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설산업연구원
이런 우스개 소리를 들었다. 요즘 들어 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몰래 촬영하여 돈을 버는 ‘카파라치’들이 너무 많은데, 건전한 카파라치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인증(認證) 카파라치제도’를 도입하여 ‘카파라치 능력평가 및 공시제도’를 시행하자는 것이다.
아마 이같은 우스개 소리는 건설사업관리자로부터 신고를 받아 건설사업관리 수행능력 평가 및 공시제도를 시행하겠다는 조치를 빗댄 것이 아닐까 싶다. 비단 건설사업관리만이 아니라 일반건설업이건, 전문건설업이건 똑같다. 건설업을 할 사람은 등록을 해야 하고, 등록한 업체의 시공능력을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고 있기 때문이다.
IMF 직후 건설공사 물량의 급감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체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그중 상당수는 등록기준 조차 갖추지 못한 페이퍼 컴퍼니였다. 정부는 무자격 부실건설업체의 퇴출을 위하여 한편에서는 대대적인 실태조사와 행정처분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폐지했던 사무실 보유조건을 다시 도입하는 등 건설업 등록기준을 강화하였다. 강화하고자 한 일부 등록기준은 규제개혁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같은 등록기준의 강화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체 수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왜 이렇게 건설산업정책은 면허제도의 범주에만 머물러 있을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중 하나는 건설산업의 환경변화에 따라 정부의 건설행정조직과 기능 재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우리나라의 건설산업정책은 면허제도가 출발점이었다. 1958년에 ‘건설업법’을 제정했던 이유부터가 면허제도를 통한 업자난립 방지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건설업자가 난립하고 있다는 이유로 1975년부터 1988년까지는 아예 신규면허 발급을 중단시켜 버렸다. 경제개발과정에서 건설공사 물량은 급격하게 증대하였지만, 시장진입 장벽을 통해 ‘과당경쟁’을 방지해 준 덕택에 일부 건설회사들은 세계적인 대기업이 되는데 성공했다고도 볼 수 있다.
국내 건설시장에서의 성장을 발판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해외건설시장에 진출할 때, 정부는 또 한번 면허제도를 활용했다. ‘해외건설촉진법’을 제정하여 해외건설업 면허를 받도록 한 것이다. 해외건설업자를 면허제도를 통해 엄선하되, 정부가 ‘도급허가권’을 쥐고 파격적인 금융·보증지원을 해 준 것이 1970년대말과 1980년대초의 해외건설 활성화 배경이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건설시장 개방과 규제완화가 추진되면서 시장진입장벽이나 정부가 손아귀에 쥔 각종 규제도 와해되는 양상을 보였다. 건설회사도 정부가 가르치고 키워야 될 단계를 오래전에 벗어났다.
‘보호·육성’이란 단어보다는 ‘경쟁’이란 단어가 새로운 키워드(key word)로 등장하였다. 세계화(Globalization)니 국제표준(Global Standard)이니 하는 단어들도 건설업계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같은 건설산업의 환경변화에 따라 건설산업정책의 내용이 달라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건설행정조직과 기능의 재편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보자. 오래전부터 해외건설업계가 요구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사항은 대부분이 금융·보증지원이다. 하지만 금융·보증지원은 재정경제부 소관사항이지 건설교통부 소관사항이 아니다. 최근 들어 해외건설 수주비중이 급증한 플랜트는 상당부분이 산업자원부와 관련된다. 국내 건설시장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무자격 부실건설업체의 난립을 방지하고 시장경쟁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공공공사 입찰제도의 개선과 보증시장의 발전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하지만 이같은 업무는 건설교통부 소관이 아니라 재정경제부 소관이다.
업역별 세분화·전문화보다 종합화·EC(Engineering & Construction)화가 국제경쟁력의 핵심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엔지니어링업무는 과학기술부 소관이고, 전기공사업이나 정보통신공사업은 제각각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 소관으로 두어 토목·건축공사와 분리발주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국내건 해외건 건설교통부가 가진 정책수단은 일반·전문건설업과 해외건설업의 면허제도 말고 별 신통한게 없는 셈이다. 건설사업관리 신고제나 능력평가 및 공시제 도입, 그리고 건설업 등록기준의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건설산업 구조조정 대책과 같은 것들은 이같은 행정구조속에서 건설교통부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카드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면허제도가 더 이상 실효성있는 산업정책수단이 되기 어렵다는데 있다. 정부조달협정 때문에 어렵기도 하지만, 이미 진입장벽이 무너져 신규업체들이 대거 진입해 있는 시장에 또다시 높은 진입장벽을 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다.
내년에는 새정부가 출범한다. 정부조직개편 논의도 다시 활발하게 제기될 것이다. 이런 시기를 맞아 건설행정조직과 기능의 재편방안에 대해서도 활발한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 건설산업의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와 더불어 재경부, 산자부, 과기부 등으로 분산된 기능과 업무를 어떻게 통합하고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건설업계에서 독자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고 그냥 이대로 간다면, 진짜로 ‘인증(認證) 카파라치제도’ 같은 것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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