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가 된 건축가, 故정기용
성자가 된 건축가, 故정기용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2.03.1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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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故정기용의 마지막 1년을 담은 건축휴먼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Talking Architect)가 8일 개봉했다.

저예산 다큐, 소재는 건축, 그것도 마이너. 대놓고 말을 못해 그렇지 속내로는 ‘누가 이걸 돈 주고 극장가서 볼까’ 싶은, 그래서 건축 애호가 사이에 유료관람을 독려했던 영화.

그러나 이 영화, 다큐계의 블록버스터가 될 것이다. 롱런할 것이다. 감히 그렇게 점치는 것은 개봉관이 20개로 늘어났기 때문은 아니다. 직접 보면 알 수 있을 것, 이른바 ‘명불허전’.

<말하는 건축가>는 故정기용 선생이 건축과 세상을 바라본 시선을 2010년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감응: 정기용 건축’의 준비과정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다큐의 지루함이나 건축의 현학성을 극복하고 일반 극영화 못지않은 편안함과 감동으로 내레이션 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타계 1주년을 맞아 정기용이 살아 돌아왔다.

건축의 공공성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외로운 마이너가 영화감독(비건축인)의 감성을 관통함으로써 살아있는 세상에 빛이 되어 전기적인 인물로 거듭난다.

1세대 건축가 김수근과 김중업 이후, 2세대 건축가로서 제일 먼저 돌아간 그의 메시지는, 건축담론이 향방을 잃고 점점 왜소해져 가는 한국현대건축의 현실에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이가 바로 정재은 감독이다.

2001년 <고양이를 부탁해>를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바 있는 정 감독, 그녀에게도 다큐영화는 처음이었다. 건축다큐만 국내 최초인 것이 아니라. 물론 정 감독은 전작을 통해 도시와 건축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통찰력을 드러내온 고로, 이러한 소재의 선택이 생소하진 않았지만 막상 영화를 감상해보니 정 감독은 어느 건축 비평가나 저널리스트보다 ‘건축을 매개로 한 소통과 공감’에 뛰어난 영상 저널리스트였음을 발견하게 했다.

어느 네티즌은 한줄 영화평에서 "당신은 혹시 건축학도? 그럼 이 영화는 엘도라도입니다."라고 했지만(엘도라도는 스페인어로 황금도시), 이 영화의 가치는 건축과 전혀 무관한 누구라도, 건축이란 말을 떠올리지 않고도 삶에 그리고 일상에 담아서 건축의 참가치를 200% 흡수하게 했다는 데 있다. 덕분에 오랜만에, 안타까움이 아닌 흐뭇한 희망을 적을 수 있다.


한국건설신문 취재부 = 이오주은 수석기자 yoje@conslo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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