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에너지관리시스템,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제언] 에너지관리시스템,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 이태원 박사
  • 승인 2014.07.0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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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박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제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고 있다. 이미 지난 5월 말 대구지역 낮 최고기온이 섭씨 37도를 웃돌아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7년 동기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는 무더위 걱정을 좀 덜어도 될 듯하다. 올 여름엔 새로 지은 발전소와 정지됐던 원전의 가동으로 전력난 발생 가능성이 낮다며 정부가 강제 절전조치를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전력부족으로 경보가 수시로 발령되고 냉방기는 물론 조명조차 꺼야 했던 작년을 생각하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전력수급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 것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이 공급능력을 늘리거나 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전자는 경제적, 환경적 측면에서 많은 손실이 따르므로 논외로 하면, 결국 수요를 줄여야 하는데 그 방법이 막막하다. 진단을 하지 않고는 처방을 얘기할 수 없다.
반대로 진단을 하면 처방이 나온다. 전기를 어디에서 언제 얼마나 쓰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일정 기간의 사용량 관리는 물론, 경보가 발령되는 비상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대책을 미리 마련해 대응할 수도 있다. 시행결과에 대한 사후평가도 물론 가능하다.
진단을 통한 맞춤형 수요관리도 가능하다. 전력이 부족할 때는 불요불급한 수요를 억제해서 꼭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분야에 그 소비를 양보하게 할 수 있다.
요즘 같은 혹한기에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전력소비를 줄이고 난방을 수행함으로써 실내 환경을 쾌적하게 함은 물론, 업무능률과 생산성 향상을 꾀할 수도 있다.
건물에서 주먹구구식 소비가 아닌 계획적인 전력소비가 가능해지므로 지금과 같은 획일적인 수요관리 수준도 한층 향상될 것이 분명하다. 수요를 줄임으로써 에너지를 절약함과 동시에 생산시설을 늘리지 않아도 된다.
최근 정부는 국무회의(2013.05.28)와 대구 세계에너지총회(2013.10.16.) 그리고 녹색기후기금 사무국 출범식(2013.12.04.)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에너지관리시스템(EMS, Energy Management System)에 대한 기술개발 투자와 보급 확대를 천명한 바 있다.
에너지관리시스템은 전력 등 에너지 수요관리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에겐 아직 만족할만한 EMS가 없다. 또 기술수준도 크게 낙후되어 있는 실정이다. 예로써 건물에 적용되는 EMS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건물자동화시스템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20% 수준에 불과하다.
에너지관리시스템은 의료시스템에 비유될 수 있다. 우리는 몸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에 간다. 발병 여부에 대한 의사의 본격적인 진료에 앞서 체온, 혈압, 맥박 등 간단한 사전 진단을 받는다. 이후 의사의 문진과 진찰에 이어 필요시 혈액검사나 방사선 촬영 등 추가적인 정밀진단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분석결과를 종합해서 의사는 환자의 발병여부와 상태에 대한 최종 판단을 하게 되며, 그에 따라 처방전을 주거나 주사 또는 수술을 권유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건강검진과 같은 수시 또는 상시진단을 받는 것도 일상화되어 있다.
에너지관리시스템도 같은 과정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먼저 건물의 경우를 예로 들면, 어떤 설비나 장치에 이상이 생기면 건물 운영자는 제조회사 등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연락한다.
그 전문가는 먼저 설비나 장치의 운전기록을 확인하고 운전 상태에 대한 얘기를 듣기도 하며 간단한 측정을 하기도 한다. 또 필요시 보다 정밀하고 복잡한 진단을 하기도 한다.
분석 및 진단결과에 따라 전문가는 운전이나 운영방법의 개선과 같은 간단한 조치를 하거나, 일부 부품의 교체 또는 대대적인 개보수를 권유하기도 한다.
건물 이외의 가정이나 공장 또는 상가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문의에 따라 진료과목이 다르듯이 대상으로 하는 적용분야가 다를 뿐이다.
하지만 의료분야와 에너지관리분야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의료분야는 환자나 질병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전문의가 있는 반면, 에너지관리를 위한 전문가는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미 분야별로 다양한 자동화시스템이 보급되어 있음에도 에너지관리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에너지관리시스템은 기존 자동화시스템에 의료분야의 전문의에 해당하는 전문가의 경험과 노하우가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국내 건물에서는 경비와 청소 등의 분야와 함께 시설 관리업무도 전문 업체에 위탁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여기에 최저가 입찰제도의 적용으로 상대적으로 저급인력이 관리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에너지관리를 포함하여 만족할 만한 관리품질을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운전결과와 경험이 축적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을 고려하면 의료분야의 임상경험이 많은 전문의의 경험과 노하우에 해당되는 다양한 관리정보를 규칙화해 기존 자동화시스템에 추가한 에너지관리시스템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
우리는 이미 세계수준의 정보화 분야 하드웨어 기술과 통신기술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각 분야의 에너지관리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결합시킨다면 매우 우수한 에너지관리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에너지관리시스템은 건물과 가정, 공장 또는 상가 등에서 국민의 불편을 초래하거나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에너지 수요관리를 위한 합리적인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산업화 이후 효자산업 역할을 해온 국내 에너지 다소비 산업을 대체하는 국가 신성장동력의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 산업발전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는 에너지관리시스템에 대한 성급한 기대나 무리한 도입 시도는 자제되어야 한다. 도입효과나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는 제품의 보급은 결국 수요자의 실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핵심기술임에도 낙후된 분야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 또 충분한 운전·운영 자료를 수집하여 지식정보화 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하고, 계측제어, 전자통신, 기계전기, 운영관리 및 데이터관리 등 관련 분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도 구축되어야 한다. 에너지관리시스템에 대한 표준화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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