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공간, 인류의 미래를 품다!
지하공간, 인류의 미래를 품다!
  • 김재성
  • 승인 2015.07.0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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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설신문·한국터널지하공간학회 공동기획>
 

고대 인류에게 대지는 여신의 몸, 지하공간은 생명을 움트게 하는 여신의 자궁이었다. 동굴은 지상과 지하 두 개로 나뉜 세계를 잇는 순환의 고리였다. 그러나 도시문명과 힘의 논리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순환의 고리는 끊기고 지하공간은 어둡고 음습한 사자의 공간으로 전락해 버렸다. 지하공간을 다시 수태의 공간으로, 동굴을 순환의 고리로 복권시키는 것은 지속가능한 문명을 담보하기 위한 대전제다.

 

길 내기 위해 터널 파던 것에서 주거 및 휴식공간용으로 패러다임 변화
세계 최대 고타르 베이스 터널, 수직공간 5만㎥ 베르발드할렌 콘서트홀


■ 동굴, 순환의 세계를 잇는 고리

두 개의 동굴이 있다.
하나는 삶 이전과 현재를 이어주는 산도(産道)다. 태내의 양수 속에서 안락함을 누리던 태아는 어느 날 길고 좁은 동굴로 미끄러져 들며 이 세계에 던져진다.
또 하나는 현재와 삶 이후의 세계를 잇는 동굴이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에서는 이승의 삶이 다하면 길고 어두운 동굴을 통과해 지하세계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다.
대지를 여신의 몸으로 여겼으니 동굴을 여신의 산도로 생각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우리는 물론 그 두 개의 동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무의식 어디쯤에는 태어나던 순간의 기억과 혈거의 삶이 기록되어 있지 않을까.
우리가 사는 세계는 순환의 법칙에 의해서 운영되는 듯하다. 해와 달이 순환하며 이에 따라 낮과 밤이 바뀌고 계절이 돌아온다. 겨울이 지나면 씨앗이 움트고 열매를 맺으며 가을이면 다시 씨앗을 떨어트린다. 저부로 사라졌던 달은 사흘째 되는 새벽에 다시 떠오르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뱀은 허물을 벗고 미끈한 몸으로 빠져 나간다.
달마다 죽은피를 쏟아내고 다시 수태를 준비하는 여성 또한 자연의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인류의 의식 속에 순환적 세계관이 생겨난 것은 이렇게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이 신화나 종교에 깃들면서부터 였을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대지는 여신의 몸이었다. 지하공간은 생명의 씨앗을 품은 여신의 자궁, 동굴은 지상과 지하 두 세계를 잇는 순환의 고리였다.
델포이의 신탁이 파르나소스 산 동굴에서 내려지고 신과 인간을 매개하던 샤먼의 주거 역시 동굴이었음을 보면 아마도 대지모신(大地母神)과 동굴 순환의 개념은 인류의 보편적인 믿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인간들은 지하공간을 춥고 음습한 사자의 공간으로 격리시켰다. 동굴을 벗어나 도시를 만들고 모계사회에서 힘에 기반한 남성사회로 바뀌는 동안 순환의 질서는 어느덧 사라지게 되었다.
지하공간은 더 이상 씨앗을 품은 생명의 공간이 아니라 미노타우로스가 사는 미궁, 죄수를 가두는 감옥, 사자를 매장하는 공간이 되었다.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세 개의 종교는 직선적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순환의 고리를 낱낱이 해체했다. 겨울 지하 어둠 낮은 것을 삶의 이면으로 몰아내고, 모든 동물과 식물을 인간을 위한 자원으로 격하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하와 겨울 어둠이 없다면 지상과 봄 밝음 역시 의미가 없어진다. 죽음이 없다면 삶도 의미를 잃는다. 삶과 죽음, 지하와 지상, 겨울과 봄을 연결하는 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때 우리가 잃는 것은 삶의 공간이나 물질적인 자원뿐이 아니다.
환경피해나 생태계 교란은 물론 문명을 지탱해 온 재생과 포용의 신화도 결국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지하공간을 말하기에 앞서 순환의 질서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동굴이 다시 순환을 잇는 고리로 기능하고 지하공간이 생명을 잉태하는 공간으로 복권되어야 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지속가능한 문명을 담보하는 대전제가 아니겠는가.

