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좌담] 급변하는 미래…“건축서비스산업, 전략은 있는가?”
[창간좌담] 급변하는 미래…“건축서비스산업, 전략은 있는가?”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7.07.19 15: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본지_AURI 공동기획 - ‘미래 건축서비스산업 전망과 대응’

▲ 왼쪽부터 서수정 AURI 건축연구본부장, 김무홍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부소장, 김은희 AURI 부연구위원, 박인석 명지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김현준 강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이양재 엘리펀츠 건축사사무소 대표.

한국건설신문_건축도시공간연구소 공동기획
<미래 건축서비스산업 전망과 대응 방안 모색> 좌담회

패 널 : *초대패널-주최측 순, 가나다 순 
김 무 홍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부소장 
김 현 준  강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박 인 석  명지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이 양 재  엘리펀츠 건축사사무소 대표
김 은 희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부연구위원
서 수 정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인구감소ㆍ저성장ㆍ4차혁명…급변하는 미래,

건축서비스산업, 전략은 무엇인가?”

└ 4차 산업혁명 논하기 전에 현재의 모순부터 해소해야 ┘
└ 대기업ㆍ중소업체 ‘투트랙’으로 미래전략 다각화 해야 ┘
└ ‘직영공사ㆍ하급건축’ 우량화하면 건축서비스산업 시장도 확대 ┘


한국건설신문 이오주은 기자 =  본지와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는 2017년 초부터 약 6개월간 ‘미래 건축서비스산업 전망과 대응방안 모색’이란 주제로 담론을 구축하고 저변을 형성하기 위해 분야별 전문가를 다층적으로 인터뷰해 왔다.

먼저 사회학자, 경제학자, 언론인 등 타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인구ㆍ경제ㆍ사회ㆍ기술 등 세계 공통의 변화 요인을 진단했다. 또 사회적 경제, 공유경제, 노마드형 전문가 등 새로운 경제ㆍ산업 모델을 구현 중인 젊은 스타트업과 실무자들에게 현장 상황을 수집했다.

건설산업에 연관될 것으로 예측되는 ▷빅데이터 ▷3D프린팅 ▷BIM(빌딩정보모델링) ▷가상ㆍ증강ㆍ혼합현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로봇 ▷뇌과학 분야 연구자로부터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진단하고 대응전략의 수위를 고민했다.

이어 본론에 들어가 건축 산ㆍ학ㆍ연 전문가와 건축서비스산업의 현황과 실태를 파악하고, 급격한 변화 안에서 미래 건축서비스는 어떤 대응전략을 구사해야 하는지 논의했다.

전통적으로 건축서비스라 함은 설계와 감리를 의미했지만 이제 그것만으로 급변하는 시장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었다. 기존 건축사 업무(설계ㆍ감리ㆍ기획 등)에서 앞으로 추가 요구되는 서비스는 무엇인지, 시장의 수요를 파악하면서 건축서비스에 관한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이번 좌담회는 이상과 현실, 정부와 시장, 이론가와 실무자 등 다양한 괴리와 간극의 원인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사이다 같은 자리였다. - <편집자주>

 

 
| 서수정_건축도시공간연구소 건축연구본부 본부장 |  정부출연연구기관 건축도시공간연구소는 지난해 ‘건축서비스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전문가 TF를 진행했다.

올해 1차 초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인구사회구조 변화와 기술 변화가 건축 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조망하기 위해, 인문ㆍ사회과학 분야 전문가와 4차 산업 관련 전문가들을 모시고 3~4회에 걸쳐 의견을 들었다.

그 결과 가까운 미래의 건축과 도시공간은 1차 산업혁명 시기와 같은 급격한 패러다임의 변화보다 건축설계기법과 공법 등 생산방식에서 기술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초기단계지만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인구감소 및 인구구조 변화와 저성장 문제는 소규모 건축물 수요와 맞물려 건축 생태계에 빠른 변화가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현황을 면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연구소는 건축서비스산업 관련 통계를 조사ㆍ분석 중이며 산업실태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오늘은 ‘건축서비스산업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기에 앞서 네 분의 건축 전문가와 함께 인구ㆍ사회ㆍ경제ㆍ기술 변화가 건축서비스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본격적으로 의견을 나누기 전에 타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연구소가 조사정리 중인 내용을 김은희 박사님이 먼저 정리해 드리겠다.
 

 
| 김은희_건축도시공간연구소 부연구위원 |  저출산ㆍ고령화ㆍ인구감소 현상으로 고령사회 진입이 불가피하다는 전제 하에, 1인가구와 독거노인의 증가, 가구규모 축소와 생산인구의 고령화, 노동력 부족국가로의 전환, 재정수지 약화와 성장률 둔화 등이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와 맞물려, ▷노동집약적 산업 및 아웃소싱의 확대 ▷공유경제 확산 ▷산업분야 간 융복합 ▷산업기술의 지능화 등 건축을 둘러싼 환경을 급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건축서비스산업과 연계해 보면 공급자와 수요자 패턴이 다각화되는 변화가 두드러진다. 건축 및 공간 공급자가 기존의 건축사 중심에서 비전문가 또는 타분야 전문가와 협업한 공동체 등으로 공급 형태가 분화하고 있다.

