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골부재가 충격에너지 흡수...조기붕괴 방지
철골부재가 충격에너지 흡수...조기붕괴 방지
  • 문성일 기자
  • 승인 2001.09.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골부재가 충격에너지 흡수...조기붕괴 방지
지난 11일 비행기 자살테러로 인한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붕괴로 전 세계인의 충격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붕괴사고와 관련, 미국 현지는 물론 영국·호주 등의 세계 주요언론들이 관련 전문가들의 원인분석 내용을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
영국의 BBC 방송은 최근 구조전문가의 말을 인용, 비행기 충돌후 한 시간 이상 견딘 이 건물의 설계가 수천명의 인명을 살려냈다고 전했다.
영국 뉴캐슬대학 구조공학 존 냅든 교수는 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철골 구조물은 매우 놀라울 정도로 견고했으며, 이 빌딩의 완벽한 구조설계로 인해 적어도 수천명의 인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많은 구조물이 손상을 받았지만, 한 시간이 넘도록 온전히 견뎌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영국 구조전문가 크리스 와이즈씨는 “이 빌딩을 붕괴시킨 주 요인은 화재였다. 그러나 항공연료로 인한 매서운 화재와 폭발시 충격은 화재에 견딜 수 있도록 내화피복을 실시한 건축물도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는 소용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토록 높은 온도와 무섭게 타고있는 대량의 기름을 견뎌낼 수 있는 건축재료는 이 지구상에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관련 학계 및 연구기관들도 이에 대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강구조연구소 오상훈 박사는 “이 건물의 붕괴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은 화재였으며, 이로 인해 층붕괴가 발생해 하부층에서도 도미노식으로 붕괴가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그러나 하부층의 도미노식 층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연직방향으로 하중이 작용했을 때의 취약성을 노출한 튜브 구조시스템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구조재료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말하면 철골조가 여객기 충돌시의 충격에너지를 흡수해 조기붕괴를 막고, 한 시간 이상 견딜 수 있었던 것이란 게 그의 주장이다.

■구조설계
세계무역센터 빌딩은 60년대의 건설 기준에 맞춰 설계됐다.
구조형식은 건물 외곽부에 기둥을 촘촘하게 설계됐으며, 이 기둥이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게 된다. 또 내부에 코어를 두는 튜브구조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 빌딩의 가장 중요한 구조물은 철골기둥과 콘크리트 코어, 엘리베이터 샤프트와 계단부위이다. 철골보는 중심으로부터 바깥쪽으로 뻗어나가 철골 기둥과 연결, 빌딩의 외부벽을 이룬다.
주요구조 철골들은 콘크리트 또는 암면 등의 내화피복재로 둘러싸 화재시 최소한 1∼2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했다.
이 빌딩은 지난 93년 460㎏에 달하는 폭탄테러에도 견딜만큼 견고한 건물로, 개관 당시 보잉 707기와 부딪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전해진 바 있다.

■시간별 상황
▷오전 8시45분(현지시간) - 메사추세츠로 향하던 보스턴발 아메리칸 에어라인 소속 11편이 세계무역센터 북동에 충돌
▷오전 9시3분 - 공중납치된 보스턴발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175편이 남동에 충돌
▷오전 10시5분 - 납치 비행기와 두 번째로 충돌했던 남동 붕괴
▷오전 10시28분 - 먼저 충돌했던 북동 붕괴

■빌딩 붕괴현상
여객기의 충돌 직후부터 빌딩이 붕괴했을 때까지의 순서는 크게 다음과 같은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 - 여객기 충돌에 의한 충돌층 및 인접층의 파손 또는 파괴
▷2단계 - 여객기 제트연료 폭발에 의한 건물 추가 파괴·파손 및 화재발생
▷3단계 - 충돌의 붕괴 및 충돌층 상부층의 낙하하중에 의한 하부층들의 도미노식 붕괴

■비행기 충돌에 의한 빌딩의 파괴·파손
영국 토목학회 구조·건축위원회 고든 마스터슨 위원장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여객기의 충돌에 의한 충격력은 허리케인의 두 배이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정도의 충격력은 규모면에서 최대급 허리케인의 두 배이상에 달할 뿐 아니라 여객기의 면적에 해당하는 건물 일부에 충격력으로 작용했을 때의 에너지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규모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시드니 대학 토목과 팀 윌킨슨 교수는 “이토록 큰 충격력도 빌딩을 붕괴시키는 원인이 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즉 이 빌딩은 충격 흡수에너지 능력과 인성이 타 건축재료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철골을 이용한 구조였기 때문에 여객기의 충돌에 의해 발생되는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RIST 강구조연구소 오상훈 박사는 “만약 취성적인 성질이 많은 일반 타 구조재료를 사용했더라면 충돌층의 구조부재들이 에너지를 흡수하지 못하고 초기에 붕괴되거나, 하부층 및 충돌층의 취성파단에 의해 건물이 전도됐을 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오 박사의 이같은 주장은 여객기 충돌후 79층에서 탈출에 성공한 현대증권 생존자의 인터뷰에서도 추측할 수 있다. 이 생존자는 당시 인터뷰에서 “탈출도중 건물 곳곳에서 콘크리트의 균열이 진행되는 소리들이 들렸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화재와 상관없이 충돌층에서 철골기둥이 많은 에너지를 흡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부층 콘크리트 부재의 균열이 진행됐다는 것. 즉 충돌층의 에너지 흡수가 부족했었더라면 더욱 비참한 사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얘기다.

