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정후 런던대학 UCL 지리학과 펠로 (한양대도시대학원 특임교수)
<인터뷰> 김정후 런던대학 UCL 지리학과 펠로 (한양대도시대학원 특임교수)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6.06.08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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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재생, 진검승부가 시작됐다<1>

“도시재생의 가면을 쓴 개발논리를 경계하라” 

한국건설신문 이오주은 기자 =  김정후 교수는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도시재생 정책자문과 프로젝트 수행 그리고 연구 및 교육 활동을 왕성하게 펼치는 도시재생전문가이다. 런던대학 UCL 지리학과 펠로이자 한양대 도시대학원 특임교수로 재직하며 런던과 서울에서 자신의 도시건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산업도시의 쇠퇴에 대응하기 위해 착안된 도시재생은 유럽식 방법론이라며 도시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몇 가지 한계를 지적한다.

도시재생은 상향식(bottom-up)에 개별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고 과정을 중시하는 패러다임으로 우리처럼 중앙이 주도해서 특별법을 제정하고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가 없다고 일갈하기도 한다. 그 말인즉 현재 도시재생을 대하는 우리의 접근방식 자체가 여전히 개발적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개발과 재생의 개념을 분리하는 시도를 경고한다. ‘개발은 끝나고 재생의 시대가 도래했다’ 라는 식의 구호는 그 이면에 과거와 같은 방식의 일방적 개발을 추진함에 있어 단지 포장지로 도시재생을 입히려는 의도가 전제된 것이라고.

풀뿌리 시민운동가나 의식 있는 디자이너, 연구자들이 실행한 것부터 계산해보아도 우리사회에 도시재생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고작 10여년에 불과하다. 아직도 도시재생이 낯설기만 한데 여기저기에 그 이름을 빌어 부동산 투자와 난개발 앞에 내세우고 있다. 도시재생이 시작도 하기 전에 본질이 퇴색할 것만 같은 노파심에 본지는 관계 전문가의 진단을 들어보기로 했다.  

 <기획인터뷰> 도시재생전문가 김정후
- 런던대학 UCL 지리학과 펠로/ 한양대 도시대학원 특임교수

▲ 올해 초 그랜드마스터클래스에 초청돼 강연 중인 김정후 박사. 사회 각 분야 명사들이 참여한 본 프로그램에서 도시건축을 대표하는 최초의 연사로 선정됐다.(사진제공_마이크임팩트)

- 도시재생이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부터 미니재개발이란 딱지가 붙더니 실제로 지방도시에서 난개발로 가는 지름길로 이용되는가 하면 부동산 투자의 새 이름으로 도시재생을 간판삼는 바람잡이들이 눈에 띈다.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는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도시재생과 관련된 상황은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라고 판단한다. 한 마디로 시행착오다. 우리가 도시재생을 완벽하거나 또는 완벽에 가깝거나 혹은 매우 괜찮은 방식으로 시행할 가능성은 낮다. 왜냐하면 우리가 본격적으로 현대적인 도시를 계획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부터로 역사가 짧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살기 좋은 도시, 바람직한 도시를 만드는데 관심을 기울인 것은 정말 오래 되지 않았다. 이제까지는 도시를 건설하는 행위 자체가 목표였잖은가.
그러다가 어느 순간(길게 보면 10년, 짧게는 5년) 도시재생이라는 세계적인 어젠다(agenda)가 등장했다. 도시가 어떻게 건강하게 발전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한 상태에서 새로운 개념이 한 순간에 이식됐기 때문에 ‘얼마나 실패할 것인가’가 문제지 ‘얼마나 성공할 것인가’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딱히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필연적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얼마만큼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견하고,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이끌어 내느냐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한 도전이다.
한편, 시간이 지날수록 예측하지 못했던 현상들이 속속 등장한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계속 ‘이런 게 있었나' 할 것이다. 전혀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고, 겨우 대응한다 해도 매우 미비한 수준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제부터가 도시재생의 진검승부를 펼쳐야 하는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현재의 상황을 놓고 우리가 잘했는가, 못했는가’를 평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굳이 평가한다면 도시재생 과정에서 당연한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고 있다. 핵심은 앞으로 같은 실패를 반복한 것인가 아니면 교훈 삼아서 나은 방식으로 나아갈 것인가 이다. 지난 10년의 경험을 반추해 볼 때 지금 바로 그 기로에 섰다.
 

- 경제기반형, 근린재생형 등 한국형 모델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연구가 추진돼 왔다. 그런데 그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것들이 등장하고 있다.

