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주택정비사업과 빈집법
가로주택정비사업과 빈집법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7.02.2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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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주택정비사업이 부쩍 많이 회자되고 있다.

체감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기존의 단독, 다세대, 다가구 주택 최소 2동 정도만 매입해도 적당한 보상비 주고 철거한 후, 최대 15층짜리 나홀로 공동주택 한 채를 지을 수 있는 미니재건축 사업이다. - 지자체 조례에 따라 최대 층수를 다르게 지정할 수 있지만, 사업자 입장에서는 최대 층수를 확보해 분양 면적을 늘리려 하고, 그 요구를 허용하는 지자체들이 많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기존의 가로를 유지한 채, 최소의 합필로도 추진할 수 있는 정비사업이다. 때문에 어떤 부지가 6m 이상의 인접도로만 확보하면 그 어떤 부대시설이나 인프라시설 구축의 부담 없이 오롯 아파트 1동을 알차게 시공해서 올릴 수 있는 것이다. - 일각에선 소규모 정비사업을 더 활성화하기 위해 4m까지 완화해야 한다 주장하고, 그것이 현실화 되고 있다.

일단 6m 도로라 가정하면,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최소한의 골목길이다. 왜냐하면 대개의 경우 불법 시설물들이 대지경계선 밖으로 넘쳐 나와 있고, 불법주정차가 다반사인 현실에서 6m 도로라 해도 사람 1명과 차 1대가 동시에 지나가기 어려운 폭인 것이다.

이런 좁은 골목 하나를 경계로 최대 15층 규모의 아파트 2동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인동간격이란 개념에 대한 파격이다. 그러한 상황이 골목을 따라 주욱 이어진다? 심지어 한 블록 내 골목들이 모두 이와 같은 밀도로 재건축이 되어도 “합법적일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법이 바로,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위시해 최근 국토부가 공포한 ‘빈집 및 소규모주택정비 특례법’(빈집법)이다.

그렇게 되면, 유입인구가 증가해 해당 지역뿐 아니라 인근 교통량이 증가하게 되고, 이는 비단 단일 공동주택의 주차시설 문제가 아니라, 주변 지역 전반의 교통 체증을 유발하는 상황에 이른다. 결국 교통환경영향평가가 수반되어야 하는 규모의 재개발이란 의미이다.

2015년 수도권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당시 기준으로 “한 지역에 무려 7천 호 규모의 재건축이 허가가 난 상황”이라며, “향후 2년 안에 모두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지역은 초토화가 될 것이다”라고 우려한 적이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 역시 소규모 정비사업과 건축규제 완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전개되는 지역에서는 주차나 보행환경은 물론이고, 주거환경 자체의 질이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소규모 정비와 달리 대단지 공동주택 조성 시에는 최소한 일조권 확보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인동간격이 규제되고, 주차 시스템의 효율성, 단지 내 예상 밀도에 따르는 녹지공간과 공개공지, 복지시설 및 부대시설 확보, 제반 안전문제 등이 모두 고려됐다. 그러나 소규모 정비사업은 그렇지 않다.

기존 지역이 4~5층 규모의 저밀 다세대 다가구 지역이었다면, 특례법에 힘입어 재건축될 경우 산술적으로는 300% 이상 밀도가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 지역에 단독주택, 빈집, 각종 공지 등이 있었다면, 예를 들어 두어 개 필지 모두 합쳐 기존에 25세대 정도가 살았던 부지가 한꺼번에 100세대 이상 거주하는 아파트 한 동으로 둔갑할 수 있다.

1~2인 가구가 많아져서 절대 인구 증가분을 다시 계산해 보아야 한다고 해도, 새로 유입된 세대만큼이나 기존의 세대도 대가족 구성원인 경우가 흔치 않으므로, 결국 저밀지역의 밀도가 500% 이상 뛰어 고밀지역으로 변신하고, 대상지에서는 단숨에 태양이 사라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예로 주변에 15층 규모로 재건축된 아파트들 사이에 존재하는 기존의 주택들은, 실내공간의 조도와 일조량을 볼 때, 추분에서 춘분 사이, 태양 고도가 낮아지고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시기에는 대낮에도 한밤과 같은 어두운 생활을 하게 된다.

