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의정부 터’ 150년 만에 발굴
조선시대 ‘의정부 터’ 150년 만에 발굴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6.08.3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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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옛 육조거리 유일한 중앙관청 유적 국내 첫 발굴조사
개방형 펜스 설치해 발굴 현장 관람 가능, 설명회 정기 개최
▲ 고종대 중건 당시의 의정부 건물 배치도와 현재 세종대로를 오버랩한 모습(추정도).

한국건설신문 이오주은 기자 = 광화문 아스팔트 도로 아래 의정부 터의 옛 모습을 150년 만에 밝혀낸다.
서울시가 조선시대 신권(臣權)의 상징인 ‘의정부’가 있던 자리이자 사대문 안 문화유적의 핵심 장소인 경복궁 앞 옛 육조거리 중앙 관청터 1만5천627.7㎡(세종로 76-14 일대)에 대한 첫 발굴조사를 본격 착수했다.
이 사업은 2012년 서울시가 수립한 ‘4대문안 문화유적 보존방안’에서 경관 회복의 핵심대상으로 꼽았던 육조대로의 중앙 관청터를 본격적으로 발굴ㆍ조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발굴조사는 종묘, 한양도성 등 서울의 중요 유적을 발굴한 바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수행하며 8월부터 내년 10월까지 약 14개월간 진행된다. 총 3단계(학술연구~발굴조사~재정비)로 추진되는 ‘의정부 터 발굴 추진사업’(2015.6~)의 두 번째 단계다.
시는 발굴조사에 앞서 (재)역사건축기술연구소와 지난해 6월부터 1년여 간의 종합적인 학술연구를 실시해 의정부 터를 발굴ㆍ정비하기 위한 학술적 근거를 마련했다.
시는 “현재 정부종합청사, 미국대사관, 세종문화회관 등 중층 이상 건물이 들어선 육조대로의 다른 관청들과 달리, 의정부 터는 1909년 내부(內部) 청사 2층 신축을 비롯해 여러 차례 공사가 진행 됐어도 지하층과 중층 이상 건물신축은 거의 없어 지하 유구 보존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할 것으로 추정한다”며, “일제강점기 때 훼손된 이래 그동안 대규모 건물 신축이 드물고 현재 광화문 시민열린마당, 관광버스 주차장, 도로 등으로 이용되고 있는 만큼 지하 유구 보존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해 건물 유구 상당부분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2013년 공원 내 조형물 설치를 위해 실시한 부분발굴 결과 의정부와 관련이 큰 유구ㆍ유물이 출토돼(문화재청 보존 조치) 의정부 유구의 잔존 가능성이 더욱 높게 전망된다.
시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유구와 유물의 실체를 확인하면 학계 전문가, 문화재청, 시민들의 의견을 널리 수렴해 유구 보존 방안과 정비 방향을 선정하고, 3단계인 의정부 터 재정비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의정부는 1400년(정종 2년) 정종(定宗)이 처음 설치한 이후 1907년 내각 신설로 폐지될 때까지 영의정ㆍ좌의정ㆍ우의정 등이 국왕을 보좌하며 6조의 업무 등 국가정사를 총괄하던 조선시대 최고 정치기구였다. 임진왜란 이후 비변사에 그 실권이 넘어가고 화재로 인해 청사도 이전돼 그 위상이 떨어졌으나 고종 즉위 이후 대원군의 왕권강화 정책에 따라 삼군부 및 6조 관청과 함께 재정비가 이뤄져 본래 위치에 중건되고 그 위상도 회복됐다.
한편, 옛 육조거리(現 세종대로 일대)는 의정부, 삼군부, 육조(이ㆍ호ㆍ예ㆍ병ㆍ형ㆍ공조)를 위시한 조선의 주요 중앙 관청들이 자리했던 서울의 핵심 가로로, 일제강점기와 산업화ㆍ도시화 과정에서 육조대로 주요 관청터에 대형 고층건물들이 자리하면서 역사적 경관이 대부분 훼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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