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문학26> 젠더 차별을 넘어 희망의 도시 상상하기
<건설인문학26> 젠더 차별을 넘어 희망의 도시 상상하기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7.04.26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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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주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희망의 도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_(2) 젠더 차별을 넘어 희망의 도시 상상하기

용도지구제…젠더이분법의 20세기적 구현


ⓒ픽사베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성의 이동성 개선은 도시정책의 단골 메뉴 가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최근 여성의 도시 밤거리 안전 문제 라든지 도시 공공시설에 대한 접근성 문제가 사회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 여성들이 도시를 이동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도시의 이용 주체를 애초에 남성이라고 설정했기 때문이다.
 

2.도시담론의 남성중심성

▲ 정현주 교수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도시연구에서 젠더관점을 구축한 페미니스트 도시연구의 구체적인 성과와 한계를 점검해 보기 전에 간략하게나마 도시와 도시연구에서 여성이 배제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탐색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그에 관한 논의만 해도 방대하고 글의 범위를 넘어서므로 이 장에서는 이러한 논의의 시작점으로서 그간의 도시담론에서 여성과 젠더관점이 어떻게 배제되어 왔는지를 대표적인 몇 몇 연구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1) ‘도시’라는 관념의 남성중심적 구축

전통적인 도시담론에서 여성이 배제되어 온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 이유는 도시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젠더화된 이분법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근대적 도시의 원형으로 흔히들 인식하고 있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만 해도 그곳은 ‘남성’ 시민권자들의 전유물이었지 여성과 노예, 어린이는 논의 대상에서부터 제외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이천년의 세월이 흐른 뒤 해방과 자유의 상징이 된 근대산업도시가 태동했지만 여성은 여전히 도시의 이방인이었고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남아있다.

그녀들은 ‘집안’에 있거나 도시와 분리된 안전한 교외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존재로 규정되었다. 남녀의 제도적 평등이 이루어졌다는 21세기 대한민국과 서구의 여러 도시에서도 여성은 여전히 혐오범죄의 대상이 되고 있거나 상품화되는 등 도시의 타자로 각인되고 위치지어지고 있다.
지난 수 천년동안 인류의 문명은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되어 왔으며 도시 그 자체가 문명의 상징이자 매개체였다. 심지어 현대 자본주의 발달을 견인한 산업화도 특정한 도시화의 한 양상이라고 주장된다.

그런데 이러한 도시가 전통적으로 정의되고 규정되어 온 방식은 도시가 아닌 것들과의 대비를 통해서였다. 즉 시골 또는 전원이라고 일컫는 지역과의 구분인데, 구분의 기준은 다양하지만 그 핵심적인 것은 문명, 문화, 진보를 상징하는 것을 도시로, 그에 대비되는 야만과 자연을 상징하는 것을 비도시로 인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분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과 사회, 이 세계에 대한 관념의 본질적인 부분을 차지해 왔으나 특히 서구 근대철학과 근대성의 구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이분법을 규정하는 핵심원리는 바로 자연과 문화의 구분이다. 간단히 말해 자연은 태고로부터 주어진 것, 문화는 그것을 극복한 인류의 성취물이라는 대립적인 인식이다. 이러한 이분법에서 자연은 모성/여성과 동일시되었고 문화는 여성의 반대항인 남성과 동일시되었다.

자연을 여성과 결부시키는 인식은 고대로부터 서구적 관념의 기저에 깔려 있는 인식론이다. 여성은 신비하고 아름다운 ‘처녀지’로, 때로는 종잡을 수 없는 두려움의 근원인 야만적인 원시로 비유되면서 항상 자연의 일부로, 또는 자연 그 자체로 상상되고 이미지화되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야만적인 자연을 지배하고 길들이는 것이 바로 인간(대문자 Man)의 역할이며 이를 문명이라고 부른다.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은 이러한 ‘자연/문화의 이분법’이 젠더화되어 있으며 이것이 그대로 특정한 공간에 투영되어 공간을 이해하고 호명하고 이론화하는 학문적 실천과 관행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즉 공간은 도시와 시골, 공간과 장소 등으로 이분화되고 전자는 남성성과, 후자는 여성성과 결부되어 후자에 대한 전자의 우월성이 정당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당화에 힘을 실어 준 결정적인 역사적 계기가 바로 과학의 우월성이 지배한 시대, 즉 서구 근대의 도래이다.

젠더화된 이분법에서 도시와 문화를 상징하는 쪽, 남성성의 핵심적 특징이 바로 외부와의 완결적 분리이며 이는 외부와 자아의 구분, 즉 과학의 요구조건인 객관성을 담보하는 근거로 제시되었다. 이는 본인의 육체를 초월한 정신활동이 가능함을 의미하며 이로써 과학과 근대학문의 적합한 주체로서 남성이 정당화되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근대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의 이 유명한 명제는 근대 관념철학의 상징적 선언이다. 그것은 존재(육체)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이전에 사유하는 근대적 남성상을 대표한다. 육체를 초월해서(자신의 육체와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이 무엇이든지 간에) 객관적인 사유를 하는 초월적 이성이 근대의 핵심적인 주체로 등장한다.