■ 고대, 손으로 바위를 뚫다

근대 이전 터널을 뚫는 것은 아주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다리를 놓거나 집을 짓는 건 인력만 충분하면 해볼 만 했지만 겨우 몇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막장에서 일일이 바위를 쪼아내는 것은 사정이 달랐다. 지금 볼 수 있는 고대의 터널은 거의 물을 얻기 위한 수로뿐이다.
신전이나 왕궁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지하공간도 볼 수 있는데 이는 바위를 파낸 것이 아니라 다진 땅위에 건축물을 지은 뒤 주변을 되묻는 형식이었다. 터널과 지하공간은 땅속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쉽게 훼손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유적이 많지 않다는 것은 바위를 파내는 것이 그만큼 힘든 일이었음을 말해준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대의 터널과 지하공간을 따라가다 보면 문명의 또 다른 측면을 엿볼 수 있다.
헤르도토스의 역사에는 기원전 7세기경 유프라테스 강에 있었다는 터널 이야기가 나온다. 강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놓았는데 그 밑에 먼저 터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물은 전하지 않지만 터널 규모와 구체적인 치수까지 기록한 것을 보면 꽤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20세기가 돼서야 만들어진 강밑터널이 이미 바빌로니아에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터널로는 기원전 687년에 만들어진 사모스의 에우팔리노스 터널이 있다. 1천36m의 바위산을 뚫는데 약 15년이 걸렸다고 한다. 본래 목적은 수로였지만 가로·세로가 1.8m나 되어 사람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었다.
예루살렘에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수로터널이 있다. 아시리아 침공에 대비해 만든 533m의 터널이다. 이 터널은 기존에 있던 석회암 자연동굴을 확장한 것으로 공사기간도 불과 7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관련사진 에우팔리노스 터널>
로마 탄압을 피해 기독교인이 숨어 살았다는 터키의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아마도 인간이 만든 가장 거대한 지하공간일 것이다. 이 지하도시는 지하로 20층까지 내려가며 환기구와 우물 곡물창고 등 필요한 것을 모두 갖추고 있다.
데린쿠유 일대에서 발견된 지하도시는 40개소에 이른다.
이 지하도시는 기독교인에 의해 넓혀진 것은 분명하지만 처음 만들어진 것은 신석기시대부터다. 이곳의 지반은 무른 응회암이어서 파내기는 쉽지만 일단 공기에 노출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는 특성이 있다.
변변한 도구 하나 없던 석기시대에 동굴을 팔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지반조건도 한 몫 했다. <관련사진 데린쿠유 지하도시와 내부>

 ① 데린쿠유 지하도시 그림 ② 데린쿠유 지하도시 내부 ③ NATM 터널공사 ④ 쉴드 TBM ⑤ 에우팔리노스 터널 ⑥ 고타르 터널(57km) ⑦ 라데팡스 복층지반 구성 ⑧ 베르발트할렌 콘서트홀 ⑨ CERN 입자가속터널 ⑩ 보령태안 해저터널 조감도

■ 현대, 지하공간의 패러다임 변화

도시문명이 시작된 이후 보편적인 주거는 지상이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햇빛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명은 물론이고 습기나 곰팡이와 같은 나쁜 균도 제거해주니 말이다.
닫힌 공간이라는 심리적인 문제도 지하공간을 회피해 온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 문제가 거의 해결된 지금 지하공간은 오히려 다양한 이점이 부각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적인 안정감이다.
기후나 온도가 수시로 바뀌는 외부와는 달리 지하공간에서는 필요에 따라 정밀하게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외선이나 전자파 먼지 소음 진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지하공간에 대한 패러다임도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
이전에는 산을 돌아가기 어려울 때만 불가피하게 터널을 뚫었다. 건물의 지하공간도 창고나 주차장 또는 기계실을 설치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점차 정적인 안정감과 환경적 잇점이 부각되면서 지하공간은 이제 주거나 휴식공간으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최근에는 공연장 경기장, 도서관, 연구소 등 다양한 시설도 지하공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도시철도와 빌딩의 지하층 연결, 지하 환승공간의 상업화도 중요한 변화로 꼽힌다. 지하 가로가 형성되어 유동인구가 늘면서 지하공간이 새로운 상업공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가 개별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거시적으로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파리의 신도시인 레알 프로젝트나 우리나라에서 짓고 있는 이라크와 베트남 신도시를 보면 지하와 지상의 구분은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 공간구축 기술의 눈부신 발전

