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해성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소장
제해성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소장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4.07.16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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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서비스산업 발전의 핵심은 ‘설계도서의 품질’이다

“건축서비스산업 발전의 핵심은 ‘설계도서의 품질’ 이다”
 - 사전기획업무 및 사후설계관리 정착을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


[창간27주년 기념]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제해성 소장 

국가계약법상 수의시담제도 폐지하고 설계대가 개선해야
◇우리가 사는 집, 일하는 건물, 주변 도시환경이 만족스러운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도 우리 건축과 도시공간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미흡하고 심지어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낮은 국가의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의견들이 있다. 최고의 기술력으로 세계적인 극찬을 받고 있는 우리 건설 산업의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국 건축문화의 수준이 평가절하되고 있는 실정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리 건축생산시스템의 혁신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건축문화의 가치는 일차적으로 건축물의 성능, 품질, 품격이 바탕이 된다. 안전하고 오래가며 아름다운 건축물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건설 산업과 함께 건축서비스산업이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건축서비스산업은 붕괴 위기에 처해있다.

잘 조직된 건설 산업의 인력과는 달리 건축물을 계획하고 관리하는 건축서비스산업의 인력은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건축물의 성능, 품질, 품격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떠돌 뿐 건축현장에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건축서비스산업은 설계도서가 핵심성과품이다= 건축서비스산업이란 건축설계, 감리, 엔지니어링 등 건축과정에 개입되는 무형의 서비스업을 말한다. 건축서비스산업의 첫 번째 성과품은 설계도서이다. 건축설계란 공사 이전에 책상에서 가상으로 집을 지어보는 작업인데, 그 결과물이 설계도서이다. 설계가 만족스러우면 실제로 땅 위에서 설계도서대로 공사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설계도서의 완성도는 건축물의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건축 설계도서에는 건축물의 공간이나 형태뿐만 아니라, 구조, 전기, 기계, 통신, 방재, 에너지 등 수많은 분야의 전문적 식견이 반영되고, 견적, 재료, 시공 등의 복잡한 자료들이 포함된다. 즉, 건축사와 엔지니어의 협업이 필요하고 이에 따른 막대한 자원과 인력이 소요되는 결과물인 것이다. 이 협업방식의 절차와 비용을 효율적으로 개선해 설계도서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우리 건축문화의 가치를 높이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발효… ‘사전기획업무’ 블루오션
공사 감리제도와 별도로 ‘사후 설계관리제도’ 도입해야
국가계약법상 수의시담제도 폐지하고 설계대가 개선해야


◇설계도서를 작성하는 건축사와 엔지니어들의 낮은 대가기준=
현재 설계용역은 건축사에게 일괄 발주되며, 건축사가 다시 엔지니어링 분야와 하도급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엔지니어들은 분리발주를 통해 전문성을 보장받길 원하지만, 건축사들은 설계대가의 상향조절을 통해 하도급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분리발주 방식이 도입될 경우, 발주자는 설계관리능력을 갖추거나 별도의 설계관리용역을 발주해 설계과정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시공단계에서도 공사를 공종별로 분리발주하고 건설관리용역으로 총괄하는 사례가 많다. 분명한 사실은 일괄발주든 분리발주든 엔지니어들이 충분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은 건축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전체 공사비에서 매우 낮은 비중을 차지하는 설계용역의 대가는 작업내용과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책정되는 경우가 많고, 이에 따라 투입되는 서비스의 총량이 한계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성능과 품질이 보장되지 않는 저급의 설계도서 작성과 이에 따른 부실한 건축물 탄생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포괄적 설계대가 기준보다는 업무행위마다 적절한 전문가와 대가를 투입하는 방식으로 대가제도를 개선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설계도서의 품질 보장을 위한 사전 설계관리 제도= 설계도서의 성패는 건축기획과정의 충실함에 달려있다. 물건을 구입할 사람이 어떤 물건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표현해야 합리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건축설계 발주자가 필요한 건축 목적, 성능, 품질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건축물의 복잡한 여건 상 발주자가 전문성을 가지고 원하는 바를 소통하기가 매우 어렵다. 때문에 큰 규모의 건축 사업에서는 이를 대행하는 사전기획업무가 필요할 수 있다.

