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구멍뚫린 법망, 멍드는 철강산업
기자수첩-구멍뚫린 법망, 멍드는 철강산업
  • 문성일 기자
  • 승인 2001.10.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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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일 기자 취재1부
최근 메이저급 모 건설회사가 서울 강남지역에서 건설중인 대형 주상복합 프로젝트에 국산이 아닌 일본산 H형강을 전량 수입키로 결정, 업계에 씁쓸함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미국/일본 등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나라도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 회사의 이같은 결정은 국내 철강업계에도 큰 허탈감을 안기고 있다.
이와 관련 국내 철강업계는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덤핑의혹이다. 즉 국내 철강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적어도 가격경쟁력면에서 일본보다 한수위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일본제품 수입 이면에는 일본 철강업계의 과잉생산에 따른 밀어내기식 덤핑이 작용한 게 아니냐라는 것.

물론 확인과정이 필요하지만, 이처럼 덤핑공세가 펼쳐질 경우 가뜩이나 중국이라는 거함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되는 국내 철강업계의 타격은 엄청날 것으로 우려된다. 더구나 이같은 철강업계의 어려움은 건설용으로 사용되는 철강제품에 대한 요소기술 개발에도 절대 도움이 안된다. 벌이도 시원치않은 상황에서 기술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도 있다. 건설용 철강재 사용과 관련된 현행법은 건축법과 건설기술관리법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 실정법은 규제완화라는 미명아래 최근들어 사용검수나 용도 확인과 관련된 항목이 삭제되거나 대폭 완화되면서 러시아나 중국 등 동구권으로부터 저가의 저질 철강재들이 무분별하게 반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러한 저질 철강재들은 국내 건축공사에 그대로 투입되고 있으며, 이는 품질확보는 물론 건축시설물 안전에도 심각한 문제를 유발시킬 가능성이 크다.

국내 기간산업 보호도 절실하다. 일본의 경우 시공자와 철골제작/설치 및 공급사 등 사용자들이 규격과 함께 실험 등을 통한 관리를 엄격하게 하고 있음은 물론, 우리의 KS 규격과 같은 JIS 규격을 확보하지 않은 제품은 절대 사용치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KS 규격없이도 버젓이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재팬 스탠다드'는 '코리아 스탠다드'가 돼도, '코리아 스탠다드'는 '재팬 스탠다드'가 절대 될 수 없는 서글픈 예다.
산업용 철강재는 자동차 등 기업 자체에서 생산하는 제품에 불과하지만, 건설용은 국민 다수의 재산과 생명을 담보로 한다. 구멍뚫린 우리 법망이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키고 있으며, 국내 기간산업을 얼마나 멍들게 하는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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