땅을 파는 일은 이제 좀 쉬워졌다. 물론 쉽다는 것은 상대적인 말이다.
도구나 장비가 변변치 않던 과거에 지하공간을 구축하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덜 그렇다는 것이다. 터널공사장에는 중장비가 수시로 오가고 암을 파쇄하기 위한 발파나 충격 등 큰 힘을 사용하기 때문에 늘 사고 위험이 버티고 있다.
그러나 이전에 비하면 터널의 붕괴나 예상치 못한 변화 때문에 사람이 위험에 처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정밀한 탐사와 계측기술을 갖춘 현대의 지하공간을 살펴보면 아마도 인간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다시 생각하게 될 듯하다.
터널의 역사에서 화약이 사용된 1780년대가 고대와 근대를 가르는 기준이라면 NATM 공법과 쉴드(Shield) TBM 공법이 사용되기 시작한 1960년대는 근대와 현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NATM 공법은 암반 굴착 후 신속하게 뿜어 붙임 콘크리트를 쳐서 터널을 안정시키는 공법이다.
기존에는 모든 무게를 지보재로 받쳐 왔으나 암반의 거동을 정밀하게 분석함으로서 최소한의 지보재로도 더 안전한 터널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쉴드 TBM은 강력한 회전체로 암반을 갈아내면서 강제원통을 밀고 들어가는 전자동 굴착장비다. 뒤에는 터널 벽면에 콘크리트를 붙여 나가는 장치가 뒤따르면서 모든 터널작업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관련사진 쉴드 TBM>
근대까지는 암반강도나 공간규모가 터널공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NATM 공법과 쉴드 TBM 공법, 자재나 장비 기구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눈부신 발전이 이루어진 1960년대 이후에는 이에 연연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지금은 암반이 단단할수록 더 안정적인 굴착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강한 암반지대로 굴착계획을 잡는다.
제어 발파나 유압 또는 화학적 팽창압을 이용해 암반을 제거하는 기술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 덕분에 이제는 정거장이나 경기장 등 공간규모가 웬만큼 커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1990년대 이후로는 전자감응장치(Senser)를 이용한 정밀한 계측과 전산환경을 이용한 구조해석 프로그램이 지원되면서 설계와 시공에 있어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인 작업이 가능해졌다. <관련사진 NATM 터널공사>

■ 현대를 대표하는 터널과 지하공간

유로(Euro) 터널에는 최대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다. 이보다 길거나 먼저 지어진 해저터널도 여럿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대를 대표하는 터널로 유로터널을 꼽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200여 년에 걸친 역사성과 유럽연합의 탄생과 발맞추어 완공되었다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도보해협을 터널로 뚫으려는 계획은 18세기말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과 세계대전으로 지연되다가 결국 1993년에야 완공될 수 있었다.
유로터널 길이는 50km로 이중 해저구간은 37km다. 일본의 혼슈와 훗카이도를 잇는 세이칸 해저터널은 54km로 유로터널보다 길지만 해저구간은 23km로 짧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은 알프스 산맥을 관통하는 57km의 고타르 베이스 터널이다. 현대를 대표하는 이 터널들은 모두 NATM공법과 쉴드 TBM으로 건설되었다. <관련사진 공사중인 고타르 베이스 터널>
지하공간 구축에서 현대를 대표할 만한 시설은 1994년 노르웨이 요빅산에 만들어진 올림픽 하키경기장이다. 폭 61m, 길이 91m로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지하공간 중에서 가장 거대하다. 높이도 25m나 되어 전체 공간 규모가 13만㎡에 이른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경기장이라는 특성 때문에 내부 어디에도 기둥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둥 없이 이 정도의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NATM 설계기법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스웨덴의 베르발드할렌 콘서트홀은 외부 환경영향에서 벗어난 지하공간의 정적인 특성을 잘 활용한 문화시설이다.
혼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지하공연장으로 내려가면서 관객들이 느끼는 심리적 하강은 감동의 깊이를 더해주지 않겠는가. 공연장 면적은 9천㎡ 정도지만 지상으로부터 수직으로 파내려간 공간규모는 5만㎥에 이른다. <관련사진 베르발드할렌 콘서트홀>
프랑스의 라데팡스는 지하공간의 패러다임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신도시다. 라데팡스의 가로환경은 여러 층위를 가지도록 계획되었는데 아래쪽은 도시기반시설, 지상층은 녹지와 휴게공간으로 조성했다. 기존의 관점에서 보면 도시철도와 버스베이가 있는 아래층의 가로는 지하공간이 분명하다.
그러나 층간 개념을 전도시켜 지상에 도로가 있고 그 위에 인공지반을 조성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를테면 지상과 지하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빌딩처럼 가로도 여러 층위를 가진 구조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가로의 각 층위에서 자연채광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은 자연스럽다. <관련사진 라데팡스의 복층 지반구성>
터널이나 지하공간은 교통이나 주거 등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만들어진다. 예나 지금이나 땅을 파내는 것은 어렵고 돈도 많이 들어서 그에 걸맞는 이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 원자핵연구소(CERN)의 입자가속터널(LHC)은 실용적인 시설이 아니다.
미시세계에 대한 이해, 앎에 대한 순수한 추구가 바로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 터널은 외부의 미세한 영향까지 모두 차단하기 위해 지하 100m 깊이에 만들어졌다. 지름 8.5km 총 길이 27km에 이르는 원형 터널이다. 입자가속터널은 유럽 원자핵연구소 외에도 미국 텍사스의 초전도 입자가속터널, 시카고의 페르미랩 등이 있다. 규모면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모두 인류의 지성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지하공간임에 틀림없다. <관련사진 CERN 입자가속터널>


