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문학27> 도시의 일상성과 다양성…페미니즘 도시연구에서 태동
<건설인문학27> 도시의 일상성과 다양성…페미니즘 도시연구에서 태동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7.05.11 1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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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주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희망의 도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_(2) 젠더 차별을 넘어 희망의 도시 상상하기

 

도시의 일상성과 다양성…페미니즘 도시연구로 태동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공간연구가>
┕  도린 매시, 리차 나가르, 빅토리아 로손, 린다 맥도웰, 수잔 핸슨
┕  글로벌 도시, 지구적 스케일, 보편성ㆍ포괄성ㆍ일반화에 문제제기
┕  미시적·가변적·잠정적으로 확장시킨 개념으로써 도시를 재이론화


2) 도시담론에서 젠더의 배제

▲ 정현주 교수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페미니즘은 도시에 대한 비판적 인식론과 실천으로서 예리한 분석과 제안을 해 왔다. 그러나 필자가 몸담고 있는 지리학에서의 도시연구는 이상하리만치 페미니즘의 수용에 소극적이었다.

심지어 포스트모던 도시 논의와 최근의 비판지리학 논의에서도 페미니즘 비평은 그 입지가 매우 좁다.

근대도시를 둘러싼 이데올로기와 정치, 물질적 구현이 남성중심적으로 구축되었다는 비판은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이 등장하면서 제기된 비판이다. 그 전까지는 문제제기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도시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젠더라는 관점은 거의 개입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령 근대적 학문으로서 도시지리학을 태동시킨 시카고학파의 유명한 모델들은 합리적 이성을 지닌 경제인(즉 근대적 남성)을 행위주체로 상정했다.

모델들이 가정한 도시 내에서의 움직임이나 토지이용 패턴 역시 선적(linear)이고 배타적인 것으로, 공간의 겹침과 동시적 공존의 가능성을 배제했다.

이러한 비판은 실증주의에 대한 여러 비판에서도 제기된 것이지만 그 누구보다 이에 대한 반론을 풍부하게 제시한 페미니스트들의 연구와 주장은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도시연구로는 복잡한 역할을 제한된 시간 내에 동시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여성의 일상성에 대한 시간지리학 연구(김현미A, 2005; Fortujin and Karsten, 1989; Hanson and Johnston, 1985; Miller, 1982; Tivers, 1985)가 있다.

도시와 교외의 통근패턴이나 취업패턴의 젠더화를 보여주는 연구들도 실증주의 모델에 대한 반론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이동과 취업에 대한 의사결정이 합리적 이성(경제성, 최단거리 이동, 지식의 포괄성 등)에 의해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규정된 성역할(김현미A, 2005; Fortujin and Karsten, 1989), ▷여성의 제한된 정보와 이동성(Hanson and Johnston, 1985; Hanson and Pratt, 1991), ▷문화적 취향(Nelson, 1986), ▷행위주체(여성)들의 의지와 타협(England, 1993) 등에 의해서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됨을 보여주었다.

도시담론에서 페미니즘 연구 성과의 배제 내지 비가시화는 명백히 근대적 담론인 실증주의 도시연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있다.

지리학 분파 중에서 페미니스트 접근이 주로 자리하고 있는 ‘비판지리학’ 에서도 페미니즘의 배제는 매우 확연하다.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은 비판지리학의 여러 주장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이들에게서 여전히 드러나는 남성중심성을 함께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은 특정인을 향한다기보다는 이 시대 마르크스주의 (남성)학자들이 보편적으로 지닌 편향된 인식론에 대한 성찰의 촉구였다.

도린 매시(Doreen Massey)는 “마르크스주의 도시연구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조망하는 위치에서 모든 것을 관통하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단 하나의 거대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근대적 남성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심지어 “다양성과 공존을 찬양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서조차 이러한 양상을 포괄적으로 이론화하고자 하는 충동을 여전히 버리고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전자는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로 대표되는 정치경제학자들에 대한 비판이고, 후자는 에드워드 소자(Edward Soja)로 대변되는 (남성중심적) 포스트모더니즘 연구가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리차 나가르(Richa Nagar), 빅토리아 로손(Victoria Lawson), 린다 맥도웰(Linda McDowell), 수잔 핸슨(Susan Hanson) 등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공간연구가들은 최근의 지구화 및 스케일 논쟁이 글로벌 도시에 편향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주류 논쟁에 잠재되어 있는 지구적 스케일은 강력한 반면 미시(local) 스케일은 수동적이고 취약하다는 이분법을 비판한 것이다.

