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재난에 대응하는 것은 재난전문가의 몫”
[특별기고] “재난에 대응하는 것은 재난전문가의 몫”
  • 서치호 교수
  • 승인 2014.07.0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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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건설안전관리원(가칭)의 신설을 제언하며

정부 신설 ‘국가안전처’의 성패는 전문직 구성비율이 좌우
국내 재난 유형에 맞는 ‘한국형 재난방지시스템’ 구축해야

 

진도 앞바다 거친 물살을 따라 세월호가 기울어지면서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믿음이 함께 침몰해 가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다.
국민 모두가 안타깝게 지켜보는 바로 그 눈앞에서 서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던 세월호의 모습은, 타고 있는 이들에게는 절망이었고, 바라보는 이들에겐 아픔이었다.
어린 학생들의 피지 못한 꿈과 함께 자식의 무사함을 기원하던 부모의 간절한 소망도, 국민들의 한 가닥 희망도 끝내 무너져 내렸다. 세월호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기나긴 구조작업의 시간만큼 우리 사회에 깊고도 아픈 흔적을 진하게 남겼다.
세월호 사고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충남 아산의 한 오피스텔에 문제가 발생했다. 두 개의 건물 중 한 동이 옆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이 건물은 결국 철거작업 도중 붕괴되고 말았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건축물의 붕괴에 따른 재난이 우리 주위에도 늘 발생할 수 있다는 국민적 우려를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우리는 그동안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등 끔찍한 대형사고를 수없이 겪었으면서도 제대로 된 재난관리체계를 고민하지도 못했고 만들어 내지도 못했다는 가슴 시린 자성을 해야만 한다.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사회적 관심과 국민적 요구가 최고조에 달해 있는 지금이 재난관리에 대한 근본대책을 세워야 만하는 당위성이 재차 강조되는 시점이라 하겠다.
정부는 이 중요한 과제 앞에 결코 서두르지 말고 선진국들의 재난관리시스템과 우리나라의 현실적 여건을 깊이 있게 연구, 검토해서 다시는 국가적 불행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회가 발달할수록 재해율이나 사고율 자체는 서서히 감소되는 현상을 보인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거시적인 지표로 보면 거의 모든 부문에서 재해율이나 사망률, 사고율은 감소하는 추세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년 대비 6.5% 감소하고 풍수해ㆍ대설ㆍ재산피해가 지난 10년 평균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는 전체 사망 중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 비율이 1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안전시스템의 작동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수준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이런 안전요구 수준이 올라가는 것만큼 안전인프라의 안전수준은 이에 못 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후설비화의 증가와 안전시스템의 취약, 사회시스템의 비정규직화, 외주화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사회 안전망이 허약해진 결과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가안전처의 신설을 계획하면서 미국의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기본 모델로 조직체계를 편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FEMA는 28개 연방정부 기관은 물론 적십자 등 민간기구까지 총괄하는 재난ㆍ재해 담당 독립기관으로 모든 사고 수습 가이드와 지원체계를 마련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많은 전문가들도 부처 간 역할 조정과 민관군의 체계화되고 유기적인 협력을 끌어내는 강력한 조직기구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FEMA는 자연재난이 많이 발생하는 미국에 맞는 시스템이다. 계절적인 자연 재난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인적, 사회적 재난이 발생하는 빈도가 훨씬 높은 우리나라에서도 적절한 시스템인지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단순히 선진국의 시스템을 무조건적으로 도입할 것이 아니라 국내의 재난유형에 따른 한국적 재난방지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정부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국가안전처의 성패는 전문직의 구성 비율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안전행정부는 지난 해 공무원임용령 개정을 통해 방재안전직 공무원을 신설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가직 방재안전전문공무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지자체에서도 대전시가 하위직급으로 몇 사람을 충원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안전처가 국가재난안전전문기관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자리매김하려면 국가안전처의 대다수를 각 분야별 방재안전직 등 전문직 공무원으로 충원해야 한다. 기술직은 물론 행정직도 방재안전직으로 전직해 국가의 재난안전분야에 전념하는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해당 공무원에게 주어진 업무에 합당한 역할이 요구되며, 교육ㆍ훈련 등을 통한 공공ㆍ민간기관의 재난안전역량 제고돼야 한다. 학회ㆍ협회ㆍ대학ㆍ연구소 등에 재난안전교육시스템을 마련해 전문인력을 육성하고 이들을 통해 전문지식이 사회로 확산ㆍ전파되도록 해야 한다.
방재ㆍ위기관리와 관련된 예산을 증액해 재난유형별ㆍ상황별ㆍ규모별로 다양한 재난전개 시나리오에 의한 훈련과 지원 및 평가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9년 허드슨 강에 비상착륙한 비행기의 사례와 일본 아리아케오 여객선의 침몰사고에서 탑승객 전원이 무사히 구조된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진국들은 비교적 뛰어난 재난대응시스템을 보여주었다.
전문가들은 이들 국가의 사건 대응과 결과에 대해 안전에 대한 국민의식을 바탕으로 잘 갖춰진 재난대응시스템과 끊임없는 반복된 훈련에 따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이 끊임없이 다양한 재난에 대응해 반복된 훈련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난에 대응하는 것은 재난전문가의 몫이고 국민들은 재난전문가의 지시와 유도에 따라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피하는 것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즉 실질적인 재난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실행할 전문가를 양성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안전에 관한 변화양상은 새로운 체제로 돌입했으며 이제 안전은 과거와는 다른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건설분야의 경우는 사고의 형태나 규모에 있어서 파급력이 매우 크게 나타난다. 이러한 재해는 매년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고 경제적 피해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건설분야에 있어서도 적극적이고 건축물의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체계적인 재난방지시스템의 구축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건설분야의 재난방지를 위해서는 건축물과 시설물의 계획에서부터 설계, 시공, 사용 및 유지관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체계적인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점검하며, 대응할 수 있는 실행조직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따라서 가칭 국립건설안전관리원과 같은 건설분야의 실질적인 재난방지조직을 신설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건설재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재해의 예방과 대책의 수립, 복구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집행하는 중심조직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립건설안전관리원이 종합적인 건설안전책임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즉, 건설부문에서 재해와 관련된 업무를 총괄적으로 담당하고, 기술적으로 민간부분을 지도ㆍ감독하며, 프로젝트의 안전성을 검토·조정할 수 있는 고급인력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건축물과 시설물의 설계가 적정한 기준을 설정해 만들어졌는지, 시공계획의 내용이 적절한지 검토해야 하며, 시공과정에서 이를 확인해 유지관리에서 안전성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전문가 집단을 선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조직이 돼야 한다.
그리고 이에 더해 방재안전직렬의 실무인력을 결합시켜 명실상부한 건설재난방지 최고 대응기관으로 탄생시켜야 할 것이다.
여러 전문가들은 건설과 관련된 재난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관련 학회와 협회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수렴이 없었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국가 안전대책은 하향식 국가계획 성격을 띠고 있어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민간이 재난리스크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수혜자인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전 국민이 공감하는 상향식 안전대책 마련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체계화된 건설안전시스템의 구축과 실행조직의 형성은 건설안전을 위한 우리의 과제이자 정부를 향한 우리의 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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