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지도제작자(land mapper)의 사명
[특별기고] 지도제작자(land mapper)의 사명
  • 조의섭 부사장
  • 승인 2014.10.2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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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맥락이 있는 장소성의 재현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노하우가 융합돼 새로운 도시, 인프라, 건축물 등 영역을 새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의 인공위성사진은 도면상의 다양한 레이어의 선들이 중첩돼 도시의 길이 되고 마을이 되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즉, 지금까지 우리가 대지 위에 설계하고 시공했던 자국들이 고스란히 지도에 남겨진다는 의미에서 조경 설계가(landscape designer)는 새로운 지도 제작자(land mapper)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지도제작자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단지를 만드는 일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도제작과정에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점이 있다.
신도시민에게 편리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여유로운 녹지공간을 제공하지만 지역주민에게 정겹지 못한 즉, 역사성과 지역성이 결여된 단지 형태와 구조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 지역만의 이야기를 찾아서 이를 다양한 시설에 스며들게 하고 전통적인 문화의 맥이 단절되지 않도록 교량역할을 하는 전문가로서의 문화발굴자(culture finder)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 지역의 문화를 발굴, 계승하는 것은 개발로 훼손될 수 있는 향토유적의 적극보전 등 물리적인 계획에서 과거부터 전해오는 이야기거리를 새로운 도시 이주자에게 전해 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큰 이야기 혹은 오래된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작고 소소하고 가까운 과거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낯설지 않다. 역사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할아버지 무릎에 누워 듣는 이야기이다. 설계과정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발굴, 계승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슈퍼느티나무 이야기
동탄2신도시의 중앙공원은 신도시 개발전 청계리라는 맑은 물이 흐르는 마을이었다.
처음 만난 이곳은 신도시 개발로 인해 주변 마을은 모두 철거되고, 부지정지 중이어서 마을 입구를 400년 동안 지켜온 느티나무 한그루만이 남겨져있었다.
우리는 옛 마을의 모습을 사진자료와 지역주민 인터뷰를 통한 발굴을 시작했다.
느티나무로부터 시작된 발굴은 마을 입구마당이야기, 사람들이야기로 번져나가 지금은 볼 수 없는 마을의 모습을 상상하고 또 공원내에 그 이야기들이 소심하게 새겨지고 있다.
슈퍼느티나무로 설계가가 명명한 나무는 중안공원의 테마가 돼 공원디자인의 랜드마크로써 골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과거 거주자 마을의 애환을 모두 담은 소소한 이야기로 새로운 입주자의 미래 추억을 연결하는 고리가 될 것이다.

■감천모래톱 속 북한군탱크
고향의 강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한 김천시를 가로지르는 감천이란 하천은 모래톱이 유명한 곳이다. 한국전쟁때 격전지였던 김천은 북한군이 내려와 점령했던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역주민 인터뷰 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굴했다. 감천 모래톱에 북한군이 철수할 때 버리고 간 탱크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 형태를 알 수 없지만 80년대 국방부에서 탱크 찾겠다고 한바탕 소동을 피운 일이 있는걸 보면 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지금은 비록 탱크가 묻힌 곳으로 예측되는 지점에 이야기를 알리는 표지판만 설치돼 있지만 나름 마을의 이야기가 담긴 명소로 탄생됐다.
조경설계가 들은 앞으로 후손 들이 영위한 토지의 지도제작자로서 현장조사에서 인지한 과거이야기의 맥을 이어 줄 수 있는 시도를 해야 한다.
조사 및 인터뷰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계획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이야기로 끝나기도 하지만 입주자들에게 지역이 가진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여지를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구상단계에서 의욕적으로 발굴한 과거의 이야기가 스토리텔링 과정을 거쳐 실시설계에 구체화될 수 있도록 설계과정 내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개발은 새로운 입주민에게 편리한 도시를 만들어주는 것 외에 지역성의 발굴을 통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 마을 그리고 사람이야기를 들여 주는 것도 포함돼야 하며 그 것이 곧 새로운 지도를 만드는 설계가로서의 책임감이기도 하다.
동부엔지니어링(주) 조경부는 문화컨텐츠 개발을 위한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도시, 공원, 하천내(택지개발사업, 고향의 강 사업, 한강 생태복원 계획, 스토리텔링 계획 등) 사라지게 되는 이야기를 찾아서 지도에 불어 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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