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도시와 서울로7017의 함의
보행도시와 서울로7017의 함의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7.05.29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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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je@conslove.co.kr
박원순 서울시장은 <보행도시 서울>을 내걸고 철거 대신 ‘기능 교체’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서울역고가를 입적시켰다.

1970년부터 45년간 자동차가 신나게 달렸던 서울역고가는 1년 반의 공사를 마치고 보행길로 거듭났다. 이어 25일 서울시는 중림동 도시재생활성화계획과 손기정 & 남승룡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서울로7017을 기폭제로 삼아 주변지역 개발에 나설 것임을 알렸다.

서울로7017을 보고 듣고 걷는 이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1.2㎞ 서울로는 퇴계로에서 서울스퀘어(대우빌딩) 앞을 지나 서울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저개발 지역인 만리재와 청파로를 도보로 연결했고, 만리동 상권은 개장 당일부터 활기를 띠며 앞으로 빠르게 성장할 것임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눈 아래 두어 보지 못했던 서울역 옛 역사를 17m 높이에서 손닿을 듯 내려다보는 경험은 새롭다. 숭례문과 태평로(세종대로), 고도성장 시대를 상징하는 빌딩을 포함해 역사도시 서울에 새겨진 세월의 층을 내려 본다는 것 자체로 신선한 체험이다.

그러나 이곳이 공원인지 걷고 싶은 길인지, 보행도시의 본질을 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비판, 설계와 디자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당초 공중정원이란 개념으로 국제공모에서 설계안이 당선됐으나 진행과정에서 “정원은 아니다”라는 판명이 이미 내부적으로 나왔다.

그런데 보행하기에 제약이 되는 장애물(228종 2만4천여주의 꽃과 나무을 심은 화분 그리고 폴리)들이 서울로7017에 동글동글 군데군데 나열되어 있기에 보행도시로 나아가는 선언적인 상징물로 인식하기는 어렵고, ‘똑똑한 육교’, ‘아파트 베란다’, ‘콘크리트 화분’ 등 다채로운 버전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잘 달리던 다리 서울역고가를 굳이 멈춰 세운 서울로7017은 외신의 평가가 어떠하든 멈춘 다리 뉴욕의 하이라인을 재생시킨 사례와는 다르다. 자동차 교통 효율은 떨어뜨리고, 600년 한양도성 경제의 정체성인 남대문 상권을 위협하면서 인위적으로 이와 같은 퍼포먼스를 했어야 했는가에 대한 의구심은 아직 불식되지 않았다.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다고 소문난 도시의 어젠다들이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경우를 자주 목도하는 우리는 구호와 결과가 다를 때, 원래 그곳에 살던 이들을 배제하려는 듯 보일 때,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이 예견될 때, 역대 개발정책과 다르지 않음에도 ‘보행도시’라는 멋진 구호를 통해 포퓰리즘으로 포장한 서울로7017과 후속 개발계획 같은 것을 볼 때에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원래 그곳에 살던 이들’이란 이들은 잊혀진다. ‘원래 그곳에 있던 것들’이란 것들도 잊혀진다. 그럼으로써 장소성 혹은 어메니티는 증발하고, 무엇이 그것들을 증발하게 했는지도 잊혀진다. 지금 이 순간 현존하는 것들, 아름다운 등불축제를 담은, 분수쇼를 하는 청계천이 각광을 받고, 서울을 대표할만한 건축물이라고 높이 평가받는 DDP의 화려한 명성들…. 그 전으로 그 이전으로, 그 후로 그 이후로, 이러한 경험의 망실들을 얼마만큼 열거해야 할 지 아득하도록 같은 일들이 다른 일인냥 반복되어 오고 있는 이 곳.

청계천 복원사업(이후 서울시장들에게 청계천 같은 대표 사업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 동대문운동장 공원화사업(DDP는 명소가 되었지만 공원을 앞세운 재개발이 무엇인지 여실히 확인했던), 한강르네상스(워터프런트라는 고전적인 개발 패러다임), 전국적인 역사/문화/인문 도심활성화 프로젝트들  그리고, ‘도시재생’의 대규모 국책 사업화, ‘보행도시’라는 프로퍼갠더(propaganda)….

쇠퇴하고 경제력을 잃고 슬럼화 되는 지역을 살리는 일과, ‘역사/문화/공원’ 혹은 ‘주민/참여’ 혹은 ‘복원/재생’과 같은 좋은 말들을 불러내어 기존의 재개발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목적의 사업을 벌이는 일 사이에서 우리는 얼마나 명석하게 이 둘을 분간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한국건설신문 취재부 차장 = 이오주은 수석기자 yoje@conslo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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