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조경, 환경조경, 그리고 생활조경으로
건설조경, 환경조경, 그리고 생활조경으로
  • 문석기 청주대학교 교수
  • 승인 2016.01.2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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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상차림을 위해 : 금광을 캐내던 자세에서 사금을 추려내는 마음으로

▲ 문석기 청주대학교 교수 /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운영위원
자연환경보전업 신설, 자연환경복원업협회 설립 근거를 명문화한 ‘자연환경보전법 개정’, 우리나라 최초의 ‘조경법’으로 조경의 독립선언임을 자부하는 ‘조경진흥법’ 시행, 수목원법에 의한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탄생, 500여개의 도시숲 조성 등 이러한 일들이 조경분야에 플러스가 되는 건지 마이너스가 되는 건지 복잡하기만 한 상황 속에서 연말연시를 이들 소식과 함께 맞는 조경인들의 마음은 참으로 심란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건설산업’에 의탁해오던 조경인들은 건설분야의 급격한 위축과 함께 아주 추운겨울을 맞을 수밖에 없는 듯하다.

1990년대 후반 건설산업 구조개편이라는 심각한 상황을 겪으면서, 조경이 건설 속에서 얼마나 왜소하고 외로운 입장이었는지는 이미 확인됐지만, 최근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산림분야의 영역침범에 대한 관련부처의 대응과 ‘조경건설기술자 자격확대’와 같은 황당무계한 조치들을 보면 정말 고립무원의, 바람 앞에 등불이 된 조경분야이다. 사실 국가 건설분야 공무원 대부분이 토목·건축분야의 인력으로 채워져 있는데 조경의 입장을 배려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필자는 1996년 건설산업개편 시도로 홍역을 겪은 우리 조경분야는 언젠가 또다시 존폐가 위협받게 될 것을 예측하고, 철저한 대비가 필요함을 피력한 바 있다. 다가오는 위협의 방향과 형태는 다르지만 지금이 바로 그 위기의 때가 아니겠는가 하는 염려가 크다.

지금 법안소위에 걸려있다는 자연환경보전법 개정안에서 거론되고 있는 관련업 설치노력은 ‘생태복원업’으로 시작해 ‘자연환경복원업’, 그리고 2015년의 ‘자연환경보전업’으로 명칭과 내용을 변경해 가면서 거의 10년간에 걸쳐 반복되고 있다. 이는 새로운 분야임을 표방해야만 입법이나 분야설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공언하기는 어려웠으나, 기실 생태복원분야의 설립은 건설조경으로서의 입지가 흔들릴 날이 올 것에 대비하고 환경영역에서의 먹거리를 타분야에 앞서 선점·확대하려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추진됐던 일이다. 그래서 필자를 비롯한 몇 명의 뜻있는 조경인들이 앞장을 섰고, 조경인들의 진입을 지원하기 위해 은근한 노력을 기울인바 적지 않다. 지금까지 많은 조경인들이 기사와 기술사자격을 취득했고 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자연환경보전사업 대행자협의회)에 등록된 대행자의 80%가 조경공사업 등의 조경면허를 갖고 있다하니 사실 상당한 성과를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 관련업 신설법이 통과되면 가장 수혜를 받는 자는 당연히 ‘자연환경보전업을 업으로 하는 조경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조경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생활공간의 건설‧관리 분야에서는 과거 관주도의 신도시나 대규모 개발시대를 거쳐 마을만들기 또는 마을재생이라 부르는 주민주도의 마을단위 공동체건설시대가 목하 진행 중이다. 2012년 1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뉴타운의 출구전략으로서 마을만들기 사업을 제시했으며, 이후 마을공동체 사업을 통해 천개의 마을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국적으로 지금까지 시행된 마을만들기 사업의 수는 아마도 수백을 헤아릴 것이나, 우리나라 전국의 마을 수는 5만 여개에 달한다. 어마어마한 사업대상이 아직 앞에 남아있다는 얘기다. 문화마을, 생태마을, 행복마을, 희망마을 등과 같은 이름으로 정책적으로 추진돼 온 이들 대부분의 사업에는 물리적환경의 개선이나 창조 작업이 포함돼 있으며, 공동체중심의 사업이기에 마을의 공동 공간, 나아가 개인의 사적공간에 대한 정비사업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이니 그곳에 조경 사업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고갈을 앞두고 있다던 석유가 이젠 매장량도 자꾸 늘어나고 고갈될 염려도 없다한다. 이는 석유의 사용량의 감소와 함께 과거에는 캐내기 힘들었던 셰일암석층에서 오일과 가스를 뽑아내는 기술이 개발됐기 때문인데, 국내 건설 산업이 바닥을 기는 이 시기는 오일이 메마른 유정이나 금맥이 고갈된 금광에 비견할 수 있다. 셰일층에서 오일을 뽑아내듯이, 이제는 조경도 생활공간 속에 녹아있는 자원들을 섬세하게 뽑아내야 할 때이다. 조경의 셰일층은 마을이라는 생활공간이다. 마을만들기 사업은 아직까지 정해진 틀이 없이 try and error 방식으로 진행되어가고 있는 사업이기에, 조경인이 이 사업에 참여한다면 조경가로서의 꿈을 실현시키고 동시에 보람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조경영역이 열리게 된다.

