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일상의 따뜻한 위로 : 살고 싶은 동네 길 만들기
걷기…일상의 따뜻한 위로 : 살고 싶은 동네 길 만들기
  • 강연주 우리엔디자인펌 대표이사
  • 승인 2016.08.30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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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주 우리엔디자인펌 대표이사 /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운영위원

걷기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다. 각종 걷기 프로그램과 이벤트들은 걷기를 통해 배우고, 느끼고, 기억하기를 바란다. 걷기를 사회적 자산으로 인정한 각 지자체에서는 이러한 시류에 편승해 다양한 사업 구상안들을 내놓고 있다. 몇 년 전에 우리 회사에서는 ‘걷고 싶은 서울길 마스터플랜 용역’을 수행한 적이 있다. 서울의 외곽 산, 숲과 하천, 마을길 등을 연계하는 총 연장 157㎞의 서울 둘레길을 정리,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작업이었다. 선정된 노선의 수배에 달하는 기존 길들을 조사·분석했고, 길과 함께 하는 관광, 문화자원을 연계해 스토리텔링하고 안내체계를 정비했다.
최근에는 ‘서울 도심보행길 조성사업’ 용역을 수행, 많은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서울의 도심을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보행길을 통해 엮어내고자 했다. 전체 구간 중 일부인 6.0㎞ 구간에 대한 시범사업이 올해 시행돼 스토리텔링과 안내에 대한 계획안이 현실화될 예정이다. 서울 둘레길과 서울 도심보행길은 각각 서울의 외곽과 중심부에 위치하며 이용 주체라든지 목적 등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기존 길의 연계와 길을 통한 이야기의 공유라는 측면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반면에 길이 아닌 공원·녹지의 현상설계를 수행하면서 관 주도가 아닌 우리 회사의 차원에서 설계의 주요 개념으로 ‘순례길’을 제안한 적이 있다. 단순히 설계자가 점적인 외부 공간을 멋지게 만들어 내기보다 좋은 자연 환경과 역사, 문화 요소들을 사람들 스스로 - 걷기를 통해 - 찾고, 만들고, 누릴 수 있기를 원했다. 기존의 공간이 가지고 있는 힘은 오랜 시간을 두고 쌓아온 물성에 있으며, 이는 사람들이 꾹꾹 눌러 밟고 지나는 길 위에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설계자의 역할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담을 수 있는 장치를 제안하는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아파트 조경설계에서도 우리는 가장 먼저 길에 주목하고 길을 중요시한다. 현재의 트렌드에 맞는 화려하고 멋진 공간과 좋은 아이템을 배치하긴 해야 하지만, 결국은 길이 그러한 공간들을 엮어 가며 더욱 풍성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물성이 존재하기 힘든 아파트 개발 방식을 고려할 때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실상 새로 만들어지는 이곳, 이 길 위에서 채워질 것이다. 시작점이 어디가 됐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가득한 동네를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미래이다.
『동네 걷기 동네 계획』이라는 책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동네 길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출발한다. ‘걸어서 좋고’, ‘걷기가 좋은’ 동네는 어떤 동네일까? 저자는 ‘걸어서 많은 것을 편하게 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많이 걷게 되어 좋은 동네 만들기’를 목표로 한다. 굳이 차가 아니어도 원하는 지점으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고 각자의 많은 원하는 지점들이 서로 연계되고 교차하면서 자연스럽게 걷기가 많아지는 동네, 이를 통해 건강과 커뮤니티 등 다양한 가치가 구현되는 동네, 결국 함께 걸음으로써 ‘살기 좋은 동네’가 실현됨을 이야기한다.
논밭을 갈아엎고 만든 새 아파트가 됐든, 오랫동안 사람이 살아 온 기존 동네가 됐든, 또는 도시의 번화한 중심 공간이 됐든, 경치 좋고 공기 좋은 산 속이 됐든 사람이 사는 곳이면 모두 다 동네라 할 수 있다. 조경가는 이러한 동네를 계획하고 설계하고 만들어낸다. 공간을 만들고 이를 엮어 주기도 하며, 물리적인 네트워크의 구축을 통해 새로운 공간들을 발견하고, 호흡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또한 각각의 공간과 길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서로 이어주고 공유하고 때론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사람들의 매일(일상)을 쌓아가게 하고, 때로는 위로해 주며, 배움과 깨달음도 줄 수 있는 곳은 바로 길 위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길이 또한 단순히 물리적으로 반듯하고 굴곡이 없어, 편안하고 안전하기만 한 길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 길은 오히려 다소 험하고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항상 내재되어있는, 그래서 어느 순간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하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그런 길이다. 각자의 고된 인생길, 그 길 위에 조경가가 함께 할 수 있기를 그리고 따뜻한 위로를 건넬 수 있기를 항상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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