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가의 역할을 다시 묻다
조경가의 역할을 다시 묻다
  • 서영애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
  • 승인 2016.05.3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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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애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운영위원

현재 상태가 이어진다면 조경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는 어렵다.
필자가 참여한 세 번의 설계공모 과정과 결과를 토대로 조경의 미래 예측을 어둡게 하는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서울시의 2015년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공모’와 2016년 ‘남산 예장자락 재생사업 설계공모’, 그리고 평창군청의 2015년 ‘효석문화예술촌 건축설계공모’가 그것이다.
공모 참가자격은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의 경우 국제공모로 국내외 건축사가 포함된 5팀이 공동으로 응모할 수 있었다. 남산 예장자락은 건축사 혹은 일정 자격을 갖춘 조경업체 중 한 팀을 포함한 5팀이 공동으로 응모할 수 있었으며 둘 다 대표사의 자격 제한은 없었다.
이 두 공모의 설계 내용상 공통점으로는 상부에 공원이나 광장을, 지하에 건축 프로그램을 담는 것이었다. 겉모습은 조경 프로젝트지만 하부에 들어설 건축 및 구조 공사비가 더 많은 프로젝트였다. 필자는 두 공모에 대표사로 참여해서 모두 가작에 그쳤다. 건축 공사비가 조경 공사비보다 많은 프로젝트에 조경 분야가 대표사로 참여하는 과정은 건축 파트너 구하기부터 쉽지 않았다.
남산 예장자락 공모의 경우 수상한 팀들 중에는 조경 분야와 협업하지 않고 건축 분야 단독으로 참여한 팀이 많았다. 조경 분야와 협업을 했더라도 크레디트를 명시하지 않아서 수상작 명단에 조경가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효석문화예술촌 건축 설계공모의 사례는 이보다 좀 더 비관적이다. 지침서에는 건축과 조경이 협업해야 하는 조건으로 건축사무소가 대표사가 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1만7천985㎡의 대지에 외부 공간 계획이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판단돼 건축 분야와 설계공모 단계에서부터 동등하게 패널, 보고서, 모형제작 과정을 나누어 진행했다. 건축분야와 논의해 기존 경관을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 대지를 살짝 들어 올려 건축물을 감추는 이른바 대지건축 콘셉트로 설계안을 도출했다. 인위적인 조경시설을 배제하고 봉평을 상징하는 메밀밭을 중심으로 식재계획을 수립했다. 당연히 조경공사비는 축소됐다. 어느 정도 마스터플랜이 확정된 후 전체 공사비 중 건축, 토목, 구조, 전기 등에 비해 조경 공사비가 적어지자 협업하던 건축사는 공사비 요율로 조경설계비 책정을 원했다. 건축과 조경의 구분이 애매해진 대지건축의 콘셉트에서 마스터플랜 계획을 대표사인 건축 분야에서 총괄하겠다는 의도였다.
성격이 다르긴 하나 다른 사례도 있다. 지난해에 시행된 ‘세종시 도시상징광장 설계공모’는 지상에 비해 지하 구조물 공사비가 더 많은 프로젝트로 공모단계에서 조경 분야가 대표로 진행하다가 계약 단계에서 건축으로 주체가 변경됐다고 한다.
오픈 스페이스의 의미가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참여업체 조건에 조경 분야가 명시되지 않거나, 조경 공사비의 요율이 낮다고 해서 조경이 소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최근 업역의 구분이 모호한 분야 간 융합의 설계 경향도 이러한 결과를 낳은 원인 중 하나다. 예전과 같이 건물과 외부, 구조와 외피의 구분이 분명할 때와는 달리 어디까지 건물이고 구조체인지 불분명해진 최근의 설계 경향은 공학적 근거가 분명한 토목이나 건축에 비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조경 분야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게 한다. 턴키 프로젝트나 경관 심의에는 조경이 아닌 디자인 전문가의 경관 업체가 경관계획을 맡아서 하는 실정이다. 조경이 단독으로 인정받는 부분은 결국 식재 설계로 축소되고 있다. 경관을 고려해 디자인 방향을 토론하고 전체 배치도를 계획하는 과정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가 현재는 없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학계에서는 업계 문제로 치부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 조경 분야에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학계와 업계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조경 분야는 순수학문이 아니라 인문학을 포함한 인접분야를 이해하고 실제로 대상지에 적용할 능력을 배양하는 응용학문이기 때문이다.
조경은 도시, 사회, 지리, 문화, 역사, 건축 등의 폭넓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현실적으로 노력한 대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역할이 축소되는 분야에 누가 비전을 가지고 도전할 것인가. 앞으로 조경 분야에 지원할 인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미 이런 현상은 시작됐다.
다음 세대가 ‘안전’하게 조경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전 세대가 열어 놓은 새로운 학문과 업역의 문을 우리 스스로 닫는 꼴이 될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는 적극적 대안 마련과 실천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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