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효상, “우리 모두의 수도원을 위한 가구”
승효상, “우리 모두의 수도원을 위한 가구”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4.11.10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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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리 속에 스민 물성의 아름다움과 건축의 본질

▲ 건축가 승효상 / 이로재건축
◇이로재 25주년 기념 가구전에 앞서 = ‘가구’라는 한글도 그렇지만 한자 ‘家具’도 글자의 꼴이 무척 구성적이어서 건축의 본질적 속성과 다름이 없다.

건축의 영어단어인 archit ecture는 arch와 tecture가 합해서 만들어진 단어인데, 으뜸이라는 뜻의 arch는 건축이 가진 지위를 나타낸다면, tect는 그 속성을 일컫는 것이다.

tecture는 그리스 어의 tecton에서 비롯한 것으로, 이는 축조해서 어떤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어떤 부재들을 가지고 꿰맞추어서 원하는 결과물을 만드는게 건축의 본 뜻일진데, 가구야말로 건축의 본질에 가장 부합하는 도구일 수 있다.

물론 대량 소비사회인 지금 축조가 아니라 금형으로 찍어서 만드는 가구도 있긴 하지만, 가구의 큰 아름다움은 여전히 시간의 흐름 속에 이루어지는 제작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이다. 따라서 건축가가 만드는 가구는 그런 본질적 속성을 이해하고 그 절차에 대한 예를 갖춰서 만드는 게 옳은 것이라고 믿는다. 그게 결구의 아름다움이다.

‘이로재’라는 이름으로 건축을 한지 4반세기가 된 올해를 이 가구전으로 기념하기로 했다.
이 전시회에 선보이는 가구들의 일부는 오래 전부터 내 건축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그 건축 속에 사용했던 것이지만, 이 전시회를 위해 가상의 주제를 걸었다. 수도원이다.

사실은 지금 설계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의 기능은 달라도 내 디자인 속에는 늘 수도원적 요소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수도원장의 책상과 의자, 수도사들을 위한 식탁(물론 다른 누구도 사용할 수 있다), 평신자들을 위한 장의자, 승방탁자라는 이름을 일일이 붙여 모았다. ‘우리 모두의 수도원’에 들어갈 수 있는 가구들이다.

이들의 재료는 모두 목재다. 목재는 목리 속에 스며있는 목향이 그 물성의 아름다움을 짙게 각인시키는 재료이며, tecton을 이루기 위해 완벽한 자재이다.

더불어서 동숭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구들도 빌려와 경건한 공간을 조성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수도원을 밝히는 조명등, 승방을 여는 문고리도 상상할 수 있어, 오래 전에 디자인한 것들을 선택해서 모았다.
이 가구들의 실현을 위해 내가 아는 한 가장 장인적 기질을 가진 분들에게 제작을 의뢰했다. 박태홍, 조화신, 최홍규 그리고 윤병천 선생은 우리 시대가 감사하고 아껴야 할 마스터들이다. 모자라는 디자인을 이분들의 놀랍기 그지없는 숙련의 힘으로 모두 극복했다.

이 전시회가 한 건축가의 못난 기예를 선보이는 자리로 오인될까 몹시 망설였다.
그럼에도 굳이 전시를 하는 이유는 이로재 창립25주년이라는 기회를 넘어서, 가구로써도 건축의 본질을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컸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이 전시회를 위해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빚을 졌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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