1년의 절반 이상이 24시간 어둠이고, 춘분에서 추분 사이에도 일조의 질이 확보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그러나 정비지역으로 찍히기 전 그 지역은 매우 충분한 일조량을 보장받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상대적인 기본권 박탈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그리고 가로주택정비사업과 빈집법에 의거해 보면, 이러한 변화는 불과 2년 안에 일어날 수 있다. 재건축 사업을 지체시키는 거의 모든 의사반영 과정이,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통합 또는 축소됐고 공공기관이 개입해 “이건 추진이 마땅하다 사료되오” 하면 바로 진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노후화된 주거지역을 정비하면서, 기존의 가로 체계와 주차가능 면적, 녹지 및 공공용지, 교육시설, 심지어 기초적인 전기, 가스, 수도 등 공공 인프라까지 노후 상태를 유지한 채, 인구 밀도만  몇 배 이상 증가한다면, 삶의 질 악화 문제에 더이상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

원주민의 강제이주 문제, 거주권과 인권 같은 사회정의 관점의 쟁점은 차치하고 보아도 현행 소규모 정비방식은 매우 위험한 요소들 위에 성립되어 있다. 그렇다고 새로 입주한 신규 주택은 환경이 좋은가, 그렇지도 않다. 일조뿐 아니라, 소음, 시선, 조망, 보행, 안전 등 열거할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며, 아직 일어나는 않은 위험들도 간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6m 도로가 교차하는 십자형 골목길에서 마주보는 4개의 필지가 동시에 재건축을 진행하고 있다면? 실제 이런 지역이 있다. 이 지역은 현재 골목길을 따라 깊고 넓은 균열이 계속 확장되고 있다. 지반침하, 건물 붕괴, 싱크홀을 우려해야 하는 매우 위험한 지역이다.

그러나 가로주택정비사업 등 소규모 정비사업은 대단위 재개발과 달리 지반공사, 기초공사가 약할 수밖에 없다. 주변 지역에 7천 가구의 공동주택 건축허가가 구청으로부터 나왔다 해도, 사업자는 본인 사업지 100세대에 해당하는 하중과 그에 따른 기초의 강도만을 확보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업장들이 동시다발 진행되면서 일어나는 문제들, 도로(길)의 입장에서는 사방의 땅이 파이고, 중장비에 의해 장기간 눌리고 흔들리고, 다시 콘크리트 덩어리가 15층 높이로 올라가는 동안, 가로라는 이름으로 마치 한 가닥 국수가락처럼 견뎌야 하는 상황, 왜냐하면 그들(가로)이 가로주택정비사업의 근거이자 기준선이기 때문에…. (이는 현재 전개되고 있는 실제 지역에 대한 스케치이다.)

그렇게 형성된 7천 가구, 아마도 700~1000동 가량의 나홀로 아파트들이 모두 건설되고 나면, 이 새로운 대규모 재건축 지역의 환경은 과연 어떠할까? 전면 철거 재개발의 결과보다도 공간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절차나 방식에서 철거재개발보다 개선된 것이 있는 것일까?

따라서, 가로주택정비사업 등으로 야기되는 부족한 주차공간 확보 문제 해결을 위해 입체도로를 만들어 그 상부공간에 환승센터를 만들고, 그 하부공간에 공공을 위한 휴게공간 등을 만든다는 식의 접근은 마치, 청년 결혼률을 높이기 위해 학제를 개편해서 빨리 졸업시켜 주고 국가가 소개팅을 주선하겠다는 식의 제안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영화 <제5원소>에서 보았던 공중도시와 입체도시를 기억하는가. 그런 상업영화들이 예측한 미래도시에 등장하는 지표면 공간은 사람이 살 수 없도록 지독하게 어둡고 슬럼화 되어 있었다.

