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나 혼자 사는’ 시대의 도시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나 혼자 사는’ 시대의 도시
  • 주선영 기자
  • 승인 2015.10.15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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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한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상임이사

 
혼자 산다는 것이 그리 특별하지 않은 시대다. MBC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싱글 라이프의 신기함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동시대 도시 생활의 현실적인 한 단면이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1인 가구 수는 500만을 넘어섰다. 전체 가구의 27.1퍼센트다. 전체 가구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1인 가구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급변하던 시대의 상징인 4인 가족은 이미 먼지 쌓인 신화가 된 셈이다. 올해 성인이 된 사람이 마흔 살이 되는 2035년에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4.1퍼센트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온 식구가 둘러앉아 오순도순 함께 밥을 먹는 스위트 홈을 꿈꾸지만 그건 환상에 불과하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요즘 온라인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약어와 신조어는 1인 가구 시대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생생하게 예증해 준다. ‘혼밥’이 ‘혼자 먹는 밥’이고, ‘혼술’이 ‘혼자 마시는 술’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혼밥족’이 늘면서 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식당과 카페도 증가하는 추세다. ‘포미(forme)족’은 자신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1인 가구 소비 집단을 말한다. 건강(for health), 1인 가구(one), 여가(recreation), 편리(more convenient), 고가(expensive)의 첫 글자를 딴 말이다. 싱글과 콘슈머(consumer)를 합한 ‘싱글슈머’는 1인 가구 형태로 살면서 자신만의 생활 패턴에 따라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일정한 수입이 있고 부양가족이 없어 수입의 대부분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에 씀씀이가 큰 편이다. ‘네오 싱글족’은 혼자 사는 것 자체를 즐기는 자발적 독신주의자를 뜻한다. 탄탄한 경제력과 디지털 활용 능력을 바탕으로 독신 생활을 만끽하는 이들이다. ‘알봉족’은 과일 한 알, 채소 한 봉만 사는 소량 단위 구매자를 말한다. 혼자서 꼭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패턴을 반영하는 신조어다. 1인 가구가 가장 아까워하는 것은 다 채우지 못하고 버리는 5리터짜리 쓰레기봉투라는 말도 있다. ‘킨포크(kinfolk)족’은 친척이나 친족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지만 요즘은 지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먹고 즐기는 사람을 뜻한다. 이른바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과 비슷한 맥락이다. ‘푸피(poopie)족’은 경제적으로 곤궁한 독거 노인층(poorly-off older people)의 준말이다. 이러한 신조어들은 이미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혼자 사는 우리 사회의 풍경을 생생히 담고 있다. 20년 뒤에는 열 집 중 세 집이 혼자 사는 집이 될 것이다. 

1인 가구라 해도 그 성격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미혼이나 비(非)혼부터 돌싱, 기러기, 독거 노인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최근에 발표된 서울연구원의 정책 보고서는 서울의 1인 가구를 사무직에 종사하는 30대 초반의 ‘화이트 싱글’, 경제적으로 안정된 도시 트렌드 세터로서의 30․40대 ‘골드 싱글’, 직업이 불안정한 ‘노마딕 싱글’, 40대 후반부터 60대 사이의 ‘불안한 독신자’, 고독한 독거 노인인 ‘실버 싱글’ 등 다섯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1인 가구하면 얼핏 자유롭고 유행에 민감하고 소비가 많은 ‘화려한 싱글’이 연상되지만 실제로는 빈곤의 문제를 안고 사는 경우가 다수다. 또 경제적으로 여유 있든 어려움을 겪든 1인 가구의 대부분은 고독과 외로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1인 가구 하면 우중충한 골방에서 혼자 독주를 들이키는 우울한 장면을 떠올리는 것도 잘못된 고정 관념이다. 이미 대부분의 선진국은 오래 전부터 탈가족화를 경험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의 하나로 손꼽히는 스웨덴에서는 현재 전체 가구 중 47퍼센트가 1인 가구다. 수도 스톡홀름만 놓고 보면 1인 가구의 비율이 60퍼센트에 달한다. 스웨덴이 ‘가족 없는 사회’가 된 것은 혼자 살아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시장 경제와 복지 제도가 1인 가구 사회의 안전망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러므로 1인 가구를 심각한 사회 문제의 하나로 인식하기보다는 현실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러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1인 가구 시대의 사회를 통찰한 책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사월의책, 2013)에서 노명우 교수(아주대 사회학과)는 “혼자서 해야만 하는 것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 이 두 가지의 균형”을 묻고 찾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행복한 개인들의 연대'를 강조한다.

1인 가구 시대의 사회적 과제는 협력과 소통 그리고 공유라는 키워드로 요약될 수 있다. 연대와 공유를 지향하는 공공의 정책이 필요하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지난 9월 서울시의회는 ‘1인 가구 정책 박람회’를 열고 ‘서울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연구원은 1인 가구를 위한 정책적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주거주택 부문의 과제로는 1인 가구에 주택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공급량 확대와 양질의 주택 품질 확보, 사회적 안전망 부분의 과제로는 1인 가구 밀집 지역의 주거 환경 개선, 공유 사회 부문에서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 등과 같은 정책이 제시됐다. 도시의 공간과 장소를 만들고 가꾸는 조경, 도시계획․설계, 건축 분야도 ‘1인 가구 시대의 도시 인프라 조성’이라는 아젠다를 이론과 실천의 중심에 놓을 필요가 있다. 도시의 인구학적 변화와 라이프스타일 변모는 도시 공간의 형식과 상보적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시장 경제는 1인 가구 시대의 소비 패턴과 라이프스타일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를 식품 쪽에서 볼 수 있다. 1인용 포장 식품을 백화점과 마트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미니 수박처럼 품종을 작게 개량한 과일도 출시되고 있다. 가구도 달라지고 있다. 좁은 평형에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른바 변신 가구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케아를 비롯한 여러 가구 브랜드는 접었다 펼 수 있거나 다양한 형태로 조립이 가능한 가구를 계속 개발하고 있다. 주택과 건설 시장은 장기 불황을 겪고 있지만 오피스텔과 소형 주택의 분양 광고는 여전히 신문 하단을 장식하고 있다.

1인 가구 시대는 조경을 비롯한 도시 공간 전문 분야에 새로운 시장 창출이나 업역 확대와 같은 비즈니스 마인드 그 이상을 요청한다. 새로운 삶의 형태를 건강하고 행복한 도시 공간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기획과 연구가 필요하다. 조경의 사회적 역할이 건강하고 쓸모 있고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고 가꾸는 데 있다면, 조경가는 ‘나 혼자 사는’ 시대의 도시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일의 중심에 나서야 한다. 건축 분야는 최근 초소형 주택, 공유 주거, 협동조합형 주택 등을 다각적으로 실험하고 연구하고 있다. 일례로 정림건축문화재단은 공유 주거에 대한 여러 건축가들의 실험적 작업을 기획하여 전시회를 개최하고 그 성과를 『협력적 주거 공동체 Co-Living Scenarios』(프로파간다, 2015)라는 책으로 묶어낸 바 있다. 도시는 삶을 담는 그릇이다. ‘행복한 개인들의 연대’를 넉넉하게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1인 가구 시대의 도시 공간은, 가로는, 광장은, 공원은 어떤 형식과 내용을 갖추어야 할까. 조경가의 통찰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의 과제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숙제다. 우리는 이미 ‘나 혼자 사는’ 시대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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