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
성공적인 도시재생은 당연히 개발을 전제해
재생과 개발 공존하는 시스템 구축해야
건설 패러다임이 개발에서 재생으로 흐르고 있다. 그 첨예한 시험대가 서울시.
정비와 재생 중심의 박원순 정책은 새로운 동력으로, 국토부의 부동산 활성화 정책은 관성으로 건건이 충돌하고 있다. 반면, 국토부는 지난달 ‘도시재생법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6월에 19대 국회가 문을 열면 빠른 시일 내에 입법화하겠다는 의지다.
민간에서 시민단체와 전문가를 중심으로 추진돼 온 도시재생이 제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긍정적 측면과 우려의 측면이 공존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과연 토목건설과 부동산, 개발차익에 길이 든 한국의 정책ㆍ시장ㆍ문화가 이러한 변화를 건강하게 체득해낼 수 있을까.
이런 즈음에 박원순 시장이 도시정책 자문을 얻기 위해 영국에서 김정후 박사를 초청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촉망받는 건축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가 10년 전 영국으로 유학한 김박사는 ‘도시재생’을 주제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해 가을부터 런던대학 UCL 지리학과에서 유럽 및 아시아 도시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도시건축정책 전문가다.
인터뷰 요청이 많았지만 중복된 기사를 원치 않기에 본지와의 자리만 수락했다는 김정후 박사, 영국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 한 달간 빽빽한 방한 일정의 마지막 강연장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강의는 열정적이다. “우리가 배우려는 선진 도시가 좋은 도시계획가 및 건축가와 더불어 좋은 정책을 보유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책 전문가의 역할이 매우 소중하다”고 피력하면서.
도시를 폭넓게 이해하고 판단하기 위해 건축가이자 동시에 사회학자가 되었다는 김정후,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과거나 지금이나 ‘도시’라는 그에게 개발과 재생 사이에서 한국의 국토개발이 취해야 할 정책과 원칙을 들어본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현대 사회에서 좋은 도시는 좋은 도시계획가와 건축가 만에 의해 탄생할 수 없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책이다. 도시정책은 한마디로 디자이너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
- 10년 만에 한국에 왔다. 방한 목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영국에 온지 햇수로 10년이 되는 올 해를 시작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지난 10년 동안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 대해 연구에 주력했다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아시아를 연구하면서 동시에 유럽과 비교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다. 이러한 가운데 자연스럽게 한국의 도시 및 건축과 관련된 활동도 대폭 확대할 생각이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방문이다. 물론 연구, 자문, 강연 등과 관련해서 그 동안 많은 요청을 받았기에 이에 응한 측면도 크다.
- 한 달간 체류했다. 강연만 14개였다고.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지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일정들이었나, 다양한 교류가 있었을 텐데 어떤 시너지 효과를 보았는가. 한국에서 수행중인 프로젝트는?
서울시, 부산시, 인천시 등의 주요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무원 및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특강과 세미나 등을 진행했고, 이화여대, 인하대, 동국대, 배재대 등에서 특강을 했다. 건축저널 <와이드>의 주관으로 ‘유럽 도시건축 아카데미’를 설립해 첫 회를 운영했으며,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와 소통을 주제로 ‘도시건축 토크콘서트’(4월 18일,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도 개최했다.
지자체에서는 현재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바람직한 ‘도시재생’의 방향을 강조했고, 그에 합당한 사례를 설명하는데 주력했다. 반면에, 대학에서는 도시와 건축을 보다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하는 방식과 다양한 분야 간의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리고 유럽 도시건축 아카데미에서는 21세기 첫 10년 동안 유럽의 도시와 건축이 추구한 주요한 방향과 핵심 개념을 설명했다.
전국을 돌며 진행한 강연을 통해 정치인, 교수, 공무원, 연구원, 언론인, 출판인, 예술가, 건축가, 도시계획가, 행정가, 대학생 등 한 달 동안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서 생각을 나누었다. 비록 개별적으로 긴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도시 및 건축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
따라서 지금은 많은 숙제를 안고 돌아온 기분이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분명한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성과임에 틀림없다. 현재, 한국에서는 대한건설정책연구원과 함께 초고층건물을 위한 법규와 정책을 수립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몇몇 지자체가 진행 중인 해당 도시의 전략적 프로젝트의 자문도 하고 있다.
- 1990년대에 한국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건축 신진으로 두각을 나타내다가 영국 바쓰대학으로 유학해 건축학을 시작으로, 런던정경대학(LSE) 사회학과에서 도시재생에 대한 연구로 도시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도시정책전문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에서 영국으로, 디자이너에서 이론가로, 건축가에서 사회학자로, 각각의 선택에서 어떤 계기와 생각이 작용했던 것인지 독자들에게 자신의 소개에 겸해 들려 달라.
