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문학29> 제3물결 페미니즘… 여성 내부의 불평등 문제 제기
<건설인문학29> 제3물결 페미니즘… 여성 내부의 불평등 문제 제기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7.06.12 17: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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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주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희망의 도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_(2) 젠더 차별을 넘어 희망의 도시 상상하기


2) 제3물결 페미니즘, 페미니즘의 다원화 

제3물결 페미니즘… 여성 내부의 불평등 문제제기

-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란, 한 개인 안에 존재하는 여러 정체성, 예를 들어 인종·민족·종교·성(sex)·계급 등 다양한 요소들이, 사회적으로 억압(차별)을 받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 편집자주 


2) 제3물결 페미니즘, 페미니즘의 다원화 

▲ 정현주 교수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제2물결 페미니즘이 마르크스주의와 결합하여 분배의 젠더부정의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고 이에 대한 일부 성과를 이끌어 내었다면, 제3물결 페미니즘이라고 통칭되는 다양한 흐름들은 여성 내부의 차이와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면서 단일한 ‘여성’ 범주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한다.

거시적인 사회구조 변화를 통해 여성해방을 주창한 제2물결 페미니스트들과 달리 이들은 모든 여성을 동시에 해방시킬 단 하나의 가장 근본적인 억압 기제가 있다는 가정부터 부정한다.

복잡한 권력의 지형 속에서 모든 여성은 상이한 위치에 놓여 있으며, 따라서 이들에게 필요한(또는 허용된) 저항 전략은 자신과 동떨어진 거시적인 사회변화 보다는 일상의 공간에서 펼치는 미시정치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담론화된 권력을 해체하고 중심뿐만 아니라 주변의 목소리들을 복원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제3물결 페미니즘은 흑인 페미니즘과 제3세계 페미니즘을 아우르는 ‘포스트식민주의’ 계열과, 라깡과 푸코 등 프랑스 정신분석학과 철학 전통에 대한 비판적 재구성을 추구한 ‘포스트구조주의 계열’로 구분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양성뿐만 아니라 섹스와 젠더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본질적인 여성 주체를 부정하는 ‘포스트구조주의’ 학자들은 성차의 사회적 구성 및 무수히 다양한 젠더가 구성되는 방식을 탐구한다.

반면 ‘포스트식민주의’ 학자들은 인종과 젠더 문제를 결합하여 제3세계, 흑인, 제1세계의 빈민층 등 다양한 위치의 주변부 여성주체들의 해방과 연대를 모색하며, 따라서 해체적 입장보다는 [연대]의 가능성에 더 방점을 둔다.

최근 페미니즘은 인종, 국적, 계급, 학력, 종교 등에 따라 여성은 무수히 다양한 위치성을 지니며 교차하고 협상되는 정체성을 지닌다는 점에 주목한다. 여성 간의 차이는 남/녀의 차이 못지않게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젠더억압은 단순히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젠더가 무수히 다양한 차이들과 결합되어 조성되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 된다.

도시연구에서도 도시를 단지 여성차별적인 추상적 실체로 단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의 파편화되고 다원화된 경험들에 주목하는 접근이 등장하게 되었다. 젠더, 계급, 인종, 섹슈얼리티 등이 결합하는 양상에 따라 도시경험과 억압의 구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흑인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벨 훅스는 미국사회에서 흑인여성으로서 겪는 도시경험의 차별성을 한 편의 에세이 《Yearning: Race, Gender, and Cultural Politics》에서 설득력 있게 제시한 바 있다. 도시 슬럼가에서 형성된 흑인공동체의 역할을 흑인 남성의 폭력 문제 때문에 폄하하고 부정해선 안 된다는 의미이다.

또 유색인종 페미니즘의 대표 주자인 글로리아 안잘두아(Gloria Anzaldua)는 서구에 의해 유린되어 온 ‘경계지대’(borderlands)라는 혼종적 공간을 통해 서구백인자본주의와 전통적 가부장제 양자에 저항하는 탈식민적 여성주체의 형성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메스티자 주체라고 불리는 이 여성주체는 식민주의적 착취의 경험과 가부장제에 의한 성적 억압 등 이중삼중의 억압을 체현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하위주체이자 강력한 저항의 상징이다.  - ‘메스티자(mestiza)’는 혼혈아라는 뜻이다. 특히 북아메리카 등 원주민 여성과 스페인계 백인남성 사이에 태어난 여성을 말한다. 스페인어에서 혼혈인 일반 및 혼혈인 남성은 메스티조(mestizo)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영어 man이 인류 일반과 동시에 남성을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편집자 주>

한편, 포스트구조주의적 접근을 취하는 연구가들은 도시공간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구성을 탐색해 왔다. 퀴어이론가인 쥬디스 버틀러 등은 섹스/젠더의 이분법적 구성 그 자체를 문제시함으로써 자연적으로 주어진 섹스란 없으며 젠더와 섹스 모두 강제적 이성애를 제도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허구라고 보았다.

