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1세대에게 듣는다
민자1세대에게 듣는다
  • 정장희 기자
  • 승인 2006.07.10 1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無에서 有를 만들어낸 1세대 민자인, 박긍래 상무
■목돈 들여 푼돈 받는 사업은 뭐하러 해

민간투자법이 시행되기 이전인 87년부터 20여개의 민자사업을 추진한 박긍래 상무는 자타가 공인하는 1세대 민자인이다. 대부분 1세대 민자인들이 일선에서 물러나 있지만, 박 상무는 지금도 송현~불로고속도로, 충주관사 등 금호건설이 추진한 민자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BTO, BTL사업 등 지금은 건설업계에서 위상이 높은 민자사업이지만 박 상무가 민자업계에 첫발을 내딛을 때는 천덕꾸러기였다.

“93년 민자사업을 바라보는 관점은 ‘목돈 들여 푼돈 받는 사업을 왜하냐?’, ‘그런 곳에 투자할 돈 있으면 공장 하나를 더 짓겠다’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자는 회사를 거덜 낼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그때 저는 민자의 사업구조를 희망적으로 봤습니다. 더 이상 정부공사만으로는 앞서나갈 수 없다고 경영진을 설득해 민자사업을 추진했죠. 결국 민자사업은 정부발주공사를 2년간 한 건도 못 따던 IMF시절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습니다.”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악전고투

박 상무의 건설인생은 1976년 철도청부터 시작한다. 이후 해군장교로 입대해 설계와 시공감독을 경험했다. 민자사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7년 동아건설에 입사해 천안시 천흥공단을 개발하면서부터다.

“천흥공단은 민자사업 첫 경험이었습니다. 어려움이 많았던 사업이지만 악전고투 끝에 사업을 성공시켰죠. 지금도 그 희열을 잊을 수가 없어요.”

잘나가던 동아건설을 그만두고 그 당시 소규모였던 금호건설로 옮긴 건 해군선배의 권유에서였다. 당시 금호산업 본사는 회현동. 그러나 박 상무 근무지인 토목사업팀은 양재동 자동차정비소 옆 사무실로 여직원을 포함해 부서인원이 4명이었다.

“토목사업부에 부임한지 3개월 만에 선배가 나가는 바람에 졸지에 팀장이 됐어요. 앞이 캄캄했죠. 그만둘까도 생각했는데 동아건설을 그만둘 때 만류하던 분들이 생각나 ‘이곳이 마지막 직장이다’ 생각하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사무실에 침낭을 가져다 놓고 몇날며칠을 세웠죠. 몸이 힘들수록 보람은 배가된 시기였습니다.”

박 상무는 이곳에서 턴키를 담당하며 신사업 발굴에 나섰다. 그의 눈에 띈 사업은 유료도로법에 의한 도로사업, 지하공간ㆍ도심재개발들로 이들 사업은 94년 민간투자법이 제정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민자사업 10년간 2조2천억 수주

박 상무가 금호건설에서 수주한 민자사업 규모는 메이저사 1년 총 수주액과 맞먹는 2조2천억원. 그가 근무한 10년간 인천공항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 부산신항만, 서수원~오산고속도로 등 굵직굵직한 사업 16개를 수행했다. 최근에는 송현~불로고속도로, 평택~시흥고속도로, 제2경인고속도로를 비롯해 국내 BTL1호인 공군충주관사에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이런 그에게도 사업초기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금호건설에서 가장 처음에 추진한 민자사업은 이화령터널인데 교통량확신이 없어서 접었고, 인천 문학산 터널은 상대 컨소시엄이 상상할 수도 없는 저가에 투찰해 패배했습니다. 실질적인 첫 사업은 인천공항고속도로였습니다. 아시아나 항공을 보유한 금호로서는 반드시 확보해야만 하는 사업이었죠. 당시 이 사업은 한진, 삼성, 현대가 주도권 다툼을 벌였는데 금호는 이때 중재자 역할을 했죠. 아침 9시에 시작한 회의가 새벽2시에야 끝나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정부와의 협상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도출한 자본수익률(ROE)을 놓고 민간특혜다 뭐다 말이 많았을 때는 정말 힘들더군요.”

■권력행사하면 시장은 파괴돼

민자사업은 12년간 정부와 민간의 협력으로 발전됐고, 현 시점에서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고 있다. 민자사업 초기는 정부가 민간의 참여를 유인했지만, 사업의 불확실성 등의 이유로 민간의 참여가 저조했다.

“민자초기는 공급자인 민간이 우위에 있었지만, 지금은 수요자 중심의 시장입니다. 이 때문인지 최근들어 민자사업에 대한 시민단체의 비판이 거세죠.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보니 비판을 할 수밖에요. 당시의 민자는 사업성이 불투명한만큼 높은 수익률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최저가공사와 비교하며 민자사업을 비판하는 논리에 대해 “비약적일지 모르지만 재래시장보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훨씬 비싸죠. 그렇다고 해서 구매자가 백화점가서 재래시장 가격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사용료도 마찬가집니다. 최근 개통된 대구부산고속도로나 서울외곽고속로의 경우 단순 비교하면 기존도로보다 통행료가 비싸지만, 거리단축으로 인한 유류비, 시간 절약을 생각해 볼 때 결코 비싸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민자사업환경 악화에 대해 “우위에 있는 자가 횡포를 부릴 경우 시장은 깨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경우 피해는 최종 사용자인 국민이 고스란히 받는다는 점을 고려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대안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그는 사업자간 과열경쟁부터 자제해야 민자사업이 정상화될 수 있다고 충고하고 있다.

■민자시장은 민자인이 지켜야

박 상무는 향후 민자시장의 개척하는 것은 민자2세대의 몫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는 민자현장을 뛰는 후배들에게 “점점 악화되는 민자사업 환경 때문에 회사가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 민자인이 구축한 민자시장은 민자인이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1세대 민자인 박 상무는 최근 해외 민자고속도로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개발도상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BOT방식으로 추진되는 고속도로사업에 새로운 희망을 찾고 있는 것.

“원래 민자인은 모험가 정신이 투철해야 하죠. 내 남은 건설인생, 신사업개척에 힘쓰겠습니다.”

정장희 기자 h2hideo@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