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신년 제언 | 김광현 서울대 교수
2012 신년 제언 | 김광현 서울대 교수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2.01.05 2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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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하는 사람의 숙제, ‘통섭’의 실천이 필요한 때

 

▲ 김광현 교수는 논문이나 저술, 대학원 연구실의 장르를 사전에 알아두는 것으로 그 영역을 간파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건축계의 오피니언 리더로 불리는 김 교수는, 건축과 대중, 건축과 소통, 건축과 제도, 건축과 교육 등 건축계가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돼야 할 모든 부문에서 활약하고 있다.


건축하는 사람의 숙제

 ‘통섭’의 실천이 필요 때


건축계 문제, 밖이 아니라 ‘안’에… 답도 ‘안’에 있다
4분5열이 아니라 32분64열… 편 나누기 극복하고
건축과 건설ㆍ도시ㆍ지역ㆍ환경 간 네트워킹에 다가서야  

 

건축은 단체전이다. 운동에도 개인전이 있고 단체전이 있듯이, 건축은 두 사람이 하는 단체전이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이 뭉쳐서 이루어야 하는 사회적인 단체전이다.  건축은 개인의 창의적인 발상과 표현에서 시작하지만, 이러한 창의적 발상이 전혀 통하지 못하는 현실에 부딪쳐 실현해야 하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도면을 그릴 때 건축은 창의적인 발상이요 문화적 표현이지만, 이 도면이 건축주와 시공자를 만나고 사용자를 만나게 되면서부터는 예산, 법규, 건축주의 요구 등이 얽히는 사회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 건축의 괴리는 이것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성격에 따라 건축계도 여러 개의 두 편으로 나뉜다. 건축학과 건축공학, 건축가와 건축사, 건축사와 기술사, 업계와 학계, 건축가와 교수건축가, 설계와 구조, 구조와 설비, 설계자와 시공자, 설계와 감리, 계획설계와 실시설계, 외주 아닌 것과 외주로 하는 것 등.

잘 생각해 보면 건축계는 이와 같은 2분법의 연속이다. 2 곱하기 2는 4가 되지만, 2의 5 제곱이 되면 32가 되듯이, 몇 단계만 지나면 사분오열 정도가 아니라 32분 64열 정도 되기라도 하는 듯하다.

이뿐인가, 어떤 아틀리에 건축사사무소는 진짜 사무소지만 대형설계사무소는 작품도 못한다든가, 문화를 앞세워 작품은 잘 하는데 사회적 해결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이기적이라든가, 대형 사무소와 민생 사무소라든가 하는 식으로, 너무나 많은 편 나누기가 있는 곳이 아마도 건축계가 아닐까 할 정도이다.

건축계에 문제 많다.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문제는 건축계 밖에 있지 않다. 너무나 많은 것이 ‘안’에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고 가르치는데, 건축학과 교육에서는 각종의 ‘경계’가 가로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계를 더 만든다. 스스로가 경계에 가로막혀 있으면서 경계가 사라지는 현대도시와 공간을 만든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문제가 안에 있다고 해서 실망스러울 테지만 문제가 ‘안’에 있으니 당연히 답도 ‘안’에 있다. 최근 나는 건축과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 그런데 차라리 문제가 밖에 있으면 답을 찾기가 쉬운데, 문제가 안에 있으면 찾기가 더 어렵겠다고 까지 생각할 때가 많다. 참으로 ‘통섭’의 실천이 요구되는 때이다.

몇 달 전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가 내게 잘 설명해 주었다. “통합은 물리적이고, 융합은 화학적지만, 통섭은 생물학적이랍니다.” 통섭의 특징은 개체가 뚜렷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통섭은 우리 건축계의 구성 인자가 자기 존재를 뚜렷이 하면서도 생태적인 상호관련을 맺는 지혜를 기울여야 하겠다.


건축하는 사람의 숙제

  • 통섭 - 각 구성인자가 자기존재 뚜렷이 하면서 생태적인 상호관련 맺는 지혜
  • 지속가능성 - ‘축소’라는 키워드에 숨은 새로운 영역 발견해 과제로 삼는 지혜
  • 네트워킹 - ‘전체가 부분 규정’ 전시대 탈피, 부분이 전체 만드는 21세기 지혜

▲ 2011년의 마지막날, 업무상 마지막날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39동 김광현 교수의 연구실을 두드렸다. 방 구석구석 책과 관련자료로 발디딜 틈 없는 방, 더 놀라운 것은 책상 위로 탑처럼 쌓여가는 책들이었다. 이 곳에서 휙 둘러진 머플러 풀기를 잊은 것 같은 김 교수는 매우 소탈하게 그리고 활력적인 모습으로 기자를 맞았다.

또 다른 숙제는 지속가능성, 지속가능한 사회의 건축과 관련된 것이다. 이 말을 계속 유행어로만 사용하면 안 된다. 지속가능성은 어느 한편에서는 블루오션도 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은 지금까지 해 오던 일을 레드오션이 되게 만드는 배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건축계에서는 지속가능성이라는 영역을 현재의 일을 얻기 위한 신개념 정도로 활용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아울러 ‘지속가능 건축=에너지절약형 건축’으로만 이해하는데, 이것은 일부는 맞아도 건축과 건설의 넓은 측면에서는 어쩌면 대단히 위험한 대입일 수도 있다.