페미니즘의 주체로서 ‘여성’이라는 범주에 도전하면서 기존의 전형적인 여성/남성에서 벗어난 다양한 젠더들의 도시적 수행과 이들을 타자화하는 근대도시성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접근들은 젠더이분법을 흔드는 이론적 기반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론적으로 매우 고무적이다. 또한 다양한 억압의 지점들을 규명함으로써 페미니즘 실천과 연대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페미니즘 내부의 분열은 반목하는 관계가 아니라 다원화된 입장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며, 오히려 차별화된 쟁점들을 더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론적 다원화와 정치적 연대는 다른 차원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다원화에 따른 중심의 해체와 실천적 동원의 약화라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여성적 중심이 해체된 마당에 무엇으로 연대를 제안할 것이냐는 현실적인 우려가 있다. 이러한 우려는 신자유주의적 침탈을 막아내고 대안적인 공동체를 상상하는 이론과 실천의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할 지점이다.
 

3) 젠더차별을 넘어, 교차적 억압 이론화

페미니즘 중심의 해체에 대한 우려는 다시 일원화된 중심을 설정하기 보다는 다원화된 목소리들이 발원하는 맥락에 대한 분석으로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다. 단일한 목소리는 없지만 다양한 여러 목소리들을 아우르며 그 목소리들의 맥락을 이해함으로써, 연대의 틈새를 파악하고 간격을 좁히는 노력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한 가지 이론적ㆍ방법론적 대안은 최근 국내에서도 논의가 활발히 되기 시작한 ‘교차성 분석’이다.

교차성 (intersectionality)이란, “계급ㆍ젠더ㆍ인종ㆍ섹슈얼리티ㆍ연령ㆍ시민권ㆍ장애ㆍ종교 등이 각각 특정한 억압구조를 만들어 내며, 이처럼 여러 억압구조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결합되어서 특정한 사회구조와 권력관계를 규정한다고 보는 접근방식”이다.

각 억압구조들은 1+1 식으로 완전히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규정하며 결합을 통해 강화되기도 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처럼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억압구조는 개인들의 삶의 맥락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교차하게 된다.

가령 어떤 이에게는 젠더문제가, 다른 이에게는 인종 문제가 더 절박한 문제로 다가올 수 있으며, 그 차이는 주체들의 다양한 위치성(계급ㆍ젠더ㆍ인종ㆍ섹슈얼리티 등등에 따라 위치 지어지는)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접근은 입장이론에서 출발하여 흑인페미니즘 이론가들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다듬어졌다.
주류 페미니스트들과 또 다른 입장에 처한 이들이 보기에 젠더 억압은 단순히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인종차별 및 계급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였다. 그들이 경험하는 젠더억압(가령 흑인 가정부가 겪는 차별)은 백인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젠더억압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복잡한 문제였다.

 
흑인 여성들은 인권운동에 참여하면서도 끊임없이 인종차별주의와 차별주의 사이를 방황하며 한 가지 방향에 헌신할 것을 강요받았다.

극심한 노동착취 체제인 노예제에서 시작되어 인종차별과 성차별로 공고해진 다중적 억압을 받았던 흑인 여성들에게는 인종차별 철폐와 성차별 철폐, 계급해방투쟁이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역사적 체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다중적 억압에 대한 인식은 페트리샤 힐 콜린스(Patricia Hill Collins)와 킴벌리 크렌쇼(Kimberle Williams Crenshaw)에 의해 ‘교차성 분석’으로 발전했다.

페미니스트 법학자인 크렌쇼는 교차성을 분석의 개념어로 제시한 최초의 학자이다. 그녀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은 항상 맞물려 작동하지만, 사회운동이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각각 배타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인식함을 비판하면서 교차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억압을 교차적인 것으로 이해한다면 다양한 여성들이 겪는 젠더억압은 매우 다른 것이 된다. 가령 21세기 서울에서 사는 중산층 주부가 겪는 가부장제의 문제점은 경상북도의 한 시골마을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가부장제의 문제점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뜻이다.

이것이 도시연구 및 정책에 함의하는 바는 여성적 의제가 모든 여성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되지 않으며 따라서 정책의 대상에 대한 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여성이 행복한 도시’의 수많은 정책들은 어떤 여성들을 행복하게 하려고 하는 것인지, 누가 수혜를 입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 <다음호에 계속>
 

정리 = 한국건설신문 이오주은 기자  

 

(이 글의 참고문헌과 각주는 생략되었습니다. 이 글의 완성본은 <한국도시지리학회지> 19권 2호 또는 <희망의 도시> (2017, 한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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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2017-06-18 15:17:58
혁명적인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하면서 기존의 이론을 부정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과학자들이 반론을 못하고 있다. 이 책은 과학을 논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인문교양서다. 왜냐하면 이 책은 기존 과학의 오류를 바로잡고 그렇게 바로잡힌 과학으로 다시 종교의 모순을 수정하면서 우주의 원리와 생명의 본질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