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리포트] “보행환경, 안전하고 매력적인 도시의 시작과 끝”
[연구리포트] “보행환경, 안전하고 매력적인 도시의 시작과 끝”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7.07.27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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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훈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미국 샌디에고 시 스패니쉬 아트 빌리지>. 아름다운 바닥패턴과 인간적인 공간은 모두가 선호하는 도시공간이다.

<연구리포트> 보행도시로 가는 길
“보행환경, 안전하고 매력적인 도시의 시작과 끝”


< 우리나라 보행중 사망자수 OECD평균 3배 >

└  ‘보행환경이 도시의 중요한 구성원리 될 때’ 진정한 보행도시
└  자동차도시 , 휴게소도시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시성 모색할 때
└  보행환경 개선 통한 매력적인 공간 창출이 곧 ‘도시재생 전략’

▲ 오성훈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도시연구본부 본부장 / 보행환경연구센터장

증기기관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마을의 공간구조에서부터 지역의 생산양식과 국가의 운영체제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구조와 체계가 인간의 근력과 속도를 기반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1829년 증기기관차가 시속 22km를 돌파한 이후에는 인간의 정주환경은 비약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산업혁명은 인간의 경제적 삶을 변화시킨 것 못지않게 공간을 이용하는 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도시공간은 인간의 속도가 아니라 자동차의 속도를 기준으로 재편되었고, 유사 이래로 인간에게 공간이용의 주요한 수단이었던 보행활동은 자동차 통행에 위협이 되는 느리고 걸리적거리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른바 ‘행동의 경제학’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연적인 욕구와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손가락만 움직여도 화면이 돌아가는 리모컨, 버튼만 눌러도 높은 곳으로 옮겨주는 엘리베이터, 손짓 한번으로 사람을 부를 수 있는 주종관계 등은 그러한 욕구의 구현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작은 움직임으로 큰 결과를 얻고자 하는 인간의 효율적 욕망은 자동차가 가지는 편리함과 속도가 주는 매력을 거부할 수 없었고, 많은 선진국의 도시에서는 자동차를 타고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자동차는 인간의 도시를 급격히 잠식해왔고 많은 현대도시는 자동차를 위한 공간을 우선적으로 계획하고 건설하였다. 문제는 자동차가 가지는 속도와 크기, 무게가 인간에게 어울리는 공간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1톤이 넘는 무게와, 황소만한 크기의 자동차는 인간의 수십 배에 달하는 속력으로 달려간다. 한가로운 들판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사는 도시 안에 이러한 맹수들을 풀어놓는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된다.

본질적으로 천천히 달리기 위한 목적이 아닌 맹수(자동차)들을 높은 밀도를 가진 공간에서 질서 있고 안전하게 운용하는 일은 매우 어렵고, 서로에게 답답한 일이다.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은 운전자는 보행자와는 다른 시야와 속도를 기대하며, 그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노력하면서, 도시공간의 보행자들을 성가신 장애물로 여기며, 성난 맹수처럼 이동한다.

그러한 맹수들에 대해 충분한 사회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적절한 물리적 시설물이 안전하게 보완되지 않은 도시공간은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위험을 가진 곳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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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시드니 앤젤 플레이스 버드케이지>. 으슥하고 위험하기까지 했던 좁은 길에 미술작품을 설치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즐거워하는 명소로 탈바꿈되었다. 이 좁은 길을 걸어가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나라의 도시가 바로 그러한 예인데, 인구 10만 명당 보행중 사망자수가 3.9명으로 OECD평균 1.2명에 비해 3배 이상 높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어린이와 노인들의 사망자수가 기록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들의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것에 익숙한 이들은, 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에 무감각하다.

자동차가 횡단보도로 들이대더라도, 다른 나라에서는 심각한 위협적 행위임에도, 별일 아니라는 듯 범퍼를 스치고 걸어가는 우리의 관행 속에서 많은 사람들 특히 어린이와 노인들이 희생되고 있다.

자동차의 신속한 이동을 위해 매일 5명 정도가 꼬박꼬박 원치 않는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문명화된 사회에서 윤리적으로 적절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기에는 우리의 일상이 너무도 심각하고, 바쁘고 또 힘들다.

일상적인 업무를 보러가거나, 저녁밥을 먹으러가거나, 배달할 물건을 운반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에 타인과 우리가족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도시가 바로 우리의 도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무엇이 그리 대단한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도시를 경영하거나, 경제를 살리거나 하는 중요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보도블록이나 조금 개선하자고 돈을 쓰기엔 급한 일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수많은 고속도로를 건설했지만, 이제는 고속도로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시속 100킬로가 넘는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한다. 하지만 차에서 내려서 걸어가야 하는 공간은 위험하다. 이렇듯 엉망인 도시에서 어떠한 활력과 매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곳에 그렇게 빨리 가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한 도시는 고속도로 휴게소와 같은 도시다.

널찍한 차로 폭을 갖추고 완만한 선형으로 고속으로 승용차가 주행하다가 완화차선을 거쳐 넓은 주차장으로 접근하고,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이나 식당 또는 집으로 이동한다. 때로는 산책을 하기에 적절한 공원에 차를 타고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개별적인 목적지들을 제외한 나머지 도시공간은 차량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별적인 공간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꾸미더라도 고속도로의 휴게소에 불과하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휴게소 도시’들은 황량해지는 고속도로변의 공공공간으로 가득 차게 되고, 개별공간은 도시로의 공간적 통합에 실패하게 된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고속도로와 배타적인 단지(Gated Community)의 연속체이며 도시성(Urbanity)을 상실한 공간이 된다. 이러한 도시가 바로 ‘자동차의 도시’다.