대중이 수요자로 부상하고 있는 점도 특징적이다. 기존 대형건축물 소유주와 대자본가 중심에서 앞으로는 소규모 건축물 소유주는 물론, 공공부문도 수요자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여성과 노인이 잠재적인 건축주로 부상하고 소자본가나 지역공동체 등 도시재생 수요자가 등장함에 따라 노인시설이나 복지시설의 새로운 공급방식과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해졌다.

1인가구와 맞벌이 2인가구의 증가로 소규모 주거서비스 강화가 요구된다. 또한 대중이 수요 주체가 되면서 안전 등 공공부문의 역할이 증대해 전문 서비스인력의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를 키워드로 정리해 보면, ▷일자리 ▷편의ㆍ복지 ▷안전 ▷저비용ㆍ효율 ▷소규모ㆍ소자본 ▷지속가능ㆍ공유 ▷연결성 ▷융복합 ▷공공성 등이며, 그 대응방안으로는 ▷수요자의 의사 반영 ▷전문인력 양성 ▷유지관리ㆍ리모델링ㆍ개보수 및 소규모 정비사업 관련 서비스 수준 제고 ▷타분야 기술융합 ▷프로세스 차별화 등의 키워드가 도출된다.

변화하는 건축시장에 부합하고 대응 기술을 창의적으로 개발하려면, 분야 간 융복합과 협업을 통해 건축서비스를 차별화해야 하는데, 현재 비전문가와 전문가가 공동으로 업무에 참여할 수 있는 유연한 건축서비스산업 생태계가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고.

도시재생과 맞물려 소규모 건축물 시장의 활성화가 예측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신축 프로젝트에 대한 노하우는 적하고 있는 반면 공동주택 리모델링이나 개보수, 유지관리 업무의 전문성을 가진 설계사무소는 그 수가 적고 관련 기술도 시장 수요에 따르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건축계는 변화하는 대중의 수요를 어떻게 반영하고 건축서비스산업으로 연계시킬 것인가.
지금까지 분석한 바로는 업무의 절차와 과정상의 전략을 새롭게 세우고 분야 간 협업과 융복합 기술 연계로 생산성을 높이며, 미개발 시장을 분석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인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효율성과 경제성에 방점을 둔 서비스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4차 산업이 제시하는 기술 활용을 확대하는 방안이 유효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BIM의 경우를 보면 상용화 도구로 정착해야 하는데 반해 아직까지 업계의 대응이 미흡한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지속적으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공공서비스, 특히 안전은 파편적으로 관리할 것이 아니라 도시와 연계해 스마트시티 등 통합관리시스템과 함께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 서수정 |  건축물 착공의 86%가 500㎡이하 소규모 건축물이고 허가현황 건수도 100㎡미만 소규모 건축물이 44%를 차지한다.

아파트가 대량 건설되던 시기를 지나고 소규모 건축물과 리모델링 시장이 강조되면서 소자본ㆍ소기술의 가능성과 중간기술이 재조명되는 등의 변화를 가름해 볼 수 있다.

또 새롭게 포착되는 현상으로 1ㆍ2차 산업혁명 시기에 분업화된 기술을 다시 융합시키는 경향에 힘입어 설계영역뿐 아니라 기획, 마케팅, 매니지먼트, 프로모션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복합적으로 제공하는 젊은 건축가 그룹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연구소 조사결과 일본은 이미 2004년에 일본건축학회가 중심이 되어 ▷설계 ▷마케팅 ▷경제 ▷기술 ▷행정 ▷인력 등 각 분야 별로 TF팀을 꾸리고 수차례 회의를 거쳐 미래 건축서비스산업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건설이나 건축 분야가 타 분야와 달리 변화에 더딘 측면이 있는 만큼 국내 현실을 고려하여 현장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보면 좋겠다. 먼저 대형설계사무소는 미래 환경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4차 산업혁명 논하기 전에 현재의 모순부터 해소해야

└ 급변하는 미래…고령화ㆍ저성장ㆍ기술혁명축소도시
└ 시장은 지능화ㆍ고도화ㆍ융복합 서비스 요구하는데
└ 재래식 건축서비스 업무 대가와 노동집약적 현장의 한계

 
■ BIM과 IPD

 
| 김무홍_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부소장 |  미래 건축설계 환경변화 예측과 대응을 위한 현장에서 변화의 특이점은 분명히 있다.

3차원 건축설계기법, 빌딩정보모델링(BIM) 기술이 현장에 도입되고 활용되기 위해서 설계수행 인력의 기술적 능력배양이 필요하다. 또한 MEP(기계·전기·설비), 견적 등 협력사들과의 업무연계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시공사가 BIM을 도입해야 가장 확실하게 정착이 될 테지만 아직까지 BIM으로 시공하는 현장은 많지 않다. 민간 개발사업의 경우 워낙 변동이 많은 탓이기도 하다.

