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개발의 참된 바탕
도시 개발의 참된 바탕
  • 이주연 건축평론가
  • 승인 2013.02.2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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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중순 아시아 역사도시와 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해 활동하는 NGO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 초대되어 주제발표를 하고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다. ‘아시아 역사도시 보존 네트워크와 그 미래: 역사유산, 문화적 정체성 그리고 아시아의 역동성’을 주제로 열린 이 행사는 아시아의 10여개 나라 20여 NGO 단체 활동가들과 학자들이 참여한 심포지엄과 워크숍을 통해 각국의 역사도시 보존과 개발의 현황을 발표하고 각 지역이 안고 있는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 나라의 NGO 관계자들은 또 ‘아시아 헤리티지 네크워크’라는 연대 기구를 구성해 아시아의 역사문화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이루기로 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말레이시아 북부 페낭 섬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 참여하면서 나는 심포지엄 등 주요 프로그램이 지닌 이슈나 의미에 대해서는 물론이려니와 행사가 열린 도시가 지닌 매력에도 관심이 갔다. 흔히 ‘아시아의 진주’로 부르는 페낭은 열대의 자연 지형과 풍광을 자랑하는 휴양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안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지타운이라는 도시가 있다는 것이 관심거리였다.
페낭의 주도에 해당하는 조지타운은 근대시기 서구 열강의 아시아 진출,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占)이라는 국제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조성된 도시이다. 18세기 말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흔적이 잘 남아있는 조지타운은, 특히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만나 공존하는 장소적 특성을 살리고, 말레이 군도, 인도 그리고 중국의 문화 요소와 식민지배 시기의 유럽 도시의 요소가 고르게 융합되어 독특한 건축문화와 도시경관을 이루고 있는 점이 주목을 끌게 했다.
물론 이런 도시의 매력이 조성될 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어온 건 아니다. 이 지역 역시 20세기 도시변화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급속도로 불어온 도시의 현대화 바람에 대응해 1970년대 초반부터 도시보존을 위한 정책이 도입되기 시작해 도시의 변화가 공공보존 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에 대해 국제기구가 관심을 가지면서 국가적 보존 프로젝트가 조지타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30년 넘게 지속되어온 국가와 전문가 단체, 시민들의 이 같은 노력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만든 셈이다.
이쯤 되면 우리 같으면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상업적 선전과 유입 장치를 도시 곳곳에 설치해 둘 법한데 조지타운 어디를 가나 그런 장식은 찾아볼 수가 없다. 조지타운은 박제화된 세계문화유산이 아니라, 도시가 조성될 때부터 존재했던 주택들이 다양한 표정을 짓고 함께 모여 있는 그 모습 그대로의 일상이 담긴 활력을 간직하고 있는 생동하는 도시다. 지금도 도시 곳곳에서는 공사가 한창이다. 그렇다고 이른바 현대적 디자인과 공법을 동원한 고층건물을 짓는 공사가 아니다. 기존 건축물의 보존을 위한 보수 작업과 수명이 다한 낡은 건축의 재생 작업이 주를 이룬다. 불필요한 장식이나 겉치레가 덧붙여지지 않고 옛 흔적을 존중하는 재생과 개발 방식이다. 정부와 시민과 사업자가 보존과 개발의 현명한 지침을 지켜나가는 약속을 공유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그동안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도시질서를 지워 없애고 현대화된 새로운 도시로 바꾸는 것이 최선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오로지 개발만능의 도시정책을 펴왔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현대화와 발전이란 명분을 내세워 오랜 역사적 배경을 지닌 도시마저도 그 흔적을 지우고 새 도시를 만들기에 바빴다.
최근에 와서 그 기세는 다소 누그러져 보이긴 하지만 신도시로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욕심은 여전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 접하며, 말레이시아 페낭의 조지타운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 도시의 보존정책과 개발 양상이 우리가 안고 있는 역사도시의 현안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줄 수 없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보다 문화적으로 덜 성숙하다고 여겨온 동남아시아의 한 ‘관광지’가 지니고 있는 도시 풍경은, 최소한 도시가 지녀야 할 매력의 본질이 역사적 문화 환경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도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의 매력과 저력이 그 도시다움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그럴 만큼 성숙한 시민정신을 내세우려면 지금을 있게 한 역사적 시간의 켜가 이 시대에도 공존해야 한다는 인식을 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네 삶의 지혜가 담긴 우리다운 도시를 만들어가는 바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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