사전기획업무는 쉽게 말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업무로서, 발주자를 대신해서 설계용역과 공사과정에서 필요한 역할들을 사전에 구체화하고 예산투입의 적정성을 살피는 건축서비스산업의 새로운 블루오션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발효되면서, 일정 규모의 공공건축물을 발주할 때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소정의 절차에 따라 ‘국가 공공건축 지원센터’의 검토를 받도록 의무화됐다.
이는 호화청사, 비효율 예산집행, 에너지 낭비, 디자인 품격저하 등의 논란을 해소하는데 일조할 것이다. 적어도 공공건축물에 한해서는 사전기획의 충실함을 검토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으며, 이것이 기획부진, 설계미흡, 공사부실이라는 건축 산업의 오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데 기여하길 기대하고 있다.

사전기획업무의 내용은 반드시 설계도서로 구현돼야 한다. 건축사와 엔지니어는 설계도서에 명기된 건축물의 성능과 품질을 책임져야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배상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설계도서의 품질이 검증되고 보증되는 또 하나의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사전기획업무와 짝을 이루는 설계감리제도가 그것이다.

설계감리제도는 설계내용이 발주지침이나 각종 기준에 적합하게 진행되는지를 감시하는 절차로서, 설계단계에서 견적과 공사분야 전문가를 조속히 투입해, 설계도서의 예측가능성을 극대화하고 성능과 품질을 보장하는 지름길이 된다.

◇끝까지 책임을 지는 사후 설계관리 제도= 그러나 설계도서가 일단 완성된 이후에도 수많은 설계변경 요인이 등장하며, 공사현장에서 판단해야 하는 세부적인 의사결정사항이 생겨난다. 설계변경은 주변여건이나 발주자의 상황변화로 인해 설계 서비스가 추가로 필요한 경우인데 공사 착수 전에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규모 사업인 경우에는 공사 중에 지속적으로 발생하곤 한다.

이때 설계자는 적정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추가 용역을 수행하는 것이 관례화 되어 있다. 따라서 좋은 설계도면을 가지고도 좋은 건축물이 완성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더구나 공사 중에 발생하는 각종 세부 디자인 결정과정에서 설계도서 작성자의 의견이 개진될 창구가 없기 때문에 불합리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처럼 공사 중 발생하는 설계변경과 디자인 결정을 포함하는 사후 설계관리제도가 도입돼야 설계자가 끝까지 책임을 질 수 있다.
혹자는 공사감리제도로 이를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사감리는 설계도서와 공사내용의 상이함을 지적하고 감시하는 제도로서, 사후 설계관리와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업무이다.

설계관리의 담당자는 스포츠 경기로 치면 선수에 해당하는 자로서 심판에 해당하는 공사감리자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공사감리자가 설계관리자를 겸하는 것은 선수가 심판을 보는 격이 된다. 공사감리제도와는 별도로 사후 설계관리제도가 도입되고, 이에 대한 정당한 대가 지급의 관행이 정착돼야 하는 이유이다.

◇건축물 설계대가 개선을 위한 전제= 건축사와 엔지니어들의 설계대가 개선요구가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들에게 좋은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설명하고 그 과정에서 건축서비스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미흡한 설계와 부실한 공사의 상관관계가 설계도서를 중심으로 하는 건축서비스산업의 열악한 실정에서 비롯하고 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제대로 된 성능과 품질, 품격을 갖춘 건축물을 보장받기 위해서 설계대가 수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건이 설계도서의 품질을 보장하고 사후 설계관리가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이다. 설계대가의 개선은 그에 걸맞은 건축물의 성능과 품질이 달성될 수 있을 때에만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국가계약법’의 수의시담 제도가 정비될 필요가 있다. 수의시담 제도는 수의계약 전에 입찰 담당자와 계약 당사자간의 가격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설계공모의 당선자는 시담결과에 따라 설계대가 기준보다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계약서에 서명하는 경우도 많다.

‘지방계약법’이 설계공모 당선자를 낙찰자로 규정하고 수의시담 과정을 생략한 채 대가기준에 의해 계약을 처리하는 방식을 참고해서 시정할 수 있다. 이밖에 그동안 건축설계 및 서비스산업의 수준을 바닥으로 내몰았던 설계용역 최저가 낙찰제도는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의 발효에 따라 어느 정도 정비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다행스런 일이다.


한국건설신문 이오주은 기자 yoje@conslo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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