모든 것을 관통하여 보편적인 사유를 하는 초월적 이성에 의한 지식은 합당한 지식, 즉 과학적 지식이 되었고 그렇지 못한 나머지는 학문에 적합하지 못한 지식으로 폄하되었다. 폄하된 이유는 초월적이고 보편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분적이고, 상대적이며, 초월하지 못한 착근된 지식은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연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자연의 일부가 된, 따라서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존재인 여성성의 핵심적 특징이 되었다.

자연과 가까운 그녀들은 문명의 핵심인 도시의 반대편에 위치해야 하는 존재로 정당화되었다. 남성들이 지배하는 도시가 문명을 주조하고 지식을 생산하는 생산의 장이 되면서, 도시의 반대는 생산과 반대되는 활동, 즉 재생산을 하는 장소로서 자연스럽게 귀결되었으며 이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에게 적합한 역할로 간주되었다.

도시가 아닌 그녀들의 장소는 집, 안,원, 교외 등으로 불렸으며 이러한 장소의 디자인과 위치는 도시와 대비되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근대도시의 토지이용 패턴의 근간이 된 직주분리는 이러한 관념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직장과 분리된 집, 도시와 분리된 교외, 문명/문화와 분리된 자연이 도시와 그 외의 지역을 분리하는 지표가 되었으며, 이러한 구분은 바로 성역할, 즉 젠더관계에 대한 관념이 공간생산의 기본원리로 작동한 결과이다.

가령 직장과 주거를 아예 공간적으로 분리한 용도지구제는 젠더 이데올로기가 실제 도시계획에 그대로 투영된 결과물로서 젠더이분법의 20세기적 구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여성들은 재생산의 영역인 교외에 갇혀 있게 된 반면 도시라는 공적공간은 여성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그것이 공공연히 합리화되기도 했다.

근대 도시는 남성성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작동할 뿐 아니라 남성성을 구현하는 방식으로도 재현되었다.
‘여성적인 교외’와 대비되는 CBD로 상징되는 도시중심부는 남성성을 연상시키며, 모든 것을 조망하는 위치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도록 디자인된 도시계획의 시선 역시 모든 것을 포괄하려는 남근적 욕망을 대변한다. 직선적인 근대적 빌딩 건축 양식도 진보와 성취 등 남성적 가치를 재현한다고 해석된다. 또한 이러한 도시를 작동시키는 ‘공식적’ 활동에는 ‘집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성들의 노동은 포함되지 않았다.

도시의 남성중심성을 오늘날에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여성들의 도시이동성 제약이다. 음양의 분리에 근거하여 가부장적인 유교 공간을 생산했던 수백 년 전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서구의 많은 도시에서도 여성들은 실제로 이동성의 제약을 겪는다.

여러 도시공간들은 여성들의 출입을 제도적으로 제한하기도 했으며(가령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의 증권거래소나 한양의 종묘), 관행과 관습에 의해서도 여성들은 숱한 도시 공간에서 배제되어 왔다.

 

심지어 근대적 시민들의 공론장이라고 불리는 광장도 알고 보면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으며 누구에게나 개방된 것처럼 여겨지는 도시의 거리에서도 여성들은 상품처럼 전시되거나(비단 홍등가뿐만 아니라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여 전시하는 각종 광고물도 포함), 감시당하거나(여성의 복장과 행동 코드에 대한 시선 등) 위협당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여성들이 도시를 이동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도시의 이용 주체를 애초에 남성이라고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행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어서 여성의 이동성 개선은 도시정책의 단골 메뉴가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여성의 도시 밤거리 안전 문제라든지 도시 공공시설에 대한 접근성 문제가 사회적인 조명을 받고 있는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최근까지 여성은 도시에서 안전하지 않았으며 공공시설 접근성에 제약을 받았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현실이 용인되어 왔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도시의 물리적/상징적인 남성중심성은 젠더이분법 등 남성중심적인 관념에 의해 오랜 세월동안 정당화되고 재생산되고 당연시되어왔다. 특히 근대도시는 문명과 이성과 진보의 요람으로 특징지어졌으며 이는 남성성과 동일시되었다. 도시와 대비되는 시골은 도시의 배후지로, 도시를 지원하는 공간으로 규정되었으며 이는 전원, 교외, 집, 자연 등으로 묘사되었고 여성성과 동일시되었다.

근대도시의 남성중심적 구축은 바로 근대문명의 남성중심성을 상징한다. 1990년대 학계를 뜨겁게 달군 모더니즘 비판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의가 페미니즘 논의와 거의 궤를 같이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페미니즘 비판은 단순히 남성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젠더이분법을 그 어느 때보다 심화하고 그에 기반하여 문명을 일군 근대성과 도시에 대한 성찰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 <다음호에 계속>

정리= 이오주은 기자 yoje@conslove.co.kr


(* 이 글의 참고문헌과 각주는 생략되었습니다. 이 글의 완성본은 <한국도시지리학회지> 19권 2호 또는 <희망의 도시> (2017, 한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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