(촉망받는 건축 신진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1990년대 후반부터 2003년까지 한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친 것은 분명하다. 지금의 모습은 방법이 바뀌고 보기에 따라 다소 특이한 경로를 밟고 있지만, 내가 추구하는 본질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과거에나 지금이나 ‘도시’다.
따라서 언급한 각기 다른 직능은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이동함으로써 이전 것을 포기함이 아니고 두 가지를 모두 겸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건축가에서 사회학자로 변신한 것이 아니고 건축가이자 동시에 사회학자가 됐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처음 영국에 와서 바쓰대학 건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시작했다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런던정경대학 사회학과로 옮겨 도시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유는 도시를 폭넓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방식을 찾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지금도 진행형이라 할 수 있는데 작년 가을부터 런던대학 UCL의 지리학과에서 일하게 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믿건대 도시 및 건축에 대한 연구는 사회학, 지리학, 정치학, 경제학 등과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진행돼야 한다. 이는 다양한 분야 간의 교류와 더불어서 각기 다른 전문 분야를 아우르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고, 내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싶은 소망을 갖고 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좋은 도시는 좋은 도시계획가와 건축가 만에 의해서 탄생할 수 없다.
이에 못지않게 혹은 이보다 중요한 것이 정책이다. 정책은 한마디로 디자이너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가 배우려는 선진 도시가 좋은 도시계획가 및 건축가와 더불어 좋은 정책을 보유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고,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건축정책 전문가의 역할이 매우 소중하다.
- 런던대 UCL 지리학과에서 강의하며 정책 자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구체적으로 영국에서 김 박사의 활동 스코프는?
현재 강의는 ‘아시아 도시들의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Urban Development in Asian Cities)’과 ‘한국의 어바니즘(Korean Urbanism)’을 맡고 있고, 도시재생과 연관된 세 명의 석사 학생들의 논문을 지도한다.
강의의 경우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도시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려는 나의 의도가 담겨있다. 유럽에서 활동의 경우 학위 논문을 쓰면서 다져온 연구의 틀을 바탕으로 ‘도시재생’으로 집중하고 있다.
현재는 자문, 연구, 발표 등이 주를 이루지만 조만간 관련 디자인으로 활동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작년 가을에 ‘JHK Urban Research Lab’을 시작하면서 지금은 보다 전략적으로 다양한 유럽의 전문가들과 교류하고 도시건축 정책을 연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도시건축 실무와 이론, 건축, 도시, 사회학 등을 폭넓게 경험한 것이 나름의 경쟁력을 갖는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2007년 기점으로 세계인구 절반이 도시에 거주, 역사상 유례없는 일
이럴 때 도시의 합리적 개발 위한 도시건축 정책연구는 더욱 중요”
“한국, 압축성장 과정에서 도시개발에 대한 인식이 왜곡됐을 뿐
도시재생의 시행 자체가 성숙한 커뮤니티 문화를 성취하는 방법론”
“서울, 부산, 경기… 지난 10년간 도시건축 디자인에 관심 급증
그러나, 개별적 디자인에 치중해 정책과 개발의 불균형 초래”
- 한국의 공간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개발에서 재생으로. 그 첨예한 시험대가 서울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건설과 투자, 개발차익에 익숙한 것이 국내 실정에서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상당히 생경하다. 보다 피부에 와 닿게 도시재생을 설명한다면. 유럽에서는 개발논리와 재생의 가치가 대립하는 사례가 없었는가, 우리가 앞으로 밟아야 할 과정을 그들은 어떻게 걸어왔는가.
도시재생은 특정 도시만이 경험하거나 선택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정도와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전 세계 모든 도시가 겪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맥락을 포함해 새로운 요구가 지속적으로 등장함에 따라서 도시는 이를 적절히 수용하면서 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도시에 지속적인 생명력을 부여하는 작업이 도시재생이므로 이는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갖는다.
다만 현대 도시에서-특히 20세기 후반부터-도시재생이 더욱 중요하면서 동시에 어렵게 다가오는 이유는 앞서 지적한 도시가 수용해야 하는 가치의 종류와 방식이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단순히 안전하고, 편안하고, 깨끗한 도시 정도면 충분했던 반면에 지금은 이러한 사항들은 기본이고 삶의 질, 공공공간의 수준, 커뮤니티의 회복, 상징성의 추구, 지역 균형발전, 지속가능성 유도, 친환경, 경제적 경쟁력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화두들을 동시에 수용해야 한다.
‘개발(Development)’은 ‘재생(regeneration)’과 대립되는 가치가 아니다. 성공적인 도시재생은 당연히 개발을 전제로 하되 어떤 방식으로 개발을 접목하느냐가 관건일 따름이다. 우리나라에서 개발이라는 용어와 방식이 부정적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압축성장을 거치며 물리적 인프라를 확충하는데 집중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건설과 각종 개발 이윤이 극단적으로 편중됐기 때문이다.