접근 방식의 문제다. 전 세계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을 단번에 지역별로 지정해 시범사업의 형식으로 추진한 나라가 있는가? 없다. 전형적인 우리식이다. 도시재생은 산업화를 성취한 도시들이 필연적으로 직면한 쇠퇴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즉 쇠퇴를 해결하기 위한 지극히 유럽적인 방법론으로써 소위 다 갈아엎지 않고 기존의 유무형의 자산을 최대한 재활용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하는 방식을 창조했다. 따라서 도시재생은 산업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과 필연적으로 연계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은 차이가 있다. 유럽과 같은 산업시대를 겪지도 않았고, 산업구조로 비교 평가할 때 우리는 여전히 제조업 국가다. 이러한 상황에서 태생이 다른 도시재생이라는 유럽식 개념을 유행처럼 이식하려 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는가? 무엇인가 하긴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할까라는 문제에 봉착하고, 결국 ‘시범사업을 해보자’로 귀결된다. 도시재생이 아파트 단지개발이나 재개발 사업도 아닌데….
도시재생은 쇠퇴한 지역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나 동력 혹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찾아서 해당 지역에 맞는 최선의 방식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중앙정부에서 정한 보편적 기준에 근거해 시행한다. 이것은 도시재생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한국형 도시재생 모델을 만들어야…”
중앙정부 주도의 결과중심 사고는 재개발 논리
유럽식 도시재생은 지역특성 고려, 과정을 중시


- 그렇다면 실제 정책자문을 할 때 구체적인 상황 앞에선 어떻게 자문하는지.

국토부 도시재생 R&D도 참여하고, 여러 지자체를 자문하고, 국토연구원, 건축도시공간연구소, 토지주택연구원 등 주요 연구기관과 도시재생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나는 두 개의 일관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첫째는 우리나라 식의 도시재생 개념과 방법론을 찾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나라의 도시재생을 벤치마킹할 때에는 결과보다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재의 상황은 여전히 반대에 가깝다. 우리식이 아니라 남의 방식(영국ㆍ일본ㆍ독일 등)을 맹목적으로 이식하려 하고,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한다. 
현재 서울시의 경우 다행스럽게도 ‘서울형 도시재생’이라는 방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도 일정 정도 자문했다. 도시재생에 성공한 주요 도시들이 해왔던 방식으로 자신의 도시에 최적화된 도시재생 방법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은 중앙정부가 일괄적으로 추진하는 도시재생사업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은 전국적으로 대부분이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도시재생은 결코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거늘 잘못 벤치마킹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간판은 도시재생이라고 달았지만 실제 이하 모든 사업들은 과거 우리가 취했던 재개발 방식을 고수하는 것을 흔히 목격한다. 때로는 전면재개발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잘못된 진부한 관행을 바꾸지 않으면 타이틀만 도시재생이고 알맹이는 도시재생이 아니다.
 

- 정부가 뉴타운ㆍ재개발/재건축 다 안되니까 간판 바꿔서 도시재생을 추진하는 건 아닌지.

‘도시재생이 어떤 범주를 다루는가’에 대해 설명하면서 ‘개발의 시대가 아니라 재생의 시대’라고 하는 식의 잘못된 논리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도시는 기본적으로 자의든 타의든, 크든 작든 개발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재생 또한 당연히 개발의 범주에 들어간다. 따라서 ‘개발 끝내고, 그 다음에 재생’이란 식으로 두 개의 개념을 분리하는 것은 접근 자체가 크게 잘못되었다. 이것은 개발을 다른 방식으로 이름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의 얕은 논리다. ‘개발이 아니라 재생이다’라고 주장하면서 과거와 차이가 없는 방식을 고수하는 것, 이것은 큰 오류이자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강조하면, 재생은 훌륭한 개발의 한 방편이다. 다만 개념적으로 조금 더 정확하게 정의하면 재생은 ‘합리적 개발’이다. 우리는 개발이 가진 좋은 점을 더욱 수준 높게 발전시켜야 하는데, 지금까지 무분별한 개발 논리 하에서 많은 피해를 보아왔다. 특히 약자들, 사회적 약자들이 피해를 보고 어려운 환경에 처해지도록 만든 것이 재개발이었기 때문에 개발 쪽에 관계된 사람들은 악의 무리로 몰아버리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중요한 것은 기존 개발이 지닌 문제를 개선하면서 지역의 가치와 시민의 권리를 존중하고, 소통을 중시하는 합리적 개발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진정한 의미의 도시재생이다.
 

- 일종의 트라우마 아닐까… 서울형 도시재생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서울은 전 세계적으로도 몇 개 없는 인구 천만의 도시다. 이런 도시를 중앙정부가 정해 놓은 경직된 도시재생의 틀에 집어넣을 수는 없다. 서울이 가진 독특한 정체성 때문에 쇠퇴하는 방식도 다르다. 즉 긍정이든 부정이든 서울의 도시환경과 서울이 발전해온 방식은 세계적으로 비슷한 사례가 없다. 그러므로 서울에서 등장한 쇠퇴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해결하는 방식도 당연히 맞춤형이어야 한다. 즉 서울의 도시구조와 역사ㆍ문화ㆍ사회ㆍ경제 등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2013년에 제정된 ‘도시재생특별법’은 좋고 나쁨을 떠나 지역과 무관하게 중앙정부가 규정한 보편타당한 규정이다. 도시재생 특별법이라고 불리는 법령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인구 1천만인 도시와 인구 20~30만인 도시가 어떻게 같은 법령 하에서 도시재생을 이끌어 가겠는가. 당연히 해당 도시의 정체성과 쇠퇴에 가장 부합되는 가이드라인과 방법론을 만들어 시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서울형 도시재생은 바람직한 도시재생의 출발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울은 우리나라의 수도다. 도시재생에서도 선도적 입장에 있으므로 서울형 도시재생이 지방도시들로 하여금 자신의 지역에 적합한 도시재생을 발전시키는 데 영감을 제공했으면 하고, 서울은 이러한 책임감을 또한 가져야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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