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예방과 프리크라임의 경계에 선 셉테드
범죄예방과 프리크라임의 경계에 선 셉테드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5.08.31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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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미 오브 스테이트>가 현실이 된 세상에 살고 있다. 1998년 개봉한 이 영화는 정보화 사회의 팬옵티콘(panopticon)에 경종을 울린 미국 첩보스릴러다. 

CCTV, 블랙박스, 구글어스, 구글글래스…
2015년을 사는 우리도 도처에 깔린 감시 속에 살고 있지만, 강력 범죄는 더욱 증가하는 불합리한 불안을 안고 있다.

그럴수록 체제는 CCTV보다 강력한 무언가를 찾고, 종종 제도라는 이름으로 편파적인 가속도를 붙이곤 한다. 그런데 만약, 결과가 다음과 같다면 어떨까.

어느 여름밤 시원한 공원에서 맥주 한 캔 마시는 여유, 여친과 옆 단지 놀이터에서 그네 데이트를 즐기는 작은 기쁨을 앞으로는 박물관에나 있는 고전으로 만든다면? 이는 셉테드 전문가들이 실행한 연구 내용을 토대로 설정한 상황이다.

논지는 간단하다.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안전한 사회지, 행동을 규제하고 운신의 범위를 제한해서 위험을 차단하는 것이 과연 살기 좋은 도시일까?"를 묻고 있는 것.

그렇게 우린,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도시인지 감시와 통제의 사회인지, 경계를 가릴 수 없는 세상을 재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수많은 차량 안에서 ‘다보고’ 있는 깜빡이들, 머리 위에서 돌고 있는 CCTV들을 문득 인식할 때 또는 자신의 모든 것이 무의식의 순간까지 찍히고 있다는 사실에 섬뜩해 하는 순간들이 한 번 즈음은 있을 것이다.

빅브라더, 팬옵티콘… 많은 미래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예견한 미래상이 오늘이 되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2000)의 ‘프리크라임(범행을 예측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범죄자를 체포ㆍ단죄)’은 영화적 허구일 뿐이라고 단언하기가 힘들어졌다.

‘디자인(환경설계)으로 범죄를 예방한다’는 연구는 아주 건강한 접근이다. 이러한 셉테드(CPTED)가 학문으로서 국내에 도입된 지 20년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고성능 CCTV와 LED등 설치, 출입통제시스템 강화가 주요 솔루션이고, 설계적인 해법이나 커뮤니티 솔루션은 제한적이다.

이에 연구자들도 CCTV와 벽화만으로 안 된다는 데 동의했고, 그 이상의 소프트웨어가 제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하면 옆집 개똥이네 수저 개수까지 알던 옛 동네, 유대와 연대가 정으로 묶여 소속감을 주는 가정ㆍ학교ㆍ직장 사회가 그 ‘소프트웨어’다.

그러나 이 시대에 오프라인 커뮤니티를 활성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셉테드가 담장을 높이거나 영역간, 집단간 배타성을 강화하는 수준에서 솔루션의 한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범죄 증가의 원인이 ‘배타적 고립’의 결과임을 상기한다면 지금과 같은 셉테드는 범죄적 성향을 오히려 확대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 인문ㆍ사회학적 연구와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셉테드(CPTED)를 제도 안으로 빠르게 연착륙시키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다. 지자체와 중앙 정부가 적극적으로 셉테드를 정책화하고 있다. 조금은 더 신중히 천천히 해야 할 것 같다. 


한국건설신문 취재부 차장 = 이오주은 수석기자 yoje@conslo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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