현재 많은 대형설계사무소들이 BIM 도입이 필연적이라는 판단 하에 BIM설계를 위한 기술력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BIM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능력배양과 MEP업체들과의 협업 및 관리를 위한 추가 업무에 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공공분야에서 일부 추가 금액을 인정해 줄뿐 민간분야에서는 그 비용이 적절히 책정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용적 측면은 비단 BIM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와 달리 재해ㆍ재난, 안전, 에너지, 각종 시뮬레이션 등 건축사 고유의 업무 외에 새로운 요구는 증가했지만 설계비는 과거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업무가 증가해도 대가로 인정하지 않으니 새로운 기술의 대중화에 걸림돌이 된다. 미래 환경의 변화에 현장의 대응 속도가 더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BIM이 새로운 기술로 정착하게 될 것이다. 시공사들이 BIM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가면 종이도면이 아니라 탭(Tab)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가. 도면이 수정되면 바로 메일로 보내고 업데이트 하는 수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상용화를 위해 기술 교육의 문제가 따르긴 하지만 활용하면 설계와 시공상의 현장오류는 분명히 많은 부분 수정할 수 있다.
 

 
| 이양재_엘리펀츠 건축사사무소 대표 |  선두적인 대기업과 달리 소규모 사무소의 현실을 볼 때 BIM이라는 하나의 잣대로만 보더라도 일률적인 적용은 어렵다고 본다.

미국의 사무소에서 일하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병원 프로젝트를 하나를 진행하는데 5년이 걸렸다. 불과 30명 규모의 사무실에서 모든 설계를 BIM으로 하는데 한 명은 라이브러리만 담당해서 만들어 넣었다.

수십 년 동안 담당자가 2D 캐드(CAD) 시절부터 3D 캐드, BIM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라이브러리를 꾸준히 축적하고 관리하고 있어서 이를 토대로 5년 동안 하나의 프로젝트를 BIM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이처럼 비용 투자와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온전한 BIM의 형태로 활용할 수 없다. 규모가 큰 프로젝트에서 대기업 건설사나 대형 설계사가 BIM의 중요성을 알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향후 다수를 차지하게 될 소규모 건축물 시장은 단순히 건축서비스산업 수준의 논의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건축 산업, 정확히 말해 ‘건설업’과 보조하고 연계할 필요가 있다.

소규모 아틀리에가 대형설계사무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술 상용화를 위한 인적ㆍ물적 투자를 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더욱 문제는 영세한 시공사는 아직 (BIM이나 3D도면은 물론) 2D도면도 잘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건축 선진국으로 알려진 일본의 경우 1인에서 6인 이내의 소규모 아틀리에 사무소가 전체 건축사사무소의 70%를 차지한다.

이들이 모두 BIM으로 작업하는가, 조금 조심스럽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 없다. 베타웍스(Betaworks)라는 툴(tool)을 사용하지만 이는 3D 프로그램의 하나로 모든 디테일을 해결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신 한 해에 수십만 채씩 지어온 일본의 ‘하우스메이커’(주택전문건설회사)나 주택 자재 회사들이 기성화 된 디테일을 제공해주고 있다. 따라서 설계사무소에서 BIM 툴로 디테일까지 하나하나 그리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화장실 유닛까지도 선택해서 꼽기만 하면 되는 기성품이 제공된다.  - 일본은 1990년대 후반부터 주택시장이 본격적인 성숙화 단계로 진입했다. 주택거래 침체와 임차수요 증가, 중고주택의 슬럼화와 노후화는 주택사업의 방식과 영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 들어 일본건설업의 핵심역량인 종합건설회사(제네콘)들은 대부분 주택분야에서 철수하고 종합부동산회사와 하우스메이커를 중심으로 임대ㆍ관리ㆍ중개 등 주거서비스 분야의 사업영역이 확대되었다. - <편집자주>

기성품은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건설비의 대개 60% 이상을 인건비가 차지하고 있다. 표준화ㆍ산업화된 기성 제품이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 건설기술인이 일일이 작업한다.

결국 BIM의 최종 완성이란, 도면의 단순한 3D화가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부터 시공 현장에 이르기까지 일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통합시스템이다.

결과적으로 아웃풋의 최종 단계는 현장 생산이 아닌, 공장제작 되어야 하는 부품화와 필연적으로 연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 국내 현실에 적합하게 대응해 나가려면 대기업과 영세 업체를 이원화 해 지원하는 ‘투트랙(two-track)’ 방식으로 가야 한다. 설계사뿐 아니라 시공사까지 소규모 기업이 동반성장하기 위해서는 건축서비스산업과 건설산업 간의 공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 박인석_명지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  미래 예측이란, 현재의 조건이 변화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본다면 보편적인 조건보다 직접적인 문제 상황이 어떻게 해소되고 개선될 것인가를 고려하는 것이 더 시급할 수 있다.

두 갈래로 생각을 해보자. 인구ㆍ경제ㆍ사회ㆍ기술 등 일반적인 변화 조건들은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전제로 접근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건축계가 당면한 모순적인 조건에 대해서 문제를 직시하고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실천 의지를 전제해야만 변화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양재 대표님은 매우 중요한 지점을 제시했다.

건축산업에 대한 고려 없이 (건축)서비스산업을 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건축산업의 문제는 무엇인가.

산업구조 측면에서 ‘하급시장’과 ‘감리분리’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건축서비스산업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고자 한다면 하급시장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지 시나리오부터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전체 착공의 86%를 소규모 건축물이 차지한다지만, 이중 영세한 시공업체가 중심이 되는 하급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통계조차 나와 있지 않다.