한편, 최근 르페브르의 ‘행성적 도시화’(planetary urbanization) 개념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논쟁에서도 유사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행성적 도시화’는 르페브르(Lefebvre)의 《도시의 혁명》(La Revolution Urbaine, 1970; The Urban Revolution, 2003)에서 제시된 가설이다.

인류 역사상 도시화가 그 어느 때보다 진전된 시대에 물리적 경계로 구분된 특정한 공간 단위 즉, ‘City’를 폐기하고 보편적인 ‘과정’이자 사회적 존재양식인 ‘Urban’으로서 도시를 볼 것을 제안한다.

특정 지역에만 존재하는 특정한 정주패턴이 아니라 행성적 차원에서 끊임없이 확장하고 변형되고 경합하는 장으로써 도시를 재개념화하자는 것이다.

르페브르의 가설적인 제안을 수용하여 여러 비판도시학자들이 정교하게 이론화하고 있다. 이 논쟁에 최근 페미니스트 도시연구자들이 가세하여 논의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이들은 도시를 가변적이고 잠정적이며 확장적인 개념으로 재이론화하자는 문제제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이러한 시도가 자칫 서구의 경험을 지구적으로 보편화시키려는 선언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한다.

이에 Buckley and Strauss는 최근의 행성적 도시화 연구들이 르페브르를 선택적으로 재해석하는 독해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또 다른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이론을 만들기보다 행성적 도시화가 실제로 작동하는 양상을 보여줄 것을 주장했다.

행성적 도시화 개념이 아무리 ‘도시의 차이와 다양성’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행성적인 차원에서 도시화의 양상을 추상적으로 일반화하려는 노력은 결국 포스트식민주의 페미니스트들이 비판해 온 서구중심주의(서구/백인/남성 중심주의)를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신 르페브르의 다른 저작에 대한 종합적인 독해를 통해 르페브르가 의미한 진정한 도시적 혁명은 중요하며, 거시적인 것들이 빠져나가고 남은 잔여물(residue) 즉, 일상성의 경험과 미시적인 차이들이 잠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스트 도시연구가들이 공통적으로 ‘보편성/포괄성/일반화’를 문제 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러한 이론들이 마치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처럼 가정하지만 그러한 (자칭) 포괄적 이론을 발화하는 화자의 시점은 정작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말하는 보편적 모델, 이론, 포괄적 설명도 결국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 특정한 이해관계와 권력관계에 놓인 특정한 주체들의 담론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고, 이를 모든 이에게 보편타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의미이다.

서구중심적인 추상적 일반화 대신 로컬(local)의 다양한 행위자들의 실천과 다양한 역사적 궤도의 공존을 인정하자는 주장은, 페미니스트 입장이론(standpoint theory)과 특히 포스트식민주의 페미니즘에서 매우 풍부하게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연구는 마르크스주의 도시이론화 과정에서 거의 수용되지 않았다.

둘째,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는 지식이 사실은 모든 것을 포괄하고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편화하고자 하면 할수록 보편화 할 수 없는 예외가 생겨나는 법이다.

르페브르 역시 이론화를 하면 할수록 (이론화에서 배제된) 잔여물들이 계속 쌓여간다는 점에서 결국 진정한 도시적 혁명의 씨앗은 이러한 잔여물들(거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실천의 영역)에 배태되어 있다고 했다.

셋째, 보편성을 추구하는 일반화 모델에서 주변부는 예외로 간주되고 그 정치적 중요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타자들의 저항과 투쟁은 결국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식하에서 다음 장에서는 페미니스트 도시연구가들의 비판과 주장을 검토함으로써 이분법과 교조주의를 탈피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다만 그간의 수많은 페미니스트 연구물을 한 장에서 모두 검토할 수 없기 때문에 서구 페미니즘 학계를 중심으로 대표적인 연구물들을 제한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 <다음호에 계속>

 

정리= 한국건설신문 이오주은 기자


(“이 글의 참고문헌과 각주는 생략되었습니다. 이 글의 완성본은 <한국도시지리학회지> 19권 2호 또는 <희망의 도시> (2017, 한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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