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문학37-최종회> 실존으로서 ‘거주성’의 회복, ‘주택’은 실존의 강력한 토대
<건설인문학37-최종회> 실존으로서 ‘거주성’의 회복, ‘주택’은 실존의 강력한 토대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7.10.30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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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창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희망의 도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_(3) 도시 인클로저와 거주위기, 거주자원의 공유화

실존으로서 ‘거주성’의 회복, ‘주택’은 실존의 강력한 토대

 ㉢pixabay


< 토지주택은행, 일상화 된 거주위기의 대안 >
 └  ‘LH 토지은행’… 부동산 가격 상승기를 전제한 비축 아닌 거주자원의 공유성 확보 위한 “토지주택은행”으로 재편해야 

 └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토지주택은행 체제는 거주성으로서 주택의 본질 보호하고 회복시키기 위한 장치로 발전해야



5. 실존으로서 거주성의 실현과 토지주택은행

▲ 김용창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지난호에 이어> 신자유주의 도시재생과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인클로저는 현대 도시에 대한 어떤 성장전략이나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거주의 위기가 일상적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스에게 협력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마틴 하이데거(Heidegger)에게 거주(Wohnen, Dwelling)는 인간 실존의 근본 출발점이자 가장 중요한 철학 대상이었다.
이 세계 속의 인간은 사물이나 존재자에 대한 의미부여 작용을 통해 그 쓰임새와 쓰일 자리를 만든다. 이러한 ‘세계 만들기’는 기본적으로 거주 또는 머무름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생활세계, 장소와 공간의 형성은 삶의 과정으로서 거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룬다는 것이 그의 사상이다.
특히 후기 하이데거 사상에서 거주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51년 다름슈타트(Darmstadt)에서 ‘인간과 공간’을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했던 강연인 ‘건축, 거주, 사유(Bauen Wohnen Denken)’는 인간실존에서 거주의 본질과 의미를 잘 드러낸다. 여기서 하이데거는 하늘, 대지, 신, 그리고 유한한 삶의 인간이라는 네 가지 요소(사방; Geviert, Fourfold)가 하나로 포개져 조화를 이루는 것이 세계이며, 장소는 그 조화를 가능케 하는 터전이라고 말한다.
거주는 네 가지 요소를 소중히 보살피고, 연결(관계)하면서 그 조화의 터전을 만드는 인간 실천과정으로 설정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존재 양식으로서 거주가 없다면 세계도 장소도 없다는 것이다.
물리적 사물로서 주택은 거주라는 삶의 과정 속에서 인간적 의미부여를 통해 그 쓰임새와 쓰일 자리를 비로소 찾으며, 세계와 장소를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물리적 사물로서 주택과 주택건축이 세계를 만드는 삶의 과정 즉, 거주 자체가 일어나도록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물론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주택은 때로는 상충하기도 하는 다양한 의미와 목적을 갖고 있다.
우선 물리적 거처와 안식처로서 주택은 기본적으로 삶을 제공하는 공간과 가정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내부와 외부의 구별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주택은 사회관계의 기본구성 단위로서 가정(home), 경제 단위로서 가구(household), 물리적 단위로서 거처가 융합된 사회공간체계로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음으로 생활양식과 생활경험의 토대로서 주택은 가정생활과 가족관계를 통해 언어습득, 양성관계(gender), 감성과 정체성 형성, 도덕적 사고, 질서와 규율개념, 관습전수 등 사회적 관계와 사회제도의 기초가 만들어지고 재생산되는 곳이다.
그리고 인권으로서 주택은 주로 마샬(Marshall)의 시민권(citizenship) 개념에 기초하여 주거권이나 주거복지를 사회적 권리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지배적인 관념은 자산 및 투자대상으로서 주택일 것이다. 자본이나 개인 모두에게 부(wealth)를 축적하는 수단으로서 의미가 가장 두드러진다.
자본시장과 공간시장의 통합추세는 주택의 이러한 측면을 더욱 부각시키며, 주택을 경제위기의 소용돌이로 쉽게 빨려들도록 만들고 있다.
주택을 둘러싼 이러한 여러 가지 의미는 결국에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거주성으로서 주택과 비인간적 물질성이자 자본성으로서 주택의 충돌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는 세계 속의 존재로서 인간실존을 우위에 두는 것이고, 후자는 도구성(수단성)이 실존을 압도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들어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경제적 공익이데올로기에 입각한 도시재생과 사적이익을 위한 강제수용, 경제의 세계화와 금융화, 부동산금융의 발달은 실존으로서 거주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는 것은 물론, 거주의 위기를 만성화하고 있다.
