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문학28> 페미니즘 도시연구… 남/여 대립시키던 ‘젠더이분법’ 극복 중
<건설인문학28> 페미니즘 도시연구… 남/여 대립시키던 ‘젠더이분법’ 극복 중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7.05.31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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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주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희망의 도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_(2) 젠더 차별을 넘어 희망의 도시 상상하기

페미니즘 도시연구…남/여 대립시킨 ‘젠더이분법’ 극복 중

 

<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성과 >
┕ 여성의 시각에서 도시경험을 재해석…밤길 안전 촉구 사회운동 촉발
┕ 여성건강센터, 여성쉼터, 여성북카페 등 여성 권익 증진 공간 증가
┕ 모든 공공정책 과정에 젠더 관점을 반영시키는 성주류 의제화 달성

<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한계 >
┕ 여성을 위한 담론
·정책이 여성을 수혜대상으로 상정함으로써 남성/여성 간 갈등 심화
┕ 젠더 의제를 남성의 이해관계와 대립적인 것이거나 상관없는 지엽적인 문제로 만듬
┕ 특정계급여성(서구·중산층·백인) 권익과 시선만 대변…흑인/제3세계 페미니즘 활성화


3. 서구 페미니스트 도시연구의 성과와 한계

1)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과 젠더화된 도시 연구

▲ 정현주 교수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도시와 젠더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제2물결 페미니즘(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라고도 불리는) 부터이다.

1970년대 이후 근대도시가 당면한 문제와 자유주의 이론의 한계를 분석함에 있어서 페미니즘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결합하여 도시공간을 통해 어떻게 젠더 억압 기제를 재생산하는지 비판적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이들은 근대도시의 구조와 형태 자체가 남성중심적이며 여성억압적인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고 비판한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도시계획가이자 건축이론가인 돌로레스 헤이든(Dolores Hayden)은 《Redesigning the American Dream》을 통해 미국의 교외 핵가족 모델을 구현해 준 건축 및 도시계획에 내포된 폭력성과 여성억압을 고발하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대안적인 페미니스트 주거모델을 제시하면서 건축과 도시연구에 반향(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페미니스트 건축이론가인 레즐리 케인즈 와이즈만(Leslie Kanes. Weisman)도 현대 도시의 건축과 계획이 여성의 접근성을 제한하고 남성의 편익을 증진하도록 디자인되었음을 고발하면서 이러한 도시의 물질문명은 남성중심적 상징체계를 통해서 상호 구현되면서 인류의 대표적인 불평등을 역사적으로 구성해 왔다고 주장했다.

도시의 물리적 레이아웃과 디자인이 젠더불평등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젠더불평등이 도시의 작동 방식을 구조화한다는 연구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연구는 수잔 핸슨(Susan Hanson)과 제럴딘 프랫(Geraldine Pratt)의 서구 도시의 젠더화된 고용/통근 패턴 분석이다. 이들은 젠더관계와 젠더화된 노동분업으로 인해 서구 교외지역의 중산층 여성이 교외화로 인해 더욱 공간에 갇히게 된 메커니즘을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성역할로 인한 여성의 이동성 제약은 결과적으로 교외에 거대한 ‘핑크칼라 게토’(유순하고 유연한 파트타임 노동자 풀)를 양산했으며 이는 결국 교외 백오피스화의 배경이 되었다.

도린 매시 역시 영국의 제조업이 대도시에서 중소도시로 분산·이전한 산업의 탈중심화 및 공간적 재구조화 이면에는 노동조합 경험이 없는 유순하고 값싼 여성노동력을 제조업의 말단부에 포진시키려는 자본의 전략이 있었으며 이를 정치/사회적으로 용인하고 부추긴 것은 노동의 젠더분업 및 불평등한 젠더관계였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들 연구의 공통점은 20세기 중반 이후 도시화 과정의 핵심 기제 중 하나가 바로 젠더관계이며 따라서 도시의 물질적, 상징적 구조화는 젠더화된 과정임을 밝혔다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젠더화된 과정은 젠더불평등을 심화시킴으로써 도시 및 자본주의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제2물결 페미니즘 이래로 페미니스트 공간 연구가들은 근대도시가 젠더이분법의 물질적 구현임을 정교하게 드러내고 이를 이론화하는 데에 기여했다.

젠더이분법은 남성과 남성의 대립항으로써 여성을 이분화하고 이 둘의 차이를 다른 이분법들과 결합시키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남성과 여성의 대립은 공적/사적, 생산/재생산, 문명/자연, 이성/감성 등의 끝없는 이분법의 결합으로 공고히 구축되었다.

