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문학30> 교차성: 아시아적 도시공간의 억압방식을 분석할 유용한 도구
<건설인문학30> 교차성: 아시아적 도시공간의 억압방식을 분석할 유용한 도구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7.06.19 1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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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주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희망의 도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_(2) 젠더 차별을 넘어 희망의 도시 상상하

 

▲ 사진_ⓒ픽사베이

교차성(intersectionality):
아시아적 도시공간의 억압방식을 분석할 유용한 도구


┖ 서구 이론이 간과한 ‘아시아 발전주의 도시화 모델’의 연구 공백,
┖ ‘교차성’ 적용한 다수의 국내 사례 발굴로 실천적 대안 만들어야


▲ 정현주 교수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지난호에 이어> - 이러한 접근(교차성 분석)의 문제점과 한계는 이미 많은 연구들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구체적인 현실 문제에 적용시키기에 아직 매우 모호하고 복잡하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복잡성들을 고려해야 하다 보니 변수를 통제해야 하는 구체적인 분석에 적용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이론적 소개나 당위적 선언으로 주창될 뿐 실제 경험연구에서 교차성 분석을 적용한 경우는 아직까지 거의 없다.

현재까지 교차성 개념을 가지고 경험연구에 적용시킨 사례로서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연구는 질 발렌타인의 ‘레즈비언 장애여성 연구’와 주와 페리의 ‘3가지 유형의 교차성 분석’이 대표적이다.

주와 페리는 교차성을 집단지향적, 과정지향적, 시스템지향적으로 구분하여 각각을 입장이론에서 발전한 특수한 위치에서의 목소리 전달, 억압의 상호작용 양상에 대한 다중적 분석, 제도적 분석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제시했다.

이러한 접근은 분석의 대상에 따라 포커스를 두어야 할 교차성의 양상을 범주화해 주며 따라서 현실 분석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분류이다.

한편, 도시연구와 교차성의 이론적 접점은 질 발렌타인(Gill Valentine)의 연구에서 더 구체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발렌타인은 교차성 개념을 연구에 적용하는 방법으로서 ‘장소’를 기술의 맥락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녀는 시간의 흐름대로 개인의 일대기를 구성할 경우 다양한 교차성을 유기적으로 제시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므로, 시간의 흐름이 아닌 장소의 맥락에 따라 교차성의 양상을 서술하는 사례를 한 장애여성의 정체성의 정치를 통해 보여주었다.

이러한 접근의 이면에는, 공간이 억압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며, 특정한 억압의 결합은 공간을 통해 배열되고 구조화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즉 공간은 억압이 작동하는 장인 동시에 그 결합 양상을 세팅하는 구체적 맥락이다.
공간이 억압을 생산하고 그 결합방식을 구조화하기 때문에 억압의 교차성을 포착하고 그것을 동시적으로 드러내는 유용한 방법론적 도구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도시의 여러 공간을 대상으로 특정 개인 내지는 집단에게 교차하는 억압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연구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교차성 이론을 충분히 발전시키기도 전에 성급히 정책연구에 적용하려고 하면 부작용과 시행착오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이론연구를 정책연구로 전환하는 부분에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보다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정책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평가의 도구로 먼저 활용하는 것이 더 유용한 방법일 수 있다.
 

4. 한국 도시연구에 던지는 함의와 과제들

서두에 제기한 문제로 돌아가서, 최근의 도시화 과정은 어느 때보다 ‘재생산’의 영역을 착취적으로 유급노동화함으로써 ‘생산’을 유지하는 ‘신자유주의적 강탈에 의한 축적’에 의하여 작동하고 있다.

이는 급속한 경제재구조화와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경험한 대한민국에서 매우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국 도시연구에서 젠더 관점이 가장 긴급하게 요청되는 지점은, 이처럼 도시의 양극화와 빈곤화가 젠더화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자본축적의 구조와 도시화 과정에 대한 분석이다.

한 예로, 대한민국의 청소노동은 전체 업종 중 고용인원 11위임에도 불구하고 전부 비정규직화되어 있는, 대표적으로 외주화된 재생산 영역이다.

최소 시급과 기본적인 노동여건도 갖추지 않은 열악한 조건으로 고용된 청소노동자들의 80%는 여성이다.
생산과 재생산의 이분법과 재생산의 비공식화는 여성억압을 은폐할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만들어내는 오늘날의 도시문제들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전통적인 노동의 분업을 넘어 ‘젠더화된 노동분업의 지구화’를 통해, 새로운 권력관계와 지리적 불균등은 지구적으로 양산되고 있다.