거주의 의미가 부차적이 되고, 거주자가 의미를 갖지 못하는 주택건축 행위와 주택, 자본성으로서 주택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세계 구성요소의 조화가 불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이며, 금융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토지주택은행체제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기존의 토지은행 제도는 통상 미래 토지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사전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공적으로 토지를 비축하였다가 공익사업, 특정목적사업, 도시성장관리, 시장조절 목적 등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간의 역사적 경험을 보면 토지은행제도는 매우 다양하지만 크게 네 가지 모델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경제성장 국면, 즉 토지가격 상승기에 대비하기 위한 모델이다.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전통적인 토지은행 모델로 저가의 공공사업용 토지공급, 토지가격 상승 억제 및 저렴한 주택공급, 무질서한 도시팽창관리를 주요 목적으로 한다. 한국을 비롯하여 스웨덴, 프랑스, 일본에서 대표적으로 시행중이다.
다음으로는 경제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유형으로서 미국이 대표적이다. 앞의 유형과는 반대로 부동산가격 하락이나 장기적 침체기에 부동산 가격폭락과 부동산 방기를 억제하기 위해 비축ㆍ보유하고, 생산적 용도로 해당 부동산을 전환시키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
세 번째는 중국 모델로서 경제성장 국면에서 도시팽창을 조절하는 전통적 모델의 성격도 가지면서 경제체제 전환기에 새로이 토지시장을 안정적으로 형성하고, 토지자원을 용도에 맞추어 적절하게 배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네 번째 유형은 동ㆍ중부 유럽 모델로서 경제체제 전환기에 소유권 회복 중심의 토지개혁을 실시하였으나 토지파편화가 대두되어 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주로 농업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시행하는 모델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토지은행 모델가운데 금융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모델로는 미국 토지은행 제도를 준거모델로 삼을 수 있다.
위기관리형으로서 미국의 토지은행제도는 이름과는 달리 토지주택은행이며, 제조업에서 서비스산업으로 산업구조가 바뀜에 따라 급격하게 인구가 감소한 舊산업도시에서 발생한 조세체납, 압류, 미점유, 방기 부동산을 재활용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1971년 세인트루이스를 시작으로 클리블랜드, 루이빌, 애틀랜타에서 20세기 후반 지방정부 조직으로 등장하였고, 이러한 모델을 1세대 토지은행이라고 한다.
그리고 1999년과 2003년의 미시간 주 입법 개혁, 2008년과 2010년의 오하이오 주 입법개혁 이후 등장한 2세대 토지은행을 거쳐, 2011년 조지아, 2012년 미주리, 뉴욕 및 펜실베이니아, 2013년 네브래스카에서 주 전체에 적용하면서, 토지은행 작동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목적의 토지은행 전문 시스템을 갖춘 3세대 토지은행이 등장하였다.
이처럼 경제금융위기 국면에서 문제부동산의 선제적 비축과 관리를 통해 근린지역의 안정화와 시장정상화(회복)를 목적으로 하는 토지은행이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따른 주택 압류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미국 토지은행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연방 정부의 자금 지원, 주 정부의 수권 법률, 지역사회 주도적 운영 등의 거버넌스를 갖추고 있다.
조세체납, 압류 등 문제부동산이 야기하는 각종 해악을 제거하여 정상적인 시장성을 회복시키고, 조세기반을 다시 안정화시킴으로서 생산적 용도로 전환과 근린지역 안정, 지역사회 활력 회복을 도모하는 것이 일반적인 토지은행의 기능이다.
토지은행은 증여, 이전, 교환, 구매, 기부 등을 통해서 미점유, 방기 및 조세체납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고, 특히 재산세 징수체계 개혁입법과 토지은행 수권 법률에 근거하여 과세당국과 협약을 통해 민간부문에 앞서 우선적으로 문제 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다.
운용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비축ㆍ보유 부동산에 대해 면세하며, 개발ㆍ재개발, 신축, 철거, 복구, 수선, 보존, 녹지공간으로 전환 등의 활동들을 제한 없이 할 수 있고, 처분방법으로는 양도, 판매, 교환, 임대, 무상양도, 저당 등을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다.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지방정부와 조세 환수 협정(tax recapture agreement)*을 통해서 토지은행이 정상 시장으로 복구시킨 부동산들에 대해서 최대 5년 동안 50%의 재산세를 공유하여 토지은행 운용재원으로 충당할 수 있다.

