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의 날, ‘경부개통 40주년’ 일화
도로의 날, ‘경부개통 40주년’ 일화
  • 승인 2010.07.0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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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 40주년’을 기념하여 정운찬 총리, 국토부 장관 등 건설업계 1천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도로의 날’이 성대하게 치뤄졌다.

국내 고속도로의 최초 계획은 언제부터였을까.

과거 자료를 살펴보니, 1967년 4월 29일 박정희 대통령이 제6대 대통령 선거 기간중 장충단 공원 유세에서 “서울을 중심으로 인천·강릉·부산·목포를 잇는 기간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라는 공약을 밝히면서 구체화 됐다고 한다.

건설을 추진하던 68년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164달러에 불과했다.

재정이나 장비, 기술 등 모든 측면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하기에는 역부족. 건설부를 제외한 정부 부처들을 비롯하여, 여야 정치권, 언론은 물론 경제계에서도 반대가 매우 심했다.

IBRD 조사에 따르면 1965년 건설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던 중장비는 모두 1천647대에 불과했으며 거의 구식에다 노후한 상태였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는 최단시간인 2년 반만에 428km, 72년 7월 7일에 최소의 비용으로 개통됐다.

경부고속도로는 305개의 교량, 12개의 터널, 19개의 인터체인지를 포함한 공사비는 당시 67년 국가 예산의 23.6%에 달하는 429억7천300만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이는 km당 약 1억원이라는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건설됐다.

숨기고 싶은 비화도 있다.

‘마의 구간’이라고 불렸던 옥천터널(당시 당재터널) 구간 같은 난공사지역에서 대규모 토목공사 경험이 미비하고 기술 및 장비 또한 갖추지 못해 건설과정에서 총 77명의 목숨을 잃었다.
대규모 토목공사가 진행되면서 환경문제와 문화재 파괴는 주요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고 한다.
문화재 발굴은 68년 11월부터 69년 3월까지 공사구간에 포함된 경부 방내리 고분군 발굴조사가 유일하다.

포장기술은 일본 메이신 고속도로의 건설자료에 의존, ADB 차관으로 공사용 장비를 도입하여 사용했다.

경부고속도로의 포장단면은 표층 2.5cm(아스팔트), 중간층 5cm, 기층 15cm(입도조정기층), 보조기층 40cm(막자갈)로 합계 62.5cm 두께로 되어 있다.

공사에 사용한 아스팔트는 1964년에 준공된 대한석유공사 울산정유공장과 극동정유에서 생산된 국내 제품들이 사용하게 됐다.

현재의 시멘트 콘크리트 포장이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은 1980년 유류파동으로 아스팔트 가격이 16.5배로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초의 시멘트 콘크리트 포장 고속도로는 84년 6월 준공된 88올림픽 대구~광주 구간이다.

최근 고속도로는 기후변화의 글로벌 이슈화로 녹색고속도로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교통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될 때다.

김덕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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