‘설계비 공짜’라고 선전하는 시공업체부터 500만원을 부르는 업체까지 규모도 추산할 수 없는 하급시장에서 건축서비스산업은 그 자체로 전무한 상황이다.

법제도 측면의 문제도 심각하다. 건축서비스산업이란 무엇인가? 비중이 가장 큰 대표적인 업무가 바로 ‘설계와 감리’다. 그런데 현 제도는 왜곡되어 있다. 건축공사 감리를 설계자가 할 수 없는 구조다.

이러한 문제 상황을 전제한 건축서비스산업의 미래 예측은 실효성이 없다. 현재의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와 실천방안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건설업은 토목ㆍ건축공사를 포괄하는 건설산업기본법 체제 안에 있다. 그중 토목은 건설기술진흥법으로 관리되어 왔다. 건설기술진흥법은 말하자면 토목서비스산업진흥법이다.

건축은 독립적으로 고려되지 않다가 최근에야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으로 분리됐다. 문제는 ‘설계’만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으로 간신히 옮겨왔다는 것이다. ‘감리’와 기타 건축서비스는 여전히 건설산업기본법 안에 있다.

이를 해소하려면 토목공사는 건설기술진흥법으로, 건축공사는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으로 건설산업기본법에서 온전히 분리시켜야 한다.

이러한 중차대한 해결 과제로 놓고 건축서비스산업의 미래를 전망해야지 일반적인 예측만으로는 추상적인 담론에 머물 뿐이다. 아울러 보편적인 미래의 변화 요인들은 건축계의 중요 과제를 백업(지원)하는 기재로 예측관리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노동력뿐 아니라 구매력 저하를 의미한다. 주택 매매는 감소하고 임대수요가 증가할 것이다.

원천적으로 공적 구조가 증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복지의 형태일수도 있고 사회주택이나 공공 또는 준공공 임대주택의 형태일 수도 있다. 어떠한 형태이든 다변화될 것이고 공공이 개입이 커지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또 하나, 건축시장이 점점 소규모화 되고 개별화되면서 기성 건축물을 리모델링하는 정비수요, ‘작고, 다시 고쳐 쓰는 수요’가 증가할 것이다.

이처럼 시장에서 소규모건축의 비중은 높아지는데 앞서 언급한 ‘하급시장’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미래에는 더욱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 허가방에 의해 우리 건축도시공간의 미래가 좌지우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건축산업에서 하급시장 문제와 설계 및 감리 서비스의 컨트롤은 국가과제로 다뤄야 할 만큼 중요한 과제이다. 공공의 역할 증대와 연계한 품질관리(QC; Quality Control) 제도화 방안과 접목시켜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 김현준_강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설계사무소를 병행하고 있기도 하고, 영국에서 10여년간 실무를 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국내 건축계의 현실이 열악한 것은 사실이라고 느낀다.

궁극적으로 리스크가 너무 많다. 아무리 작은 건축물을 설계해도 심의를 몇 번이나 받아야 한다. 에너지ㆍ안전ㆍ환경 등 관리하는 업무량은 계속 늘어난다. 우수한 건축물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과정 또한 다양한 의미에서 매우 험난하다.

여기에 BIM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 많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 것이라는 낭만적인 기대가 뒤섞여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 가보면 외국인 노동자로 인력이 대체되고 도면으로는 소통조차 잘 되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시공현장 구조가 지나치게 노동집약적이다. 아울러, 저렴하면서도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주던 재료로서의 ‘콘크리트’가 더는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 프로큐어먼트 사례 다이어그램(procurement diagram, ⓒMartin Grinnell)_자료제공 김현준
그렇다면 ‘리스크’란 무엇인가? 원칙적으로는 리스크가 많은 일일수록 대가를 많이 받는다. 그러나 국내 건축서비스산업의 현실은 관리하는 리스크에 비해 대가가 형편없다. IMF 이후 업무대가가 낮게 형성되고 이것이 그대로 고착되어 온 것 같다.

사실 BIM은 리스크 컨트롤 시스템이다. 제도판 위의 도면이 캐드로, 다시 BIM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통합발주체계’(IPD; Integrated Project Delivery)가 BIM의 중심 개념이다. IPD는 프로큐어먼트(Procurement)에 관계한다. BIM의 핵심은 3차원 이미지가 아니라 생산체계 패러다임을 관리하는 것이다.  - 영국에서는 발주자(건축주)와 시공자 간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시공계약방식을 선택할 시 주로 설계자(건축가)의 조언(Advice) 하에 각 건축 프로젝트의 특성에 맞는 시공계약방식을 선택하는 ‘협의단계’가 존재하는데 이를 ‘프로큐어먼트 (Procurement)’라고 한다. - <편집자주>

BIM의 반대급부도 존재한다. BIM이 설계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약간의 수치 조정이 아니라 근본적인 디자인 변경이 발생할 경우 처음부터 모델링을 다시 해야 한다.