그토록 어두운 암흑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도래한 것일까 막연히 궁금했었다. 아마도 환경오염의 결과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최저선 없는 재건축 추진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그 땐 못했었던 것이다. - 이런 예측들이 그저 공상이 아니라, 또 먼 미래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미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소규모 주택정비의 초기 취지, 거주민을 퇴출시키지 않고 주민들이 스스로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사업자가 필요한 대단위가 아니라 주민들이 협의해서 스스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작은 단위로 정비할 수 있게 하는 환경개선이란 개념은 어느덧 증발한 듯싶다. 전문가들을 통해 적정 사업성 확보를 위한 적정 층수로써 7층이 제시됐었다 한들, 그것이 현실에서 부정되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누구의 취지에 의해서든, 근거법을 차려주었는데도 몇 년이 지나도록 서울 등 핵심 사업지에서 가로주택정비가 사업으로써 활성화 되지 못하자, 관계자들은 오랜 고심 끝에 소규모 정비 관련 법안들을 모아 모아서 전용법(소규모정비 사업자를 위한 종합선물세트)을 만들었다. 규제를 더 완화하고 사업권자의 권한을 더 확대해, 공공이 앞장서 건설사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서비스한 특례법이다. - 물론 특례법(빈집법) 하에 모인 소규모 정비방식은 가로주택정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왠지 본판과 거리가 있어 보이던 빈집 관련 항목은 ‘빈집 등’에서 ‘빈집 및’으로 약간의 법안 명칭 수정을 거쳤지만, 그래도 여전히 피자 도우 위에 올려진 토핑 같다고 비유되곤 한다.

지난해 9월, 빈집 특례법 제정을 앞두고 열린 공청회 후 일부 전문가들은 “이 법안에는 전면철거재개발에 준하는 강도 높은 독소 조항들이 산재해 있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어, “옆 동과 우리 건물을 헐값에 사겠다는 저 사업자 때문에 계획에도 없었고 원치도 않는 이사는 가지는 않겠다! 게다가 난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이지 않나! 그러니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런 생각을 하는 시민이 있다면, 불현듯 공공기관의 이름으로 강제이주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 이것이 당시 우려했던 독소조항의 극히 한 부분이다.

그러한 특례법이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하고 LH가 시범사업자로 발 벗고 나서면서 서울은 이제 들썩일까 말까 예의주시하는 정도인 듯싶지만, 그 전에 이미 전세대란으로 서울에서 빠져나온 인구가 유입되던 수도권 지역에서는 정부의 소규모정비 지원사격에 힘입어 국지적이지만 전면적으로 기존 주거지를 갈아엎고 있는 지자체들이 있었다.

이들 지역은 서울유민(주거지 젠트리피케이션)들만으로도 수요가 충분해서 사업성을 더 배려해준 빈빕 특례법이나 규제완화가 추가되기 전에 이미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고, 그 허가권은 지자체장에게 있기 때문에 인접 지역이라고 해도 구청장의 모럴(윤리관)과 필로소피(정책철학)에 따라 거주민들의 상황은 극과 극으로 아주 다르기도 했다.

소규모 정비사업이 거주민의 주거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 아니라, 건설사의 사업성을 지원하는 제도이고, 가로주택정비가 국내에 처음 도입되던 당시의 취지는 어느새 정치권의 홍보 문구가 되어 버린 인상이다.

탄핵 정국 속에 나라가 이토록 출렁이는 중에도 정부와 국회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심지 굳게 빈집 및 소규모 주택정비 특례법 제정을 밀어붙였고, 이달 초 소리소문 없이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난 2월 16일자 정부발 소식, VIP 권한대행에게 보고한 국토부 신사업 제안서 중, “가로주택정비사업에서 해소하지 못하는 주차장 문제를 입체도로 건설과 미래형 입체도시 건설로 해결할 수 있다”는 항목.

가로를 기준으로 하는 재건축 사업이 활발해지는 시점에서 어떻게 보면 이것은 맷돌을 돌릴 수 없게 하는 발상이 아니라 도로, 즉 재건축의 기준이 되는 도로에 대한 완벽히 다른 패러다임의 의심스러운 등장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 보고에 가로주택정비를 언급한 것이 단순하게 입체도로 도입(안)에 포함된 구성 항목이 아니라, 다각도에서 깊이 있게 연구해봐야 하는 주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기자로 하여금 아직까지 수면에 올릴 계획이 없었던 몇 개의 취재 포인트를 덜 된 상황에서 오픈하게 만든 계기가 바로 입체도로와 가로주택정비의 상관 관계였다. 지금까지 전개한 논리중 해석이 아닌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보충 취재 또는 정정 보도를 하겠지만, 2년의 현장 스케치를 통해 맥락 상 오류는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상태이며, 본 아티클 관련 이견, 의견, 제보 모두 문을 열고 환영한다.


한국건설신문 취재부 차장 = 이오주은 수석기자 yoje@conslo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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