*조세 환수 협정의 핵심전제는 토지은행이 재산세 수입이 발생하지 않던 조세체납부동산을 정상화시켜 사적 주체에게 이전하면 그 부동산은 과세대장(tax rolls)에 다시 등재되고, 일정기간 동안 토지은행과 지방정부가 재산세 수입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미시간 주에서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 <필자 주>
 

미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토지은행은 경제금융위기 대응에는 부적합한 모델이다.「공공토지의 비축에 관한 법률」에 따른 토지은행은 공공토지의 비축 및 공급, 토지비축계획 수립지원, 토지수급조사 등 토지은행사업 시행을 위하여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설치하는 토지은행 계정을 의미하며, 기본적으로 부동산가격 상승기를 전제로 한 모델에 해당한다.
아울러 지방정부가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토지은행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 모델처럼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토지주택은행 체계로 바꾸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첫째로는 토지은행 목적을 다시 설정하여 기존의 공익사업용지 사전 비축 중심의 목적을 벗어나 이른바 하우스푸어 문제를 포괄하고, 미국처럼 문제지역이나 침체지역의 활력을 회복하는 차원에 초점을 맞추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택ㆍ토지에 대해서는 금융자본 논리 중심의 일반적인 부실채권처리방식이나 기구를 벗어나야 하고, 거주성 회복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
둘째로 경제금융위기의 상존시대, 장기적 저성장시대라는 점을 고려하여 부동산가격 상승기를 전제로 한 현재의 토지은행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편하여야 한다.
주택을 포함하는 토지주택은행 개념으로 전환하고, 공공임대주택 리츠 개념도 포괄할 수 있도록 취득, 보유, 부동산운용, 처분, 조세 등 제도운용과정에서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기국면이라고 하더라도 각 지역마다 직면하는 토지주택 문제가 다르고, 도시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여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토지주택은행제도를 운용하게 하거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하도록 보다 개방적인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
기본적인 철학은 거주자원의 공유성을 확보하고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토지주택은행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6. 맺음말 : 거주의 실존성 회복

영국에서 시민혁명의 사상적 지주이자 권리청원을 기초한 법관 에드워드 쿡(Edward Coke)은 1604년 한 재판(Semayne 사건)에서 주택을 실존의 강력한 토대로 천명한다. 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주택은 자신의 요새이며, 침입과 폭력에 대한 방어와 휴식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판결하였다(Coke, 1604).
이처럼 주택은 거주성을 그 본질로 하는 것으로서 가정과 가족생활의 토대, 감성의 형성, 생활의 안식처, 자아 및 정체성 형성, 사생활과 친밀성 및 소속감 생성, 지역사회와 사회관계 형성 등의 터전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사유재산권의 대상 이나 재산 투자, 수익추구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다.
다시 하이데거의 실존으로서 거주라는 철학적 사유로 돌아가자면, 실존으로서 거주성의 회복을 위해 상품과 물리적 건축물이라는 물신성으로서 주택이라는 단순 관념은 반드시 우리가 철저하게 극복해야 한다.
거주의 의미가 부차적이 되고, 거주자가 의미를 갖지 못하는 주택건축행위와 주택, 자본성으로서 주택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세계 구성요소의 조화가 불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토지주택은행체제는 무엇보다도 거주성으로서 주택의 본성을 보호하고, 회복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 내 존재로서 인간의 실천과 조화로운 세계형성이 이루어진다.
거주성이 뒷전으로 밀리는 주택의미와 주택정책은 인간의 세계 내 존재로서 실존성을 망각하는 것이며, 결국에는 주택과 주택건설자본, 금융자본 스스로의 존립근거도 소멸시킬 것이다.

 
하이데거의 다음 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도처에서 주택부족을 말한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을 공급하고, 건설을 촉진함으로써 그 욕구를 채우려고 행동한다 … 그러나 주택의 부족을 위협하는 것은 그대로 쓰라리게 남는다. 거주의 진짜 역경은 단지 주택의 부족에 있지 않다 … 진짜 역경은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들이 거주의 본성을 도대체 새로이 찾으려 들지 않는다는데 있으며, 거주의 의미를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는데 있다 … 인간이 거주의 진짜 역경을 역경으로서 여전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데 인간의 고향상실(Heimatlosigkeit, 존재의 진리 망각)이 있다.” 

Hardt and Negri(2009)는 단순히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새로운 형태를 생성시키는 이상적인 것으로서 공유적인 것을 위치시키고 있다. 그것도 같음의 범주가 아니라 특이성들의 긍정(affirmation of singularities), 즉 다중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위정치로부터 더 전진하기 위해 특이성에 기초한 공유적인 것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도시 인클로저와 공유화의 변증법적 관계는 오늘날 실존으로서 거주의 문제를 사유하고 해결하는데 하나의 중요한 접근법을 제공한다. - <끝>


정리= 한국건설신문 이오주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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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참고문헌과 각주는 생략되었습니다. 이 글의 완성본은 <희망의 도시> (2017, 한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제 37회를 마지막으로 17개월 동안 이어온 <건설인문학>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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