지속가능한 사회에서는 먼저 신축 물량이 줄고 그 안에서 건축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게 되어 있다. 말하자면 확대 성장의 디자인, 건설이 아니라 전혀 다른 다양한 방향에서 제기되는 ‘축소’라는 양상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건설의 소재로 삼아, 또 이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를 묻는 광범위한 과제이다.

그런데도 ‘친환경’, ‘지속가능성’ 하면 마치 일부 전문가의 전문 영역으로 여기고 다른 전문 분야와 소통하지 않으려는 것은 그 자체가 지속가능하지 못한 사고에서 비롯한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사람처럼 영역을 구분하면서 블루오션에서 또 신축 물량이 생겨나겠지 하고 기대하면 안 된다. 당장은 일감이 줄어드는 듯이 보이지만 이 ‘축소’라는 키워드에 숨어 있는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고 이를 과제로 삼아가는 지혜가 빨리 나타나야 한다.

또 다른 숙제는 건축과 건설 관련 제도에 관한 것이다. ‘건축’과 ‘건설’이라는 말에는 같은 ‘建’자가 있어서 비슷하거나 같은 것, 아니면 건설 속의 한 분야가 건축이라고까지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100년 전에도 없었던 개념이다. 

21세기에 들어와 벌써 12년이 지나는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계속 ‘건축(architecture)=건설(construction)’이라고 이해하고, 심지어는 같은 것으로 끌고 가려고 애를 쓴다. 건설과 건축은 서로 깊이 연관돼 있지만 아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 두 분야는 얻는 것은 같지만 출발점은 달리 한다.

더욱이 최근 턴키(turnkey)라는 것이 대세여서 건설이 '주'가 되고, 건축은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더 깊어졌다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사실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이 현상이 계속된다면 아마도 훗날 크게 후회할 것이다.

도시와 건축과의 관계도 그렇다. 흔히 도시가 건축보다 상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에서 결정하면 그것을 받아 건축을 한다는 발상이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다만 이 발상이 20세기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말하자면 전체가 부분을 규정한다는 것.

그리고 도시는 큰 것, 건축은 작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체로 보면 아주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연면적으로 보면, 건축물의 연면적을 모두 모아보면 도시를 훨씬 상회하고 남을 것이다.

도시를 규정하는 수많은 선은 현실 공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건축물은 그 모든 것을 현실과 일상에, 사람들의 생활에 드러낸다. 부분이 전체를 만들고 있다.

또한 건축을 작은 것, 도시를 큰 것으로만 본다면 결국 우리는 ‘지역’을 말할 수 없다. 지역은 건축보다 큰 것이 아니라 전체를 구성하는 아주 작은 부분 또는 이보다 조금 더 큰 부분을 구성하는 것이 아닐까.

환경도 마찬가지이다. 환경은 저 멀리 있는 산이 아니다. 무엇과 무엇 사이에 성립하는 것이 환경이다. 아주 작은 것 사이에도 환경이 있고, 그보다 조금 더 큰 사이에도 환경은 있다. 이런 말이 철학적이라고 들린다면 우리는 환경을 잘 모르는 것이다.

더 나은 건축, 건설, 환경을 만들려면 이러한 생각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21세기는 환경, 도시, 건설, 건축 등의 구분이 사라진 사회라고 봐야 한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한다. 큰 덩어리의 단위 프로젝트가 주를 이루는 사회가 아니라, 작은 부분과 부분을 엮는 일이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건축은 얼마나 사회적이며 환경적이고 생태적인가. 그런데도 건축계 안에서 2 곱하기를 몇 번 거듭하며 나누어져 있어야 하겠는가. 세상은 통섭하고 이어지고 네트워킹하라고 하는데 20세기적인 방식으로 일을 바라보면 해결이 안 된다.

과제는 늘 기본 속에서 포착이 되는 것이다. ‘숙제’라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단숨에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고, 2012년 새해부터라도 마음 모아 조직적으로 건축이라는 단체전을 잘 실천하게 만드는 큼직한 기반이 이루어지를 크게 바라고 있다.
 

김광현 | 1975년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1977년 동대학원 석사 후 1983년 도쿄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에서 후학을 양성, 1993년부터 서울대 공과대학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중국 절강대학(浙江大學) 객좌교수이기도 하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대한건축학회 부회장, 한국건축학교육협의회 회장 및 명예회장, 중앙건설기술심의위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및 건축위원회 위원, 한국건설교통기술평가원 이사 등을 역임했고, 현재 친환경건축설계아카데미 원장, 건축문화정책포럼 의장,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위원, 서울시 건축위원회 위원, 대한건축사협회 명예이사, 대한건축학회 참여이사, 한국건축가협회 이사로 건축계의 대표 오피니언 리더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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