이러한 불균등 체인의 말단에는 제3세계 출신 이주노동자, 제1세계 내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비체화된 주체(가령 성매매여성, 장애인, 난민, 노숙자 등 공식담론에서도 소외된 존재들) 등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의 다수는 여전히 여성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멀리 제3세계까지 갈 필요도 없이, 제도적 남녀평등이 이루어졌다고 믿는 21세기 대한민국은 여전히 여성에게 억압적인 남성중심적 사회이다.

일하는 여성 중 비정규직의 비율이 70%에 달하고, 정규직 남성의 임금이 100이라면 정규직 여성의 임금은 66.1, 비정규직 여성의 임금은 36.3에 불과하다.

다른 통계자료 역시 비슷한 현실을 드러낸다. 세계경제포럼이 해마다 발표하는 자료에서도 한국은 통계조사가 실시된 이래부터 주요 OECD국가들 중 남녀임금 격차에 있어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해 왔다.

2015년 자료에 의하면 남녀 간의 임금격차가 36.7%이며, 성평등 지수는 르완다나 인도보다 낮은 115위에 머물러 있다(연합뉴스, 2015.11.19).

이러한 정황들은 신자유주의적 도시화 및 세계도시화가 여성노동의 ‘유연화’를 통해 구조적인 남녀불평등과 빈곤의 여성화를 조장함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도시정책과 담론에서 성(性)인지적 관점이 여전히 필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 도시연구에서 직면하고 있는 두 번째 과제는 도시화 과정이 단순히 젠더화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젠더억압과 다른 모순들이 결탁하여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성노동의 유연화와 비정규직화는 남녀 간의 격차뿐만 아니라 여성들 간의 분화 및 차별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여성들 간의 연대가 유일한 투쟁 방식이 되기 어려운 이유이다.

뿐만 아니라 초국가적 이주의 증가와 다문화사회로의 전환 등과 같은 최근의 도전은 성별 대결을 넘어서 인종과 국적에 따른 갈등과 억압의 다원화를 예고하고 있다.

최근 여성주의 프레임과 담론이 일반 대중에게 외면당하거나, 소위 말하는 ‘여혐’ 현상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은,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대중들에게 비춰진 갈등과 모순의 구조는 단순히 성차의 문제가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일부 남성들에게 여성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므로 여성주의 프레임에 대한 공감이 점점 더 기반을 잃어가는 것일 수 있다.

즉, 모든 여성을 하나의 집단(특히 피해자)으로 이미지화하는 성별 대결구도 하에서 전개하는 논의는, 점점 복잡해지는 한국사회의 권력관계 구도에 관하여 설명력을 잃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보다는 정확히 어떤 억압이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지, 젠더억압이 다른 종류의 억압들과 어떻게 결합하는지, 또는 그러한 결합을 통해 젠더문제의 본질이 어떻게 왜곡되거나 변화되는지 등을 짚어내는 설명이 필요하다.

 
앞에서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 개념을 하나의 이론적 자원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전술했듯이 교차성 이론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복잡성과 분석지향성으로 인해 페미니스트 정치의 실천적인 도구로서 기능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교차성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국내의 많은 사례를 발굴해 이 개념을 한국적으로 적용하고 변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마지막으로, 이 글은 서구에서 진행된 연구 성과를 주요 분석 대상으로 함으로써 서구중심적인 한계를 노정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국내 학계에서의 페미니스트 도시연구가 여전히 부진하거나 학문 분야별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등 하나의 주요 접근으로 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3물결 페미니즘 자체가 서구의 도시경험을 위주로 하거나(특히 포스트구조주의), 아니면 서구의 식민주의 침탈을 직접적으로 받은 제3세계 위주로 구성됨에 따라(포스트식민주의), 아시아적 모델에 대한 연구는 페미니스트 도시연구에서 여전히 큰 공백으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페미니스트 공간연구가들에게는, 주변과 중심의 틈새공간으로서 아시아 또는 아시아 발전주의 패러다임, 유교적 가부장제 등, 서구편향적인 이론이 간과하고 있는 지점을 찾아 이를 이론화에 개입시키는 작업이 추가적으로 요구된다.

최근 한국 도시연구에서 아시아 발전주의 도시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이러한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 글에서 필자가 다소 산만하게 제기한 여러 질문과 문제들이 이러한 이론화 작업을 촉구하고, 논의를 여는 장으로 역할하기를 기대한다.

 

정리= 한국건설신문 이오주은 기자


 (이 글의 참고문헌과 각주는 생략되었습니다. 이 글의 완성본은 <한국도시지리학회지> 19권 2호 또는 <희망의 도시> (2017, 한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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