더불어 비리가 끊이지 않음으로써 개발이 실질적으로 시민의 이익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수단으로 인식되지 못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도시재생을 상위의 가치로 설정하고 개발이 이를 뒷받침하는 방식의 패러다임을 설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재생과 개발이 공존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며칠전 도시재생법 법제화를 위한 전문가 토론회가 있었다. 어떻게 보는가. 도시재생은 하드웨어보다 프로그램 즉, 사람을 모아 함께 하는 소프트웨어에 성패의 관건이 있다고 보이는데, 한국이 성공적인 커뮤니티를 만들만큼 성숙한 공동체 문화를 갖추었다고 생각하는가.
도시재생 법제화 논의는 시대적 논리와 요구에 따른 당연한 과정이다. 그 핵심은 “철거 위주의 물리적 정비에서 관리의 개념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으로 국토부에서 공식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접근은 너무나 당연하고 시의 적절한 방식임에 틀림없다.
결국 성패는 관리의 방식을 어떻게 설정하고 실행할 것인가 인데, 이제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담보한 법과 이를 구체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다차원적 정책이 동시에 수립돼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즉, 경직된 법 규정만 만들고 일방적으로 따르도록 강요하는 방식으로는 큰 변화를 유도하기 어렵다.
도시재생은 경제적 수준이나 시민의 성숙도와 연관해서 일정한 기준을 정해 놓고 그것이 달성된 이후에 시행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도시재생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수준과 시민의 성숙도가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 있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도시재생의 시행 자체가 성숙한 공동체 문화를 성취하는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하지 않을 경우 앞서 재생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과거와 유사한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개발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 종종 유럽 또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국내에 와서 한국적인 현실에 부딪쳐 자신이 알던 방법론을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다. 김 박사의 경우는 어떠한가, 영국(유럽)에서 쓰이는 프로세스가 한국에도 대입 가능하다고 보는가. 유럽이 한국에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이긴 한 것인가, 한국은 미국적이지 않은가.
물론 외국과 우리나라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주의해야 하는 점은 우리가 모두 잘못됐다는 관점보다는 유∙무형의 조건들이 다르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소위 벤치마킹을 하는데 미국적 방식과 유럽적 방식 중 어느 것이 우리에게 유리한가를 언급하는 것은 어리석은 시대착오적 접근이다. 더불어 해외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다양한 맥락에서 한국적 현실에 부딪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대안을 찾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것은 개별 전문가의 문제이지 일반화시킬 수 있는 측면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나의 경우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 약 7년 동안 활동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남들보다 늦게 외국에 나온 장점이라 생각한다.
영국은 도시 및 건축과 연관된 제도와 정책을 창조하는 탁월한 능력과 노하우를 가진 나라다. 개인적으로 영국의 도시 건축 수준이 세계 최고라 평가하지 않지만, 최상의 제도와 정책을 통해서 대부분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다시 말해 평균치가 높은 결과물이 등장하는데 주목한다. 이러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특정 도시에 세계의 이목을 끌만한 건물 하나가 등장했지만 그와는 무관하게 주변에 형편없는 건물들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영국, 특히 런던의 경우 세계의 주목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 시대의 중요한 가치를 담은 의미 있는 프로젝트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서 세계의 도시 및 건축의 흐름을 선도한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가능한 이유를 영국이 오랫동안 개발하고 유지해온 제도와 정책에서 찾는다.
한편, 유럽으로 눈을 돌리면 앞서 언급한 우리시대가 추구하는 중요한 화두들을 담보한 최상의 사례들이 폭넓게 존재한다. 더군다나 ‘재생’은 유럽 도시들에 깊숙이 뿌리내린 전형적인 도시계획 방법론이다. 내가 유럽의 개별 도시들에 갖는 관심은 유럽에 존재하는 이러한 사례들이 탄생하는 과정과 그에 따른 교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우리 도시에 맞도록 번안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번안하는 과정이 없다면 당연히 우리 식의 모델로 정착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 몸은 영국에 있어도 그동안 꾸준히 출판과 칼럼 등을 통해 한국에서 활자 활동을 해 왔다. 미디어를 통해서만 한국 사정을 보면서 한국에 대해 논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란 생각도 든다. 또 유럽 문화권의 사례를 통해 국내 상황을 꼬집는 것이 한국 전문가나 독자들에게는 괴리감이 크거나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로 비춰질 수도 있을 텐데, 이런 부분에 대한 생각은.
