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칼럼] 아파트 그림자가 사라진 풍경
[조경칼럼] 아파트 그림자가 사라진 풍경
  • 박준서 디자인엘 소장
  • 승인 2017.02.0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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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서 디자인엘 소장 /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운영위원.

어느 뜨거운 여름 일요일. 늦은 아침을 챙겨먹고 마당에 마나님과 함께 나와 차를 한잔 마시고 있다가 부쩍 자란 잔디와 웃자란 일년초들이 눈에 들어온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시던 차를 테이블에 놓아두고는 일어나 잔디를 깎고, 일년초를 뽑는다.
그리고는 다시 앉아 차를 마저 마시며 저 코너에는 가을에 구절초와 내년 봄을 위해 튤립을 심어볼까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옆집의 마당 다듬는 모습을 참견하고 씨앗을 나누고 꽃을 나눠 심는다.
최근 이사 온 작은 마당이 있는 이 집에서 주말이면 흔히 벌어지는 일상이 된 모습이다. 정말 신기한 것은 그런 활동들이 귀찮거나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잠시의 몸놀림은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를 낮잠보다 더 효과적으로 풀어준다.
그 이전엔 아파트에 살았다. 제법 오랫동안 마치 습관처럼, 당연한 듯이 아파트를 집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엘리베이터에서나 가끔 만나는 이웃은 언제봐도 익숙칠 않았고, 왠지 인사를 나누기도 서먹했다. 문을 닫고 들어가면 세상과 철저히 절연되는 회색 금고 같은 집. 그런 절연은 물리적 절연체일 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끊어버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매우 비싼 집에 살고 있다며 자족하고 있다.
아파트가 이론적인 아이디어로 제시된 이후 실제 지어진 것은 이차세계대전 후 패망한 독일에서라고 한다. 이후 유럽의 여러나라와 미국, 남미 등등에서 우후죽순으로 아파트가 지어졌지만 이내 아파트는 사람들이 살만한 집으로서의 인식을 얻는데 실패하고 우범화되거나 슬럼화 됐으며 곧 주거공간 유형으로서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그 시점, 즉 해외에서는 주거공간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던 그 시점에서부터 들불 번지듯 퍼져나갔고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한 외국 학자가 이를 두고 우리나라를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부른 것은 어쩌면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녀가 주장한 한국에서의 아파트는 단순히 거주공간으로서의 가치보다는 사회적 신분을 상승시키는 수단이며 재산가치로서의 역할이 상당히 큰, 그래서 누구라도 더 크고 더 비싼 아파트를 가지고 싶어하는 우리의 욕망을 드러내 보여줬다.
아파트는 한국의 조경계를 부유하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집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고 그 만큼 빈 곳을 녹지로 만들어 거주민들이 공동으로 즐기는 것이 아파트 단지의 개념이다. 그러므로 건물만큼이나 이 녹지는 절대 이분돼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존재이다. 이런 공간에 우리는 열심히 조경공간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렇게 빠르게 많이 쏟아낸 아파트단지의 조경공간은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정말 잘 모르겠다.
일상에서의 쓰임보다는 상품화된 주거상품. 거기에는 일상이 스며들 기회가 없다. 거기에는 내가 땀흘려 가꿀 대상도 없고, 이웃과 관계를 만들어갈 기회도 별로 없다. 어쩌면 이 두 가지 역할은 집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역할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날이 갈수록 금고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인간적인 관계를 끊어가고 있는 이 분별없어 보이는 개발의 종말을 슬픈 눈으로 바라봐야할 것인가?
이제는 떠나온 그 아파트를 다시 생각해본다. 이제 아파트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고 선언하고 싶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의 역할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그저 소비되기만 하는 조경공간과 마치 공장 근로자처럼 이를 배출해내는 조경가가 있었다. 이제는 우리의 일상에 깊이 소용되고, 스스로 가꾸고 이웃과 함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마음 따듯해지는 풍경을 만드는 일, 우리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자연과 동화된 삶이 살아 나타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조경가가 필요한 때이다. 이런 조경가들이야말로 이 땅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상품을 만들어 내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의 삶이 투영될 수 있는 그야말로 삶의 풍경을 만드는 사회적 역할로서의 조경이 절실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창밖에 비가 내린다. 예전 아파트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비가 땅에 닿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 어린 시절 시골의 처마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땅에 닿던 그 소리와 닮았다. 나도 모르게 근심도 걱정도 없었던 그 시절로 빠져 들어간다. 아파트의 그림자가 사라진 이곳에서는 어쩌면 더 자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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