BIM 초기 유저이고 SOM London 등에서 수행한 프로젝트 경험과 지금도 사용하는 유저임에 근거해서 말하자면, 비용과 시간의 한계상황에서 결국 디자인 수정을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BIM 모델링은 디자인이 변경될 수 있는 과정(Process)보다는 디자인이 어느 정도 고착화 된 후에 적용하면 오히려 생산적일 수 있다.


| 박인석 |  BIM이 발주자를 위한 기술이라는 뜻인가?


| 김현준 |  그런 면이 있다. BIM이 플렉시블(flexible)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에 따르는 리스크이기도 하다. 설계 중에 BIM을 사용한다면 그만큼 디자인을 제한하겠다는 의미이다.

건축은 고쳐야 좋아진다. 건축설계 과정에는 다양한 변경이 존재한다. 디자인 피드백이 없으면 우수한 건축물이 탄생하지 않는다.

여기서 첨언하자면 계약에 없는 건축주의 단순 변심이나 거듭되는 수정은 소송의 사유가 되기도 한다. 협상 단계에 명시되지 않은 업무는 계약서 하나로 제어가 안 된다.

설계변경 시점과 회수가 중요하다. 건축표준계약서에 그 시점과 회수 등에 관한 구체적인 명시가 있고 동의가 따라야 한다. 이러한 표준계약서가 선행되지 않으면 저가 수주에 더불어 대가 없는 업무들이 누적되고 반복된다. 여기에 BIM을 잘못 적용하면 수정까지 어려워지기 때문에 악순환은 계속된다.

그 책임은 설계하는 건축가에게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건축설계계약에 관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건축주에게 문제의 열쇠가 있다. 특히 사업 규모가 클수록 건축을 전공한 전문가가 프로젝트 매니저(PM)를 맡아야 한다.

중동이나 동남아 지역 대규모 프로젝트의 매니저는 대개 머리가 희끗희끗한, 경력이 많은 유럽인이나 미국인 건축가들이 맡는다.

이들은 클라이언트에게 고용된 ‘대리인’인데 도면의 제출 시점부터 전반적인 프로젝트 진행과 관리를 하면서 건축가를 다그치기도 하지만, 건축주가 무리한 요구를 해 올 때 건축가의 업무를 이해하면서 중재하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프로젝트 매니저가 없는 상황에서 건축에 무지한 건축주와 건축가가 바로 맞닥뜨리게 되면 건축가는 속수무책 고생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일정한 규모 이상의 사업은 프로젝트 매니저를 고용해야 한다는 개념이 민간은 물론 공공 부문에도 없다. 초고층 빌딩이나 기념비적 사업은 일부 예외가 되겠지만 일반사업에서는 인식 자체가 전무한 듯하다.

근본적인 문제,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바로 ‘표준계약서’이다. 우리는 ▷구조 ▷전기 ▷설비 ▷토목 ▷조경 ▷방재까지 설계와 관련된 모든 전문가 컨설팅 비용이 설계비에 포함되어 있다. 영국에서는 모두 설계비 밖에 있는 비용들이다. 건축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는데 사실상 전문가로 여기지 않는다고 해석된다.

영국의 유명 건축가의 경우 설계비는 공사비의 10% 정도라고 들었다. 2천억 공사비 규모의 프로젝트는 200억원이 설계비다. 구조ㆍ전기ㆍ설비ㆍ토목ㆍ조경은 포함되지 않은 순수 설계비다. 우리는 10%는커녕 5%도 받기가 어렵고, 이마저도 구조ㆍ전기ㆍ설비ㆍ토목ㆍ조경 컨설팅 용역비가 모두 포함된 금액이니 대조적이다.

예컨대 ‘음향 설계가 잘못됐다’면 그 후처리까지 설계자가 짊어져야 한다. 건축가가 지불하는 비용의 증가는 리스크의 증가와 같이 간다. 경우에 따라 이러한 비고유 업무의 클레임(claim)으로 사업체가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왜 설계단계에서 건축가가 모든 리스크를 떠안고 가야 하는지의 관한 의문이다. 돈을 지불하고 용역을 제공하는 일의 위상(hierarchy) 관계도 문제시 될 수 있다. 영국의 경우는 건축주가 건축가를 전체 프로젝트 설계의 리드 컨설턴트(lead consultant)로 지명하여 건축가의 위상을 높여준다.
 

대기업중소업체 ‘투트랙’으로 미래전략 다각화해야

└ BIMVR …영세 설계사ㆍ시공사는 먼나라 이야기
└ 영국 - 리스크 테이킹 업무대가 및 표준계약서 정착
└ 일본 - 100만 건축사 기반 ‘지역밀착형 주거서비스’


■ 4차 산업과 건축

| 박인석 |

| 김현준 |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혼합현실(Mixed Reality) 기술과 건축의 융복합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근 ARㆍMR 관련 프로젝트 기획안을 만들면서 3D공간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실제 공간을 다루는 건축 전문가의 필요성이 대두되기도 했다.
 

| 이양재 |  실내공간정보에 대한 가상현실(VR) 플랫폼을 개발해 VR 기반 홈퍼니싱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어반베이스’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가상현실을 활용해 마우스만 움직여서 새집으로 이사하기 전에 미리 인테리어를 체험해 볼 수 있다.

파트너 기업과의 협약에 따라 아파트 도면 데이터를 바탕으로 3D 이미지를 제공하면, 소비자는 자신이 입주할 아파트 데이터를 찾아 편집모드에서 벽지나 바닥재, 창호 공사 등을 가상으로 해 볼 수도 있다.