우면산 지하에 세계 최대 문화공연장 구축하는 설계 시행도
지상 추구에서 벗어나 지하공간만의 특징을 부각시켜야


■ 미래, 예측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미래의 지하공간은 어떻게 바뀔까. 사회 문화 경제 등 많은 변수 때문에 섣부른 예측은 자칫 공허해질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지구의 암반층, 다시 말해 지각의 두께가 30km에서 80km에 이른다는 것이다.
현재 인간의 손길이 닿은 깊이는 고작해야 1km 안쪽이다. 그러나 미래의 엔지니어들은 결국 사용할 수 있는 암반층은 모두 사용하게 될 것이다.
지하공간의 미래를 한 마디로 말하라면 ‘꿈의 전쟁시대’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지하공간은 늘 무한한 상상으로 북적거린다. 튜브식 진공터널로 전 지구 교통망을 구축하는 플라네트 런, 한·중·일을 해저로 연결하는 국가연결망, 아시아·유럽·아메리카를 잇는 해저터널, 수중도시 또는 지하도시 등 눈에 띄는 것만 들추어봐도 경계를 알 수 없는 상상의 범주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관련사진 보령태안 해저터널 조감도>
해저를 이용한 국가 간 교통망 구축은 아마도 현실의 세계로 가장 빨리 다가올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다. 오랜 세월동안 바다는 경계와 분리를 의미해 왔고 섬은 고립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바다는 열린 세계로 나가는 관문일 뿐이다.
한·중·일 해저터널은 삼국의 관심이 높은 프로젝트다.
지금까지는 섬나라인 일본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나 분단으로 인해 섬 아닌 섬에 갇혀 육로운송이 불가능한 우리나라도 사정이 급한 것은 마찬가지다.
자유무역협정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물류를 값비싼 항공과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해운에만 의지한다는 것은 여간 불리한 게 아니다.
현재 서해를 잇는 한·중 해저터널은 양국이 협조적인 관계에서 구체적인 조사와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현해탄을 잇는 한·일 해저터널은 정치·경제적 이해와 감정 대립으로 횡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보스포로스 해협터널은 이미 우리나라 기술진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지브롤터 해협,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잇는 베링해협도 멀지 않은 미래에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브롤터 해협은 14km 정도로 현대 터널기술을 고려하면 그리 어려울 게 없지만 영국 스페인 프랑스 모로코 등 여러 나라의 이해가 얽혀 착수가 지연되고 있다. 이 터널이 이어지면 낙후된 아프리카인의 삶의 질은 좀 더 향상될 수 있지 않을까.
베링해협은 간격이 90km 정도로 비교적 긴 편이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물류효과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을 듯하다. 지구에 마지막 남아있는 설원과 알레스카의 환경이 파괴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 우리나라 지하공간의 미래

미래 지하공간 계획에 있어 우리나라는 유리한 점이 많다. 세계적인 암반굴착 기술을 갖추고 있고 대규모 지하공간 구축경험도 충분하다.
일부 석회암 지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화강암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진우려도 적어 안정적인 지하공간 구축에 유리하다.
특히 도심 주변에 산이 많은 서울은 구지 지하로 들어가지 않고도 평지 수준에서 산을 이용한 지하공간을 구축할 수 있다. 일례로 대학과 기업이 함께 참여한 지하대공간 연구단에서는 우면산 지하에 세계최대 문화공연장을 구축하는 설계를 시행한 바 있다.
비록 가상 프로젝트였지만 미래 지하공간 구축을 위한 기술적 가능성과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인구의 도시집중이 심하다.
국토면적의 0.6%에 불과한 서울에 20%가 넘는 사람이 모여 사니 말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지하공간의 활용은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불가피한 선택이다. 대심도 지하도로망, 배수터널을 이용한 재해방지 등 지하공간 중심의 도시계획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공간계획의 관점은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개방감을 확보하거나 조명 환기를 통해 어떻게 하면 ‘지상과 다르지 않은 지하’를 구축하는가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지상에의 추구에서 벗어나 지하공간만의 특징을 부각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지하공간 활용이 늘어나면 식물과 동물에게 조금 더 넉넉한 공간을 되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수처리장 위를 덮어 녹지공간을 조성한 탄천물재생텐터, 강의실을 지하에 두고 지상을 공원으로 만든 이화여대 캠퍼스, 도시기반시설을 지하로 내리고 지상은 푸른 나무로 채운 라데팡스처럼 말이다.
이렇게 생태환경을 복원시켜나가는 것은 대지를 여신의 몸으로 생각한 고대인의 겸허함과도 맥을 같이한다.
오랜 세월 지상과 지하는 문명을 이끌어 온 2개의 중심축이었다. 따라서 지하공간을 지상의 보조적 공간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자연에 깃들어 있는 순환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건설신문 김덕수 기자 ks@conslo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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