영국에서 활동하며 지금까지 한국과 연계해서 해온 활동은 출판 및 칼럼 기고 외에 프로젝트 자문, 정부 기관과 법 및 정책 연구, 공무원 및 지방자치단체 의원 교육 등이다. 이러한 전반적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의 현실적 상황을 비교적 정확히 파악한다고 자부한다. 다시 말하면 그 만큼 우리나라의 도시 및 건축과 연관된 현안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도시는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진화’한다. 진화의 모티브는 우리보다 나은 사례를 치밀하고 폭넓게 살피고,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내가 가진 원칙은 아무리 좋은 유럽의 사례일지라도 현 상황에서 적용하는데 무리가 있다면 취하지 않는 것이고, 장단기적 상황을 적절히 고려하는 것이다.
이상적 사례만 제시하거나 나열하면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관련 전문가들이 허탈해 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 판단과 그에 따른 비판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라 생각하고, 반드시 필요하고, 충분히 접목 가능하다는 맥락에서 소개 및 조언하고 이를 근거로 비판도 하려고 노력한다.
- 국내에 도시정책 전문가 교육 과정을 개설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어떤 프로그램이 될 예정이며 어떤 로드맵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도시건축 정책 교육을 목표로 한다. 지난 2007년을 기점으로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도시에 거주하기 시작했고, 이는 인류 역사상 처음 경험하는 또 하나의 변화다. 이 같은 도시화는 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을 상징하는 상황을 낳았고,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현상들이 도시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서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시가 직면한 문제 및 현실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디자인을 위한 틀 거리를 확립하며, 지속적으로 미래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느냐가 핵심이다. 선진 도시들이 도시건축 정책 연구 및 수립에 보다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하는 이유다. 결국 도시건축 정책 연구는 도시의 합리적 개발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작업으로서 21세기 경쟁에서 도시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도 21세기가 시작되고 지난 10여 년 동안 도시 및 건축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서울, 부산, 경기도 등을 중심으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가했다. 문제는 이 같은 관심이 개별적인 디자인에 집중됨으로써 그에 상응하는 관련 정책이 유기적으로 개발 및 연계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현재 우리나라 대도시 및 지방 도시들의 경우 적절한 도시건축 정책을 확립하지 못한 상황에서 각종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정책과 개발의 불균형은 우리나라 도시 개발이 합리적, 객관적, 장기적 맥락에서 진행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도시건축 정책의 필요성을 느낀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영국, 독일, 미국 등의 선진 정책기관을 방문해 관련 지식과 정보를 얻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이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국내외의 상황을 토대로 도시건축 정책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도시건축정책 수립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지방자치단체 의원, 공무원, 관련 기업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한 도시건축 정책 교육 프로그램을 수립, 운영할 계획이다.
- 곧 영국으로 돌아간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제는 한국과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활동할 생각인가, 그간 영국에서 갈고 닦은 도시정책 전문가의 솜씨를 국내에서 발휘할 생각은 없는가.
햇수로 영국 생활 10년 차를 맞는 올해를 개인적으로 외국 생활의 ‘두 번째 챕터(Second Chapter)’를 시작한다고 표현한다. 첫 번째 챕터를 쓰는 동안에는 부지런히 달렸지만, 이제는 돌아보고 음미하면서 꼭 필요한 역할에만 주력할 계획이다. 늘 그래왔듯이 반짝하는 무엇인가를 내세울 생각은 전혀 없고,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 무던하게 집중할 것이다.
첫째, 선진 도시건축 정책을 보다 깊이 있게 연구할 계획이다. 둘째, 디자인 참여를 포함해 도시 및 건축과 관련된 자문 활동의 폭을 넓힐 것이다. 셋째, 서울과 런던에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수립해 운영할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해왔던 작업인데 이번 한국 방문을 계기로 더욱 분명한 장단기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다.
요즘 같은 시대에 몸이 영국에 있는지 혹은 한국에 있는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중요한 점은 영국에 활동의 본거지를 두는 것이 도시 및 건축과 관련된 최신 지식과 정보 그리고 관련 전문가들과의 교류가 보다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대신에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한국을 방문해 교류와 소통의 폭을 넓힐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 도시 및 건축의 발전을 위해 다각도로 공헌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김정후 박사 | 런던대학 UCL 지리학과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에서 학부 및 대학원을 마쳤고, 건축가 및 비평가로 활동하면 대학에서 역사와 설계를 가르쳤다. 영국 바쓰대학 건축과 박사과정을 거쳐 런던정경대학(LSE)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런던대학(UCL) 지리학과에서 유럽 및 아시아 도시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하며 도시건축정책연구소(JHK Urban Research Lab)를 운영하고 있다. <작가정신이 빛나는 건축을 만나다> <유럽건축 뒤집어보기> <유럽의 발견> 등을 저술했고, 약 300편의 비평 및 칼럼을 기고했으며, 국토연구원, 문화관광연구원, 건설정책연구원 등에 정책에 관한 논고를 게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