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축콜렉션(4)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현대건축콜렉션(4)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2.05.3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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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적 박물관_Narrative Museum’을 본다

 ▲ 사진제공_WISE건축(ⓒ김두호)

  "전쟁이 없어야만 우리 같은 사람이 또 생기지 않지, 전쟁이 있으면 우리 같은 사람 또 생기지 않으란 법 없어, 또 생겨…" - 길원옥 할머니
 

▲현상공모 당선시 제안.
본지는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에 관한 소식을 여러 차례 전해온 바 있어, 독자들에게는 이미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되었으리라 생각해, 프로젝트나 건축가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은 이 기사에서 생략하고, 대신 작가의 작품설명에 초점을 맞춘다.
이 프로젝트는 두 개의 특징으로 압축된다. 하나는 리모델링, 둘은 추모기념관이다.
건물의 용도 및 성격과 개연성 없는 평범한 2층짜리 단독주택을 위안부를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이미 역사적으로 정리된 이야기가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한ㆍ일 간에도, 국내에서도, 활화산처럼 여전히 살아있는 쟁점을 담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에 건축가는 많은 생각의 여지를 이 박물관 안에 남겼다.
즉, 지금의 우리와 그 때의 그분들(위안부)을 매개하는 방식에서, 추모관이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기념비적 공간이 아닌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서술적 공간을 제시했고, 시공 과정에 많은 난관이 있었음에도 초기 안을 상당부분 유지하면서 프로젝트를 마지막까지 완결했다.
그럼, 최근 가장 주목받는 신예건축가, WISE ARCHITECTURE의 장영철, 전숙희 씨로부터 사족 없는 담백한 작품 설명을 들어본다.@
 


▲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전경.

기부자의 벽, 작은 문, 쇄석길, 지하의 낮은 방, 들꽃언덕…
‘기억-추모-치유-기록’으로 이어지는 공간, 박물관 안팍에 시퀀스로 배치
 

근사한 진입구, 훤칠한 로비, 친절한 안내공간과 큼직한 전시실은 여기에 없다. 정확히는 뺏다.
성산동 주택가 깊숙이 자리 잡은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이라는 육중한 이름의 박물관은 일반 주택 대문보다 작은 문 하나만 외부로 열어두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큼직한 안내판 대신 안내자가 박물관 안팍을 같이 걸어주며 이야기해 준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은 실제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르고 전쟁 속으로 끌려들어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경험과 흡사하다.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100평 남짓의 30년 된 주택과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듯 무성히 자란 정원은 원래 계획됐던 박물관의 프로그램을 수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예산과 주차 확충 등 현실적인 문제와 맞물려 일정 규모 이상의 증축이 어려웠기 때문에, 기존 주택과 담장, 옹벽 사잇 공간들은 반외부 공간으로 부족한 공간을 채워주도록 했다.

▲ 2층 테라스에서 본 전벽돌 스크린 안면과 건식공법 디테일.

전돌벽 주택과 그것을 에워싼 전돌벽 스크린이 만들어내는 공간들은 작은 문을 통해 들어온 관람객들에게 내부와 외부를 교차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지명설계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11년 8월 둘째 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시민단체 참가자들, 어린 학생들이 어김없이 굳게 닫힌 일본대사관 문 앞에서 수요시위를 진행하고 있었다.

1시간이 넘도록 시위가 진행됐지만, 대사관의 폐쇄회로 카메라만이 시위를 주시할 뿐 아무런 반응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비지땀을 흘리며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과 붉은 벽에 굳게 닫힌 일본대사관의 모습을 보며, 작아도 큰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박물관을 세우고 싶었다. 그렇게 성미산 자락에 한 덩어리로 보이는 박물관이 그려졌다.

▲ 내부 전시공간 전경.
4만5천장의 전벽돌, 3만 글자가 새겨진 기부자벽, 20년간의 모금과 9년간의 산고 끝에 지난 5월5일 드디어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건식으로 벽돌 하나하나 짜서 만든 전벽돌 스크린의 뒷면을 이용해 만든 추모실에 박물관을 찾아온 이들의 헌화가 이어졌다.

역사를 직설적으로 재현해 놓은 많은 박물관들과 태생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이곳이 전쟁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한 피해자 할머니의 절규처럼 역사의 공부방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쓰이길 기대한다.  <글 / 와이즈건축> 
 

■크레딧 | 설계-와이즈건축 (이복기, 윤아람, 박지용, 권구현) / 협력설계-NDL건축사사무소(김종복) / 시공- ㈜이인시각 / 협력사- 오푸스펄 구조, 우림전기, 관덕설비, ㈜들과숲 / 조명자문 - ㈜이온에스엘디 / 건축사진- 김두호
■개요 | 위치-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39-13 / 대지면적-345.50㎡ㆍ연면적-308.24㎡/ 건폐율-41.87%ㆍ용적률-71.91% / 규모-지하1층ㆍ지상2층ㆍ높이 8.1m / 구조-연와조(RC) / 설계ㆍ공사기간-2011.7~2012.1ㆍ2012.1~2012.5 / 마감-전벽돌, 열연강판, 아연도금강판

 

▲ 시공 전<위>과 시공 후의 모습 비교.


<작가노트>

▲ 박물관의 내러티브를 설명하는 초기 스케치.

“예산 문제로 외벽에 테라코타로 새겨 만들려고 했던 기부자 벽돌담이 열연강판(제조과정에서 급속히 식혀 만들어 태생적으로 불에 그을린 흔적이 있는 철판)에 공업용 레이저마킹을 하게 됐고, 전시의 시작공간이었던 무명방(무명천으로 싸인 방)을 내·외부 공간 전이와 관리상의 문제로 전벽돌로 마감하게 됐다.
전시 여정의 마지막에 놓인 치유의 공간인 뜰은 원래 앞집을 가리기 위해 1.2m정도 들어 올리려 했으나, 다목적 공간이 협소한 박물관이 추모행사를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인지하기 어려운 정도의 높낮이 변화만 두고 야생화를 심어 편안히 올 갈 수 있게 했다.
초기 설계의도가 예산·공간상의 제약으로 수정된 부분이 있으나, 전반적인 설계 개념은 잘 유지된 듯하다.”

 ▲ 전숙희(좌)/장영철(우).

■장영철ㆍ전숙희 | 와이즈건축 공동대표. 장영철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졸업후 U.C. Berkeley에서 수학했고, 전숙희는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과 졸업후 Princeton University에서 수학했다. ‘2011년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으며, 주요작품으로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Y House>, <이상의 집 예술 프로젝트>, <모바일 갤러리>, <플레이 하우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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