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심사제, 제2의 최저가제로 변질은 곤란
종합심사제, 제2의 최저가제로 변질은 곤란
  • 최민수 연구위원
  • 승인 2016.01.11 1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정책연구실장
 

그동안 300억원 이상의 정부공사 입찰에 적용되던 최저가낙찰제가 폐지되고, ‘종합심사낙찰제’가 드디어 시장에 등장했다.
그동안 최저가낙찰제 하에서 공공공사의 낙찰률은 75% 수준까지 하락한 바 있다. 그 결과, 건설현장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나 미숙련 근로자가 급증하고, 각종 부실공사를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해왔다.
종합심사낙찰제는 이러한 최저가낙찰제의 폐해를 개선하기 위하여 도입된 제도이다.
즉, 저가 낙찰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이다.
특히 공공공사에서 외국인근로자 투입이나 저가 하도급 등의 폐해를 방지하려면, 공사비가 현실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노임(勞賃)이 20% 상승할 경우, 낙찰률은 8-10% 상승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 낙찰률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야
그런데 종합심사제 시범사업 과정에서 일부 공사의 낙찰률이 85%를 넘어서면서, 정부와 발주기관에서는 낙찰률을 인위적으로 하락시키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이는 공사비를 평가하는 기준이 ‘낙찰률’이라는 허상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10여년전 공사원가 산정 방법으로서 ‘실적공사비’ 제도가 도입된 이후, 낙찰률의 산정 기준이 되는 예정가격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그 결과, 동일한 낙찰률일지라도 10년 전과 비교할 때 실질 낙찰률은 5% 이상 하락된 상태이다.
선진국의 경우, 낙찰률을 가지고 공사비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대부분 km당 또는 ㎡당 낙찰가격이나 공사비 등을 축적한 후, 해당 공사의 기술적 난이도나 물가변동을 고려해 입찰자의 투찰가격을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내에서도 이제는 비합리적인 ‘낙찰률’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단위면적당 공사비나 물가변동을 고려하여 입찰가격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 발주자가 정한 가격으로 획일적인 투찰은 곤란
그동안 최저가낙찰제 하에서는 세부공종별 단가심사가 의무화되면서, 견적 작업도 없이 발주자가 정한 가격에 투찰하는 사례가 일반화된 바 있다. 종합심사제는 제도설계 당시 입찰자가 원가계산을 통하여 솔직한 가격을 투찰하도록 설계되었으나, 그동안 논의 과정에서 세부공종별 단가심사 제도가 부활된 바 있다.
그러나 해외시장 확대나 건설업의 경쟁력 강화 등을 고려할 때, 이제는 원가계산도 해보지 않은 채, 발주자가 정한 가격에 맞추어 인위적으로 투찰하는 풍토는 지양해야 한다. 발주자별로 담합이나 덤핑 여부에 대한 실사를 강화하되, 입찰자가 자신의 견적가격을 솔직하게 제시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또, 단가심사를 생략할 경우, 입찰자가 내역서를 직접 작성하는 순수내역입찰 또는 물량내역수정입찰을 강제하는 것도 경직적이다. 설계변경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을 불허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발주기관이 인정하는 고난이도 공사에 한정하여 단가심사를 생략한다는 방침이다. 그런데 고난도 공사에 대한 정의가 명확치 않다. 예를 들어 ?시설물안전관리특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1종 시설물을 대상으로 단가심사를 생략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 중견/중소업체 배려 필요
중견업체나 중소업체의 입장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항목은 ‘동일공법 실적’ 평가와 배치기술자 평가 항목이었다. 이 가운데 동일공법 시공실적은 공동도급시 해당 업체의 지분율과 상관없이 공동 입찰사의 개별실적을 단순히 합산하는 방식을 도입하여 해결한 바 있다.
배치기술자 가운데 예정 현장대리인은 원칙적으로 동일공사의 경력을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철도공사 발주시 예정현장소장에게 철도 시공경력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6개월 이상의 재직기간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다.
도로나 택지 등 범용적인 공사를 제외하고, 발주가 단속적(斷續的)인 공사에서는 재직기간 규정을 완화하는 것이 요구된다.
또, 건설현장에는 수많은 변수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입찰공고에 명시한 사유에 한정하여 기술자 교체를 허용하고 있는 규정도 개선해야 한다.

- 시공평가점수는 동일 공사로 평가해야
미국, 일본 등 외국 사례를 보면 시공평가결과는 발주자별 또는 동일공사 유형별로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일본 국토교통성의 경우, 각 건설사의 공사성적 점수는 각 지방정비국별로 관리하고, 향후 입찰에 활용한다. 시공성적평가는 21개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동일한 유형의 공사 입찰에만 영향을 미친다.
국내에서도 만약 LH 발주 공사에서 시공평가점수를 낮게 받은 경우, 향후 LH 입찰에서만 일정 기간 불이익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발주량이 적은 발주기관은 국토부에서 축적한 해당 업체의 공종별 또는 업종별 시공평가점수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프로젝트별로 평가항목 다양화해야
종합심사제는 그동안 제도 도입 과정에서 동일공법실적이나 기술자 평가, 전문화율 평가 등을 강화하면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건설업체의 기술력을 향상시키려면 공사수행능력에 대한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
다만, 그동안 소위 ‘운찰제’나 수십, 수백개사 입찰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급격한 제도 변화를 추구하다 보면,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중장기적인 정책 로드맵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입찰 제도의 개선을 추구하는 것이 요구된다.
발주기관에서는 획일적인 평가 방식을 탈피하고, 프로젝트별로 핵심성공요인을 도출한 후, 최적의 낙찰자를 결정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계약이행능력 평가를 공사유형별로 다양화하고, 실시간(real time)으로 실적이나 평가결과를 반영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나아가 건설업체의 경쟁력을 촉진할 수 있도록 원가계산이나 엔지니어링, 조달능력, 특화된 기술력 등을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부연하지만, 낙찰률 만을 중시하여 종합심사낙찰제가 다시 제2의 최저가제로 전락해서는 곤란하다. 공사비의 적정화와 더불어 건설업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로서 종합심사낙찰제가 기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