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의 한옥마을에서도 한옥이 가장 밀집된 곳은 31번지와 11번지 일대다. 그 중 위치상 31번지 초입에 자리를 잡은 이 주택은 ‘우리 시대의 한옥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그것은 ‘한옥의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현대인의 삶을 담을 수 있는 주택’이라는 개념으로 압축될 수 있다.
이 주택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지하실 위에 전통 목구조를 충실히 구현한 지상부가 올려져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지하에는 주차장과 서재, 수납공간 등이 배치돼 있고 지상부에는 침실, 거실, 주방 등 주된 생활공간이 자리 잡았다. 따라서 이 주택에서는 전통한옥의 맛과 멋을 충분히 즐기면서도 현대인이 필요로 하는 각종 기능 또한 충족할 수 있다.
평면은 전형적인 도시형 ㄷ자 한옥의 유형을 따르면서도 대지 조건에 따라 부분적으로 변형됐다. 이 과정에서 주택의 중앙에 있는 중정과는 별도로 안방을 위한 별도의 마당이 또 하나 만들어질 수 있었다.
주택의 규모상 이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나 ‘개념의 고급’을 지향한다는 취지에서 현실화될 수 있었다. 대문간과 안방 마당 사이에는 전통적 취병(翠屛)을 응용한 ‘그린 월’(green wall)을 설치했다.
전체적으로 전통 창호를 사용하면서도 그간의 연구와 조사를 토대로 풍소란(風小欄), 3중 창호 등의 디테일을 적용해 기밀성과 단열성 등을 놓이고자 했다. 특히 거실 전면의 창호 일부에 부분적으로 단열유리를 적용해 겨울에 창호를 닫고도 실내에서 바깥 경치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옥의 특성을 이용해 냉난방 등의 설비를 합리적으로 설치하는데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지붕을 건식으로 구성해 그 내부의 공간에 배관, 덕트 등을 설치하고 실내 단면의 고저 차를 이용, 대청의 측면 벽에 냉난방용 토출구 등을 배치한 것이 그 좋은 예다.
아울러 안방 상부에 다락을 만들어 공간의 수직적인 사용을 꾀했고 대청마루 하단에 지하실 채광을 위한 창을 설치하는 등, 한옥의 단면을 이용한 새로운 시도들이 많이 적용된 주택이기도 하다.
<자료제공: 황두진건축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