또한 실물 크기의 가구도 직접 골라서 배치해 볼 수 있다. 비용도 계산이 된다. 인테리어 산업의 성장과 VR 기술을 융합해 착안한 참신한 사업 모델로써, 어반베이스의 개발자이자 CEO가 바로 건축가이다.
 

| 김무홍 |  건축 설계과정에서도 이미 몇 년전부터 모형을 대신해 다양한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민간 프로젝트의 경우, 대형설계사무소는 계획안 제안시 클라이언트를 위해 3D 및 VR을 활용한 동영상 등 체험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이양재 |  스웨덴 가구기업 이케아(IKEA)가 개발한 증강현실 앱(App)에서는 소비자가 아이폰으로 직접 3차원 가구배치를 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을 건축에 접목시키는 시도들이 건축스타트업에서 등장하고 있다. CG업체가 진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설계업무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업종으로 전문화되지 않을까 싶다.
 

| 박인석 |  이런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들이 추가적인 업무대가로 연결되지 않으면, 발주처나 건축주가 설계사무소에 요구하는 서비스의 기대치만 높아지고, 자칫 업무 강도만 세어지는 상황도 우려해 볼 필요가 있다.
 

| 김무홍 |  그렇다. 현재로서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ㆍ도입되어도 서비스로 제공하기에는 건축설계산업의 이익률이 턱없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직영공사ㆍ하급시장’ 우량화로 건축서비스시장 확대해야

└ 새로운 업무의 등장…VR과 인테리어 융합한 플랫폼 등
└ 기획ㆍ마케팅 등으로 건축가의 코디네이션 역할 강화
└ 공간컨설팅ㆍ유지관리 등 ‘미래 건축서비스’ 분야 확대


■ 전문인력과 품질보증

▲ 서울시 저층주거지 분포 현황 (자료사진, 출처_SH)

| 이양재 |  건축설계업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가 고전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사와 그 면허 숫자로 전문가 자격 진입의 채널을 묶어 두고 있으니, 미래 변화를 대비하기 위한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는 취약한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자격시험의 연장선에 있는 문제이다. 건축사 수 최대 2만 명, 실제 종사자가 1만 명도 안 되는 규모로는 전문가 인력 구성 자체가 어렵다.

일본 건축사는 1급ㆍ2급 자격 모두 합산하면 100만 명에 이른다. 전체 인구는 우리의 2.5배(1억2천670만 명) 수준인데 건축사 수는 최소 50배가 넘는다. 행정을 비롯해 건축 관련 각 분야에 이들이 배치된다.

반면 우리는 건축서비스산업에서 전문성을 보증할 자격증은 건축사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 10%에도 못 미치는 합격률로 진입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14~15년 전 건축학 교육제도를 변경할 때 당시의 취지는 5년제를 졸업하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건축사 양성을 목표로 실무교육 중심으로 개편했다. 그러나 10년 이상 운영해 오면서 졸업생들의 건축사 자격시험 합격률은 10년이나 20년 전보다 높아지지 않았으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 박인석 |  이 문제는 시장을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건축시장은 공공시장과 민간시장, 민간시장은 중상급시장과 하급시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크게 ▷공공 ▷중상급 ▷하급, 3가지로 건축시장을 구분해서 전망과 대응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시장별로 영향을 미치는 여건과 고려해야 할 과제, 기대 효과가 각각 다르다. 예컨대 표준계약서는 민간 중상급 시장으로 파급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하급시장이 4차 산업혁명 기술과 당장 어떤 연계성이 있겠는가.

일본의 1970년대 우량주택인정제도와 우량주택부품인정제도(BL; Better Living)는 대표적으로 하급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이 제도를 통해서 설계도 검증되는 효과가 있었다. 하급시장을 중급시장으로 끌어올리고, 주택 자체의 품질과 서비스의 품질이 함께 상승했다.
 

| 이양재 |  661㎡ 이하 직영공사가 대표적인 하급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직영공사를 허가건수로 파악하는 이유는 세수가 잡히지 않아서이다. 직영공사의 일반적인 방식은 건축주가 통장을 개설하고 시공자에게 현금카드를 주는 것이다. 현금만 이동하기 때문에 세금수입에서 누락된다.

직영공사의 가장 큰 쟁점은 하자이행이다. 직영공사는 허가주체가 건축주다. 원칙적으로 건축주에게 시공에 대한 책임이 있으므로 업체로부터 보증보험을 발행받기 어렵다. 그러니 하자보수가 이행되지 않아도 민사소송 외에는 법적으로 대응할 길이 없다.

일본과 비교해 보면 ‘지역밀착형 소규모 건설사’라고 이해할 수 있는 공무점(工務店)은 50년짜리 유지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소규모 민간 시공사가 지은 집이라도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아울러 일본은 건설업 등록기준이 1명이다. 건설업과 무관한 인력은 진입할 수 없지만 등록기준을 최소화해서 개인이 양심껏 경력관리만 잘 하면 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 아래에서부터 실력 있는 개인들이 모래알처럼 존재하고 이를 관리하는 조직이 형성되는 것이다.

