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질’과 건설·기술업계 정당한 권리보호
‘甲질’과 건설·기술업계 정당한 권리보호
  • 고 상 진 소장
  • 승인 2015.03.18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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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공공건설시장에서는 국어사전에 없는‘甲질’이라는 말이 각종 매체에 언급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잇따라 발주기관의 불공정 관행 즉 ‘甲질’에 대해서 과징금을 부과함에 따라 갑으로 불리 우는 발주처들이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는 기사들도 볼 수 있다.
2014년 말에는 서울시와 대한건설협회 서울특별시회, 한국건설기술관리협회가 공동 주최한‘갑(甲)ㆍ을(乙) 상생발전을 위한 ‘을(乙)’의 항변대회’가 열려 시공업체와 감리업체 등 건설 현장의 을이 느끼는 갑의 부당 행위와 이 때문에 겪었던 억울함을 쏟아내는 성토의 장이 마련되기도 했다.
과연‘甲질’이라는 흉흉하기까지 한 말의 뜻은 무엇일까?
국가계약법 및 지방계약법에서는 “계약은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체결되어야 하며, 당사자는 계약의 내용을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이행하여야 한다”라고 계약원칙을 천명하고 있으며, 계약서에 첨부되는 계약예규 ‘공사계약일반조건’에서는 “발주처가 정하는 공사계약특수조건에 국가계약법령, 공사 관계법령 및 이 조건에 의한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제한하는 내용이 있는 경우에 특수조건의 해당 내용은 효력이 인정되지 아니하며, 구두에 의한 통지·신청·청구·요구·회신·승인 또는 지시는 문서로 보완되어야 효력이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甲질’의 정의에 대하여는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살펴 보건데 바로 국가계약법령 및 계약예규에서 천명하고 있는 계약의 기본원칙 및 기준에 따라 보호되어야 할 계약상대자의 권리가 발주처에 의해서 무시되고, 이에 따라 그 손해를 고스란히 계약상대자가 짊어지는 현실이 아닌가 한다.
계약당사자간에 기본이 되어야 할 신의성실의 원칙이 무너지고,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제한하는 특수조건이 지속적으로 지탄을 받으면서도 버젓이 유지되며, 계약상대자가 접수하는 문서에 대한 발주처의 신중한 검토· 회신이 아닌 문서자체를 제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차가운 얼음장과 제출된 문서에 대한 친절한(?) 반려행위, 이것이 우리가 국어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甲질’이란 행태이다.
‘甲질’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발주처의 계약담당자 등도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현재와 같은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동안 개발도상국의 특성상 우리나라 건설시장을 이끌어온 공공 건설분야 발주처의 악습이고 공사수주에 따른 이윤창출이 가능했던 시기에 건설업계의 양보의 미덕(?)이 낳은 산물이다.
작금은 실적공사비제도 도입, 최저가입찰에 따른 저가수주 등으로 건설업계는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처지에 도달한 느낌이다.
최근 정부는 ‘종합심사낙찰제’를 도입해 2014년부터 시범적으로 운용하고 있는데, 그 핵심에는 과거 수행한 공사의 품질을 평가하는 ‘시공평가’항목이 있다.
계약당사자간에 기본이 되어야 할 신의성실의 원칙이 지켜지고,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제한하는 특수조건을 정할 수 없도록 하며, 계약상대자는 자신의 의사를 문서로 자유롭게 제출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지 못하면 ‘시공평가’항목은 다시 한 번 건설업계를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내몰 것이 확실하다.
정부는 새로운 평가 패러다임 시행에 앞서 계약문화를 선진화하여야 하는 것이 시급하다.
한편 ‘甲질’에 피해를 입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건설업체 관계자 들을 상담하다 보면 발주처로부터 “소송을 통해 받아가라”라는 말을 들었다는 애기를 자주 듣게 된다.
그 이면에는 계약금액을 조정할 예산이 없는데 소송을 통해 판결이 내려지면 후속조치로 예산을 받아 지급하겠다는 언급도 있었다고 한다.
소송은 계약당사자 중 피해를 입은 계약자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송의 특성상 단기간 안에 최종판결을 구하기가 어려우며 영세한 건설업체는 소송비용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가계약법, 지방계약법 및 민간투자법에서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여 조정안건을 심의하고 있다.
조정제도는 소송을 대신하는 분쟁해결방안으로 대체적 분쟁해결제도(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 ADR) 중의 하나이다. 조정청구를 위해서는 1차적으로 발주처의 소속중앙관서 장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동 기간을 포함하여 조정결과가 나오기 까지는 60일에서 100일 정도 소요된다.
그 대상으로는 국가계약법령에서는 70억원 이상 공사, 지방계약법령에서는 30억원 이상 공사를 대상으로 계약금액 조정에 관한 조정신청이 가능하며, 민간투자법에서는 금액과 관계없이 조정신청이 가능하다. 청구인은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정부는 ‘甲질’을 근절하기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건설업체에 대하여는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분쟁조정에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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