마을만들기에는 마을길과 마을마당, 마을정원, 공동수도, 빨래터 등 공동체 공간의 정비‧재생사업이 포함된다. 다른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마을의 여러 공간을 안전하고 생동감 넘치며, 즐겁게 모여 이야기하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가는 사업을 조경전문가보다 잘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조경인에게 부족한 것은 커뮤니티 코디네이터로서의 능력이라 할 수 있는데, 조경인에게 그 능력을 추가할 수만 있다면 마을조경 코디네이터는 조경인에게 훌륭한 새로운 직업 영역이다. 빵가게와 미장원이 마을마다 들어서듯이 마을조경센터가 마을마다 자리 잡고 마을의 재생을 주도해 나가는 날을 기대해본다.

아직도 “조경이 뭐하는 거예요?”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전공학생들에게 질문을 해도 이에 대한 대답은 아주 궁색한데,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들은 망설임 없이 답을 하실 수 있는지 궁금하다. 세상의 흐름에 따라, 조경으로부터 무수한 변형과 파생이 일어난다 해도 조경이라는 이름을 쓰는 한 그 본질은 자연에 있다. “Design with (in, for, from, following..) Nature”해야 하기에, 조경인은 모든 공간의 계획과 설계를 자연이라는 사고의 축으로 꿰뚫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적 개념의 Landscape Architecture가 출현한 과정을 보아도 명명백백하다. 그래서, “조경이 뭐하는 거냐”는 질문에 대한 필자의 답은 “자연을 바탕에 깔고 외부공간을 계획·설계‧시공하는 분야”이다.

조경은 생물체를 핵심소재로 사용하는 유일한 건설산업이다, 이는 조경이 건설산업 내에서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근거인 것이며, 적어도 생물(식물)이 관련된 일이라면 토목이나 건축이 소유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조경인으로서 가장 큰 능력은 다양한 소재와 여건, 정보, 요구사항 들을 계획‧설계‧시공이라는 조경적 수단으로 조율하고 통합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소재생산분야인 산림이나 임업, 원예와 같은 분야에서는 절대로 따라올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인간의 활동이나 감성과 소재가 어우러져야 하는 공간에 대해서 이들 분야는 조경의 경쟁자가 될 수가 없다. 각자의 영역을 충실히 지키면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밥그릇 싸움에 기력을 소모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바람직한 이유이다.

조경의 먹거리는 건설조경에서 시작해 환경조경으로 확대됐고, 이제 마을만들기의 중심과제인 생활조경을 그 위에 더 하고자 한다. 조경인이 하는 일이라면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조경의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건설조경의 능력만으로는 생태조경, 생활조경을 다 충실하게 아우를 수는 없다. 생태조경업을 나의 일로 하기위해서는 생태를 더 깊이 알아야 하고, 생활조경을 내 품에 안기 위해서는 커뮤니티와 코디네이션에 대한 능력을 더 키워야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태계이다. 그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더 배우고 시야를 넓히는 노력을 아끼지눈앞의 나의 작은 이익을 위해 미래의 우리의 큰 이익을 상실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자. 기득권... 많이 누렸으면 이젠 더 넓은 시장을 위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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