반면 우리의 종합건설업 등록기준은 5명이다. 그러나 건설업과 관계가 전무한 관리인력, 소위 바지사장의 수가 얼마인지 체크하지 않는다. 산업이 영세할수록 설계분야에도 시공분야에도 전문가가 없다. 시장에서 만나는 업자들은 ‘몇 십 년 경력이니 믿어라’라는 허언뿐이고 부실시공 후 사라지기가 일쑤다.

영세한 시공업자가 건축주 대신 일괄도급 형태로 직영하고 세금도 내지 않는 무법천지 직영공사, 밑에서부터의 이 문제를 바로 잡아가는 것이 현 단계에서는 가장 실천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투트랙’으로, 영세한 소규모 시장과 선도적인 대형시장을 이원화 해 접근해야 한다.
 

| 서수정 |  하급시장을 우량시장으로 끌어올리는 일 역시 미래 건축서비스산업을 대비하는 중요한 전략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지금까지 공공이 대응하지 못한 영역이다. 반면 일본은 우량주택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리모델링 설계비의 1/3을 지원하기도 했다.
 

| 박인석 |  정부가 지원책을 모색할 수 있다면 건축서비스산업의 시장규모는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 서수정 |  일본에서 공무점(工務店)을 하는 청년 건축가를 보면서 어떤 면에서 1ㆍ2급이 나뉘어 있는 일본건축사 제도의 특수성이 하급시장을 우량화 하는데 기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영학을 전공한 이 청년은 인구 10만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빈집을 고치는 부친을 도우며 건축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2급 건축사를 취득하고 현재 설계와 공사는 물론 공간 활용에 관한 컨설팅도 하고 있다. 직접 가보면 저렴한 자재를 사용했는데도 품질이 높다.

우리도 장기적으로 빈집, 개보수 리모델링 같은 소규모 시장이 확대된다면, 건축사 자격증 제도를 구분해서 운용할 수 있는 여지를 검토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된다.
 

| 이양재 |  보통 2층 이하의 단독주택만 지을 수 있는 일본의 2급 건축사의 경우 2년제 전문대 졸업자도 응시할 수 있다. 1년에 5~6천명을 선발한다. 20대 중후반에도 자격증 취득 후 시장진입이 가능하다.

반면 우리는 5년의 학제와 3년의 실무기간을 거쳐서 일반적으로 30대 중반에 이르러야 건축사 자격요건을 갖추고 설계사무소를 개소할 수 있다.

지금의 건축교육이 과연 10~15년 후의 시장 변화를 예측할 수 있을까? 특히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한 지식산업이란 측면에서 보았을 때 지금의 자격제도는 시간적인 낭비가 크다. 더욱이 하급시장에는 불필요한 방식이다.

그마저도 건축사시험 합격자는 한 해에 대략 수백 명에 불과하다. 이들을 포함해 실제 활동하는 불과 1만 여명의 건축사에게 건축서비스산업의 주체적인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 박인석 |  이러한 논의는 시장의 수준에 따라서 인력의 수준도 다각화 할 수 있다는 의견과 상통한다. 그러나 1ㆍ2급으로 자격을 나누는 국가는 세계적으로 일본뿐이다. 우리와 일본은 상황이 다르다. 같은 문제의식이라도 우리에게는 건축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접근이 현실적이다.
 

| 서수정 |  2012년 산업실태를 보면 등록된 건축사사무소의 80%가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돼 있다. 소규모 건축시장은 지방에 편재해 있는데 지역 건축사는 없는 것이다. 일자리의 편향(bias)이 발생한다. 이러한 일자리 편향 현상을 하급시장의 우량화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김은희 |  소규모 시장에 대한 기대치는 일정 부분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대형 사무소들은 예컨대 해외진출이라든지 어떤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지?
 

| 서수정 |  하이엔드(high-end) 시장에 대해 논의해 보면 좋겠다. 대형 설계사무소들은 과거의 전통적인 방식을 탈피해서 어떻게 미래 산업을 대비하고 있는가.

 
■ 건축사 저변 확대

▲ 건축사는 프로젝트 매니저, 컨설턴트, 디자이너 등의 역할을 한다(자료사진, 출처_pixabay).

| 김무홍 |  민간 개발사업의 경우, 과거에는 미개발부지에 신규사업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은행권(명동)이나 방송사(여의도) 부지에 대한 매각사업 등 대규모 재개발사업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설계사는 개발방향에 대한 리드사로서의 역할을 제한받는다.

사업금액이 워낙 높다 보니 투자자도 다각화되고, 시행사와 디벨로퍼가 있고, 그 아래에 설계사가 위치하고 있다. 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규모 검토만 6~7차까지 이뤄지기도 한다. 이러한 개발사업의 경우, 기존 대응전략과는 다른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 김은희 |  대규모 사업의 방식이 바뀌면서 수요 대응전략이 필요할 것 같다.
 

| 이양재 |  일본의 경우 건축사가 5년 이상의 경력이 있으면 구조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건축설비 관련 자격증도 응시할 수 있다. 건축, 구조, 설비가 모두 건축사라는 동일한 플랫폼 상에서 운영되고 있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선진국에서는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이 건축을 공통의 기반으로 삼는다. 건축설계는 디자인만으로 할 수 없다. 산업이 수반되어야 상생할 수 있다. ‘엔지니어링 마인드의 디자이너’, ‘디자인 마인드의 엔지니어’가 되어야 한다.
 

