능력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
즉, 종합건설사의 혁신 방향은 설계와 엔지니어링 기능을 내장하고, 건설과 관련된 모든 서비스가 가능한 주체로 혁신하는 것이다. 다만, 중소건설업의 경우, 혁신적인 공사관리능력을 갖춘 회사나 복합 공종의 직접시공 능력을 갖춘 건설사로 육성하는 것이 해법이다.

 

 9. 원·하도급간 불공정은 항시 거론되는 단골 메뉴이다. 그런데 대한건설협회 자료를 보면, 공공공사에 참여하는 종합건설사의 수익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하도급 불공정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제로섬(zero-sum) 게임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건설산업의 현실을 진단한 후, 모든 공사참여자가 상호협력하고 상생(win-win)이 가능한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특히 상생협력을 도모하려면 근원적으로 저가 낙찰이나 리스크 전가(risk transfer) 등 발주자의 불공정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120여 품목에 달하는 공사용자재의 발주자 구매 등과 같이 외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규제도 지양해야 한다. 그보다는 영국의 파트너링 방식과 같이 장기적인 상호협력과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중시해야 한다.

 10. 건설근로자 보호는 중요한 정책적 과제이다. 예를 들어 근로시간 단축이나 작업환경 개선 등이 중요하다.
다만 그로 인한 공사기간 증가나 추가 비용에 대해서는 발주자가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발주자가 근로자 임금을 직접 지급하거나 PW(Prevailing Wage) 방식은 세계 각국에서 보편화된 방식이 아니다. 임금 체불은 대부분 지불보증(payment bond)으로 해결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일부 주에서 PW가 시행되는 미국은 여타 유럽국가에 비하여 공공분야의 건설노임이 2배 이상 높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즉,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필요하다면, 실비정산계약(cost-reimbursement contract)이나 타켓코스트 방식 등이 유용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10여년 전 선진화위원회 때도 그랬지만, 건설업의 경쟁력 강화를 추구하면서 업역(業域)이나 업종에만 얽매여 있어서는 곤란하다.
외국에서 수립된 다양한 건설산업 대책을 보더라도 업역이나 업종에 함몰되는 사례는 없다. 그보다는 등록제도나 입찰제도, 공사관리제도 등 제도 전반에 걸쳐 스크리닝 장치의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
또, 공사비나 공기(工期) 중심에서 벗어나 안전이나 품질, 환경을 중시할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도 중요하다. 우수한 엔지니어가 현장 근무를 선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안전사고 저감, 작업환경 개선, 공사참여자의 커리어패스(career path) 구축 등도 중요한 과제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파이낸싱이나 설계엔지니어링, 원가계산, 클레임 대처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건설산업의 실질적인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리 = 한국건설신문 김덕수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