▲ <캐나다 밴쿠버 빅토리아 차이나타운>. 좁은 길이지만 작은 보도확장(Curb Extension)을 더해 횡단하는 보행자들의 실질적인 안전과 심리적인 안정감을 확보하고 있다.
▲ <서울 노원구 노원로1가길>. 서울시의 도로다이어트 시범사업으로 조성된 녹지대와 휴식 공간. 자동차의 공간을 조금씩 줄이면 주변의 공간들이 안전하고 매력적으로 조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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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 일상화된 시대에 우리는 특정한 도시들을 선호하고 방문하고 싶어 한다. 관심의 대상이 되는 도시들이 어떠한 물리적 환경을 갖추고 있는지 살펴보면, 활력이 있고 매력적인 도시공간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단서를 엿볼 수 있다.

좋은 도시를 정의하기 어렵고, 때로는 무엇이 아름다운 도시인지 말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방문하기를 원하는 도시가 분명 있다.  10차선이 넘는 광로에 질주하는 차량을 바라보기 위해서, 고가도로가 가득 들어서 있는 입체교차로에 서기 위해서 8시간씩 비행기를 타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어떤 곳을 선호하는지를 생각해보아도 매력적인 도시공간의 요건은 쉽게 알 수 있다. 인간적인 척도를 가지고, 크기와 용도에 있어서 다양한 것들이 혼재되어 있고, 걸어 다니기에 쾌적한 장소야 말로, 사람들이 선호하는 도시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공간들은 인간에게 적합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보행환경이 열악하면서 매력적인 도시는 찾아보기 어렵다. 매력적이지 않은 도시에는 활력이 없다.

경제적인 쇠퇴, 인구의 유출을 고민하는 도시에 제시되어 온 많은 논의들, 예를 들어 뉴어바니즘(New Urbanism)이나 도시재생전략이라고 하는 수많은 대안에 보행환경의 개선을 통한 매력적인 공공공간을 만드는 내용이 빠지는 경우는 없다.

사람들이 가고 싶은 곳은 넓은 주차장으로 점철된 메마른 공간이 아니라, 천천히 걸어가다가 강변 너머를 살펴보기도 하고, 잠시 나무그늘 옆에 앉아 쉬어갈 수도 있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조용히 바라볼 수도 있는 도시공간인 것이다.

뉴욕의 맨해튼은 차도를 줄여 보행자가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파리는 도심부를 시속 30km로 자동차의 속도를 제한하여 보행자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가로를 만들고 있으며, 바르셀로나는 인접한 가구(Block)들을 묶어서 차량의 진입을 억제하여 편안하고 매력적인 보행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수많은 도시에서, 우리나라보다 소득이 낮은 나라들에서조차 도시에서 자동차를 위한 공간을 줄여, 보행자를 위한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 <미국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 차선 다이어트를 통해 보행자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도심에 값싸게 마련하였다. 보행자를 위한 공공공간은 어엿한 시설물이 없더라도 밀도 높고 비좁은 도시 한복판일수록 장소로서의 가치가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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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보행환경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매우 부족하다. 이는 보행중 사망자수의 비율이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안전하고 매력적인 보행자공간의 수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보행관련 사업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몇 가지 있다. ‘보행테마파크 사업’, ‘틈새 보행사업’, ‘안전만을 고려한 보행환경 개선사업’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먼저 ‘보행테마파크 사업’을 살펴보면, 이는 근본적으로는 상업적인 보행몰을 건설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보행테마파크에서는 기존 도시공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쾌적하고 매력적인 보행환경을 허락하지만, 테마파크를 나서는 순간 다시 기존의 위험하고 불편한 도시공간을 마주해야하는 문제가 있다.

또 다른 함정은 이른바 ‘틈새 보행사업’이라 부를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차량의 흐름이나 자동차를 위한 공간은 거의 손대지 않은 채 나머지 공간을 개선하면서 생색을 내는 경우로, 이러한 유형의 사업은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면서 실제로는 오히려 보행환경이 악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마지막 함정은 보행환경을 개선한다고 하면서 오로지 ‘안전만을 고려하는 사업’이다. 안전은 강조할수록 좋지만, 지나친 불편함을 감수하게 하거나 도시공간의 활력을 저하시키면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결코 좋은 개선안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좋은 보행환경은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매력적이면서 쾌적한 공간을 조성하는 방안을 통해 구현된다. 누구나 좋아하는 길, 지속가능한 도시공간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각론적 고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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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시대에 그러했듯, 천재적인 도시계획가가 도시를 그리고 그에 따라 모든 것을 배치하거나 몇 개의 개념적인 구분으로 도시를 짜나가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보행환경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도시의 일부분에 대한 개선방안이 아니라, 실증적 근거를 가지고 도시의 안전함과 쾌적함, 매력도를 제고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기존 도시에서 나타나는 교통체증, 생태적 황량함, 에너지의 과도한 소비, 기후변화에의 대응 등 다양한 측면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시의 중요한 구성원리로서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한 세기가 넘도록 인간의 도시를 장악해온 자동차의 영향력을 이제는 축소시키면서, 인간을 위한 쾌적하고 매력적인 도시공간을 다시금 가꾸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정리= 한국건설신문 이오주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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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성훈 | 국무조정실 산하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도시연구본부장. 서울대학교에서 도시를 공부하였다. 보행환경의 개선을 위한 도시정책 및 도시설계에 대한 연구를 주로 수행하고 있으며, 저서로 『보행도시: 좋은 보행환경의 12가지 조건』(2011), 『보행자를 위한 도시설계 1권』(2013), 『지도로 보는 수도권 신도시계획 50년 1961~2010』(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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