| 서수정 |  지금까지 현 상황에서 미래 산업의 발목을 붙잡는 현실을 짚어 보았다. 관점을 돌려서 새로운 시장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규모는 작지만 설계ㆍ기획ㆍ마케팅을 함께 하는 사무소들이 늘고 있다. 앞으로는 전통적인 건축서비스산업의 업역 구분이 흐려질 것으로 보인다. 융복합 시대에 코디네이션의 역량이 강화되어야 할 것 같다.
 

| 김현준 |  코디네이션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의 문제 아닌가. 영국에서는 건축사의 역할을 표준계약서 상의 체크박스(tick box)로 표기한다. 예컨대 ▷리드 컨설턴트 ▷컨설턴트 ▷디자이너 등 역할이 명확하게 기재되고 그에 상응하는 리스크와 업무에 따라 주로 Man/Hour 방식으로 대가를 산정토록 한다.

영국은 성문법이 아닌 불문법 체계이다. 용적률이나 건폐율이 없다. 건축사 자격이 없어도 건축주가 원하면 설계할 수 있다. 건축사 자격이 없어도 오랜 연륜을 가진 건축가는 설계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인정되는 방대한 빅데이터와 상황이 법보다 상위 가치로 작용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이다. 허가 받기도 어렵다.

우리는 영국과 문화가 다르고 또 같을 수 없다. 그러나 리스크는 인정이 되어야 한다. 설계수가와 용역의 범위가 명확해져야 한다. 이런 구조가 확립되지 않으면 직업으로서도 산업으로서도 존속하기 어렵고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도시경관을 좌우하는 좋은 건축물을 기대할 수 없지 않겠는가.
 

| 이양재 |  미국이나 영국은 민간이, 우리나 일본은 국가가 규제하는 경향이 강하다.

독일은 몇 년마다 설계범위와 대가의 최저기준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한다. 건축사의 역할이 명확하고 그 책임도 명확하다. 독일 건축학과를 졸업하면 건축사협회에 의무가입한다. 협회에 가입하면 자동으로 보험에 가입된다. 건축사 연금도 마련돼 있다.

우리도 공제보험이 있다. 하지만 착공에서 준공 시점까지만 운영이 된다. 사용승인 후 유리창이 떨어져서 인명 피해가 나고 소송이 전개된다 해도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다. 독일의 예와 같은 보호망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는 전문직으로써 종사자 수가 적기 때문이다.

보험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건축사 1만 명이 무려 5천만 인구에게 건축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적은 건축사 수는 높은 협회 가입비로 연결된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협회 가입비와 회비가 1천만원에 육박하는 곳도 있다. 그러면 협회의 회원 자격을 얻기 위해 투입된 비용을 회수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고, 일부에서는 특검 현장에서의 비리도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문직 수가 증가해서 건축사협회의 저변을 확대하고 협회 가입과 보험 가입의 의무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면 산업과 시장도 개선될 수 있다고 본다.
 

| 박인석 |  건축사 수 증가를 반대하는 무리가 있다. 그 이유는 ‘지금도 일이 없다’는 논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는 음성화된 하급시장을 묵인하겠다는 의미이다. 하급시장을 정상화하면 건축서비스산업이 자연스럽게 활성화된다.

아울러, 건축공무원 수를 늘려야 한다. 시장 규모는 건축이 토목의 3배인데 5급 공무원의 수는 토목이 건축의 3배이다. 건축은 최근에서야 국토부에 건축정책관이 생겼고 1개였던 건축과도 최근 3개 과로 확대됐다. 이런 행정 규모로는 표준계약서를 비롯해 오늘 언급된 문제들을 검토하고 개선할 역량이 못되는 것이다.

▲ 건설업 공사수주별 수주액-기성액 추이(단위: 조 원)
▲ 건축(아파트 제외)-토목 수주액-기성액 추이 (단위: 조 원)
▲ 10대 제조업 출하액과 건축-토목 기성액 비교 (단위: 조 원)
* 이상 자료제공_도서출판 마티 『건축이 바꾼다』 (박인석 저, 2017)
 

| 서수정 |  해외와 국내 건축 분야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종합해 보자.

해외는 업무내용은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지만 업무 단위는 블록화 되어 있는 반면 우리는 그 반대인 것 같다. 큰 틀에서 시스템은 만들어져 있지만 하단에서 디테일이 뒤떨어진다. 

또 해외는 성능을 담보하는 다양한 수단과 수법이 있지만 우리는 건축사 개인이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이다.

앞으로 요구되는 공공의 역할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감으로써 건축서비스산업의 미래 발전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한 말씀 부탁드린다.
 

| 김무홍 |  대형 설계사무소는 리딩 아키텍트로써 R&D에 보다 투자를 해야 한다.

| 김현준 |  건축주에 대한 건축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 박인석 |  공공건축가 제도를 통해 시민에게 건축의 가치를 홍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 이양재 |  영세한 주택산업 구조와 맞물려서 전반적인 체질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 서수정 |  2시간이 넘은 긴 시간 동안 진지하게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
 

 <좌담 해설기사_본지 제711호 1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