이러한 이분법의 문제점은 제1항인 남성적 영역을 설명하기 위해 대립항을 설정함으로써 결국 제2항은 영구히 제1항의 반테제, 즉 타자가 된다는 점이며, 이 세계는 오로지 제1항과 나머지로 양분되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히게 된다는 점이다. 즉, 남성이 아닌 것은 다 여성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의 반대항으로 존재할 뿐 그 독자적인 설명체계를 가지지 못한 채 남성의 결핍으로만 정의된다(즉 이성의 결핍, 객관성의 결핍, 문명의 결핍 등).

페미니스트 도시연구가들은 이러한 이분법적 세계관에 근거해서 ‘도시이론의 바깥을 구성하게 된 타자’들에 대한 연구를 제시함으로써 주류 도시이론이 간과하는 지점을 드러냈다.

행성적 도시화 시대에 도시와 비도시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도시의 바깥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는 포괄적인 도시이론을 제안하겠다는 일부의 야심과 달리 페미니스트 도시연구가들은 특정 집단과 지역은 어떻게 ‘도시가 아닌’ 도시 바깥의 타자로 구성되어 왔는지를 밝히는 데 관심을 기울여 왔다.

도시로부터 분리되어 ‘가정의 천사’가 되도록 강요받아 온 서구중산층 주부들의 사회적·문화적·공간적 구성에 대한 연구나 제3세계 빈민여성들의 소외와 억압에 대한 연구가 대표적으로 이러한 도시 바깥의 외부에 대한 해체적 독해라고 볼 수 있다.

이상의 연구들은 남녀의 차이가 물질적 공간과 그에 대한 담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불평등하게 구성되어 왔음을 밝힘과 동시에 그동안 타자였던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도시경험을 재해석했다. 이러한 문제제기와 연구는 실제로 도시정책과 디자인에 젠더관점을 반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2물결 페미니즘 이래로 미국에서는 여성건강센터, 여성쉼터, 여성북카페 등 여성들의 권익을 증진하는 안전공간이 급격히 증가했다.

또한 여성의 밤길 안전을 촉구하는 사회운동을 촉발하기도 했으며,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에서는 모든 공공정책의 입안과 결정에서 젠더 관점을 반영하도록 하는 성주류화가 주요 의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의 페미니스트 도시연구의 흐름은 큰 성과와 더불어 어느 정도 한계를 노정하기도 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문제점은 이러한 연구와 정책이 서구중산층백인 여성을 보편적 여성으로 상정함으로써 특정 계급의 여성들의 권익과 시선을 대변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비판은 주로 흑인페미니즘을 비롯한 제3세계 페미니즘 진영에서 제기되었다.  

서구/중산층/백인 여성들의 현안인 보육과 모성, 가정폭력 문제가 마치 여성문제를 대변하는 것인 양 성주류화 담론의 주요 의제가 되는 것을 비판하면서 제3세계 및 유색인종 여성들은 빈곤과 노동의 문제, 인종차별이 결합된 젠더차별 문제, 성폭행과 인신매매 문제 등 여성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다룰 것을 주장했다.

여성들 간의 차별성 문제와 더불어 또 다른 근본적인 문제점은 여성을 위한 담론과 정책들이 남성/여성이라는 양성간의 젠더이분법이라는 근본적인 틀을 깨지 못한 채 여성을 수혜대상으로 상정함으로써 오히려 이분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성되어 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젠더 의제가 ‘여성적’ 문제에 국한되어 마치 남성들의 이해관계와 대립적인 것처럼 오해되거나 아니면 남성들과는 상관없는 지엽적인 문제로 폄하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에 대한 시정은 남성들의 권익을 제약함으로써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남성을 탓하고 책임을 전가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약자들에게도 안전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문제이며 이는 사회정의와 복지, 인권의 문제이므로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중요한 이슈이다.

‘여성적’ 문제에 대한 이처럼 지엽적인 접근은 ‘여성-재생산’과 ‘남성-생산’을 근본적으로 분리하는 뿌리 깊은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기원한다. 따라서 생산과 재생산의 상호구성에 대한 연구나 이분법을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 동안 핍박받던 여성의 권익을 증진한다고 근본적인 젠더 차별은 시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남성과 여성을 대칭적인 집단으로 규정하는 한 상대적으로 어느 한 쪽은 계속 억압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이 남성성이고 무엇이 여성성이라고 규정되는지, 누가 어떻게 그것을 결정하는지 등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대안적 인식론과 실천이 필요하다. 이 시대의 페미니즘은 이러한 권력관계를 성찰하는 비판이론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 <다음호에 계속>


정리= 한국건설신문 이오주은 기자


(이 글의 참고문헌과 각주는 생략되었습니다. 이 글의 완성본은 <한국도시지리학회지> 19권 2호 또는 <희망의 도시> (2017, 한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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