■제트연료 폭발 및 화재발생에 의한 층붕괴
여객기 충돌에 의해 이미 건물의 주요 구조부재 일부가 파손된 상태에서, 24만갤론(9만1천리터)에 달하는 제트연료의 폭발에 의해 더욱 많은 구조부재가 파손 혹은 성능이 저하됐다.
이 경우 경우 나머지 건전한 상태의 기둥에는 더욱 많은 하중의 부담이 생기게 된다. 이런 최악의 조건에서 화재가 발생, 순식간에 1천도 이상의 고온 상태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철골구조를 설계할 때에는 2∼3시간 정도 화재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화재에서는 이미 일부 주요 구조부재들이 파손된 상태에서 제트연료의 폭발에 의해 순식간에 1천도 이상에 도달했고 최고 온도도 2천도 이상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조건에서 1시간 이상을 견뎠다는 것은 내화설계가 부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건물은 보통 2∼3시간 이상 화재에 견딜 수 있어야 하는데 1시간 밖에 견디지 못했기 때문에 철골구조의 취약성을 지적하고 있는 국내 일부 언론의 내용은 일반적인 내화설계 설정 단계를 살펴보면 그 내용이 잘못됐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상층부의 낙하하중에 의한 하부층의 도미노식 층붕괴
화재에 의한 충돌층 붕괴 발생이후 붕괴층보다 상부층의 하중이 낙하하면서 하부층에 충격을 줘 차례로 붕괴가 일어난 것으로 판단된다.
이 빌딩은 110층의 높이에 무게만도 백만톤에 달하며, 여객기가 84∼85층에서 충돌한 북쪽의 건물에서도 상부층의 무게는 10만톤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빌딩은 기둥이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게 하고 내부에 코어를 두고 있는 튜브구조 형식으로, 코어에 위치한 기둥은 빌딩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엘리베이터 하중 등을 부담하도록 설계됐다. 이같은 튜브구조 형식은 이 빌딩이 설계될 당시에 유행했던 구조이며, 이 건물에서는 풍하중과 지진하중에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구조평면을 가지는 경우 건물내부에는 기둥을 없앨 수 있어 공간을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슬래브가 판의 형태로 돼있기 때문에 수평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에는 큰 내력과 강성을 발휘할 수 있지만, 연직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슬래브에 10만톤에 달하는 하중이 작용했을 때 슬래브가 버틸 수 있다고 상상하기는 힘들다. 또한 기둥은 외곽부에 위치하고 있어 기둥이 이 하중을 지면에 전달하기는 무리가 있다. 아울러 보는 트러스 형태로 만들어져 있으나, 보와 기둥의 접합이 볼트로 연결 된 경우에는 상부층의 무게에 의한 하중의 작용으로 볼트에 파단이 생겨 슬래브나 보와 같은 부재들이 거의 저항하지 못하고 떨어지게 되고, 기둥은 거의 제 역할을 못하고 남아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결국 이 건물은 내진성을 확보하도록 설계됐으며 평상시의 고정하중 및 적재하중 등과 같은 하중을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지만, 이러한 무게에 의한 하중이 연직방향으로 중력가속도를 가지고 작용했을 때에는 매우 취약한 형태의 구조시스템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하부층에서 연속적으로 붕괴가 발생한 것은 구조시스템 형식이 연직방향의 동적하중에 취약한 게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접합부 상세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밝히고 있다.

■결론
이번 건물 붕괴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것은 화재이며, 이 화재에 의해 층붕괴가 발생해 하부층에서도 도미노식으로 붕괴가 발생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하부층의 도미노식 층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연직방향으로 하중이 작용했을 때의 취약성을 노출한 튜브 구조시스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구조재료의 차이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된다. 오히려 철골조가 여객기의 충돌시의 충격에너지를 흡수해 조기붕괴 방지는 물론 1시간 이상 견딜 수 있었던 것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은 설명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이같은 사고에 대비한 설계를 해야되지 않느냐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여객기가 비행중에 추락해 농가를 덮쳤을 때, 일반주택도 이에 대비한 설계를 해야 한다는 것과도 같다.
물론 초고층 건물에서는 그 중요도가 다르다고 할 수 있으나, 건물은 평화시에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연재해에 대비해 설계하는 것이지, 이같은 지극히 확률이 없는 상황까지 대비해서 설계하는 것은 모든 건물을 원자력 발전소 수준으로 설계해야 된다는 논리이며, 이는 엔지니어로서 추구해야할 이념과는 부합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밝히고 있다.
고려대 김상대 교수는 “지금까지 이번과 같은 사고를 예상해 구조설계를 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자동차 사고로 인해 피해를 예상해 승용차를 장갑차와 같이 설계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문성일 기자 simoon@conslove.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